'최초 80년대생 감독' 이범호, 부임 첫해에 KIA와 꽃길 걷다
역대 세 번째로 선수와 감독으로 동일팀서 우승 축배
(서울=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KIA 타이거즈 유격수 박찬호(29)는 한국시리즈(KS) 4차전이 끝난 뒤 이범호(42) 감독에게 달려가 안겼다.
3차전 9회초 만루 기회를 놓친 미안함을 꾹 눌렀던 박찬호는 4차전에서 팀이 승리하자 안도감을 느꼈고, 이 감독의 품에 안겨 한동안 억눌렀던 감정을 발산했다.
경기 중에는 냉정한 눈으로 선수를 바라보던 이범호 감독은 경기 뒤에는 맘씨 좋은 큰 형님으로 돌아와 박찬호를 격려했다.
'긴장과 이완'은 초보 사령탑 이범호 감독이 KIA를 2024년 한국프로야구 챔피언에 올려놓은 핵심 전략이었다.
KIA는 28일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S 5차전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7-5로 꺾고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정규시즌을 1위로 마친 KIA는 KS에서도 우승하며 통합우승을 완성했다.
어수선한 상황에서 KIA 지휘봉을 잡은 이범호 감독은 빛나는 이정표를 세우며 첫 시즌을 마쳤다.
1981년에 태어난 이 감독은 KBO리그 최초의 1980년대생 사령탑이다.
통합우승을 달성하며 이 감독은 '최초의 1980년대생 우승 감독'이라는 더 빛나는 타이틀을 얻었다.
또한 이범호 감독은 해태 시절을 포함해 타이거즈에서 뛴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우승 트로피를 든 사령탑이 됐다.
2017년 KIA 유니폼을 입고 KS 5차전에서 만루포를 쏘며 팀의 통합우승에 공헌한 이범호 감독은 KIA 사령탑으로도 우승하는 영예를 누렸다.
역대 KBO리그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같은 팀에서 KS 우승을 차지한 건, 두산 베어스에서 기쁨을 만끽한 김태형 현 롯데 자이언츠 감독과 김원형 전 SSG 랜더스 감독에 이어 이범호 감독이 세 번째다.
이범호 감독은 아울러 2005년 선동열 당시 삼성 감독, 2011년 류중일 당시 삼성 감독에 이어 '감독 부임 첫해에 통합우승을 차지한 역대 세 번째 사령탑'이라는 진기록도 달성했다.
이범호 감독은 2000년 한화 이글스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고, 2010년에는 일본프로야구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뛰었다.
2011년 이범호 감독은 한국 복귀를 타진했고, 이때 KIA가 적극적으로 움직여 이 감독을 호랑이 굴로 데려왔다.
KIA에서 2019년까지 뛰며 클럽하우스 리더 노릇을 한 이범호 감독은 은퇴 후 지도자 생활도 KIA에서 시작해 2020년 스카우트, 2021년 퓨처스(2군) 감독, 2022∼2023년 KIA 1군 타격 코치를 차례로 지냈다.
탁월한 리더십으로 '1군 감독감'으로 평가받던 이범호 감독은 김종국 전 KIA 감독이 비위 사건에 연루되자 올해 2월 호주 캔버라에 차린 1차 스프링캠프 기간에 타격 코치에서 1군 사령탑으로 전격 승격됐다.
이 감독은 "언젠가 감독이 되고 싶다는 꿈을 꿨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지휘봉을 잡을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차근차근 지도자 수업을 받은 이범호 감독은 사령탑 부임 첫해부터 갈고닦은 '형님 리더십' 내공을 발휘했다.
이의리, 제임스 네일의 부상 등 악재에도 이범호 감독은 '무리하지 않는 운영'으로 팀을 정규시즌 1위에 올려놨다.
더그아웃에 긴장감을 불어넣으면서도, 결정적일 때는 선수들을 보듬는 따뜻함도 보였다.
이 감독은 2024년 KBO리그 최고의 히트 상품인 김도영도 수비 때 안이한 플레이를 하면 바로 교체했다.
베테랑 나성범, 내야 핵심 자원 박찬호, 외국인 타자 소크라테스 브리토도 '문책성 교체'의 대상이 됐다.
'팀 승리'를 1순위에 두는 이범호 감독의 철학이 선수단에 전해지면서, KIA 더그아웃에는 '건강한 긴장감'이 흘렀다.
상징적인 장면도 있었다.
이범호 감독은 7월 17일 삼성과 경기에서 승리 투수 요건에 아웃카운트 1개만을 남긴 '타이거즈의 심장' 양현종을 교체했다.
9-5로 쫓긴 5회 2사 1, 2루가 되자 승리를 위해 불펜을 가동한 이 감독은 더그아웃에서 당혹감을 드러냈던 양현종을 뒤에서 껴안았다.
양현종의 표정은 다시 밝아졌고, 이 감독의 메시지가 또 한 번 KIA 더그아웃에 전달됐다.
이 감독은 선수들의 보호막 역할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는 타 팀과의 갈등이 있을 때는 KIA 선수들의 편에 서며 선수들의 신뢰를 얻었다.
2024년 KIA는 이범호 감독과 함께 꽃길을 걸었고, 이범호 감독과 KIA 선수들은 단풍이 물든 가을, 화려한 우승 세리머니를 펼쳤다.
jiks7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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