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우의 풀뿌리]정부가 허락하는 시민활동?

기자 2024. 10. 28.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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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이 다가오며 시민단체들의 후원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회원으로 회비를 내는 단체도 있고, 외부활동을 하면서 만난 단체들의 초대도 있다. 매년 이맘때면 단체들은 한 해 적자를 메우기 위해 또는 내년 사업을 위해 후원금을 모으는 행사를 연다. 기후위기와 불평등, 평화처럼 다뤄야 할 사안들은 계속 늘어나는데 후원금은 줄고 정부 지원금도 축소되어 단체들의 형편이 나빠지고 있다.

위축되는 시민단체의 활동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시민단체들은 비정부기구(NGO)의 붐을 타고 입법, 행정, 사법 3부의 뒤를 잇는 ‘제4부’로 불리기도 했다. 지금보다 시민단체의 수는 적었지만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 여론에 힘입어 시민단체는 정치와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장점만큼 단점도 있었지만 시민단체들의 활동은 복지를 강화하고 시민 참여를 활성화하는 여러 제도들을 도입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다만 그 성공을 책임질 정치세력이 없다보니 올바른 정착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흐름을 타고 시민단체의 대표나 국장급 활동가들이 ‘어공(어쩌다 공무원)’으로 변신하는 일도 생겼다. 2000년부터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이 시행되면서 시민단체들이 정부의 지원도 받게 되었다.

그러면서 문제들도 계속 드러났다. 명망가나 전문가 중심의 활동은 시민단체의 민주성이나 투명성을 약화시켰고, 제도정치의 한계를 보완해온 역할은 이중대나 관변이란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공공연하게 정부지원을 받아온 관변단체들의 문제가 고쳐지기도 전에 시민단체들도 보조금을 남용한다는 비난을 받기 시작했다. 제도를 적극적 활용하는 시민의 출현은 시민단체에 대한 의존도를 낮췄고, 시민들 관심이 마을공동체나 사회적경제처럼 민관 협력의 영역에 쏠리면서 정부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역할은 위축되었다.

이런 흐름의 정점이 윤석열 정부라고 볼 수 있다. 행정안전부의 비영리민간단체등록 통계에 따르면, 2000년 이후 등록된 단체의 수가 매년 증가했는데 2023년에만 이례적으로 10.8% 감소했다. 행정안전부가 단체들의 법적 등록요건을 조사해서 직권으로 등록을 말소했기 때문이다. 매년 60억~70억원 정도이던 정부지원금 규모도 2024년에는 33억원으로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더구나 행정안전부는 비영리민간단체의 등록요건과 보조금 등을 관리하는 시스템인 비영리민간단체 공익활동지원사업 관리정보시스템(NPAS)을 도입했다. 이 시스템에 따라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사업들의 집행방법, 운영요령 등이 표준화되었다. 그런데 내용보다 형식이, 자율성보다 통제가 앞서는 추세에서 시민사회의 다양성이 살아날 수 있을까?

그리고 정부는 시민단체의 정치활동을 문제 삼고, 서울시는 지방선거에서 특정 후보나 정당과 협약을 맺고 정부비판 집회를 주관했다는 이유로 한 시민단체의 등록을 직권취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3월에 서울행정법원은 서울시의 처분을 취소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정부가 직권으로 시민단체의 등록을 취소하는 건 오히려 더 큰 정치적인 문제를 만들 수 있다. 시민단체 운영의 투명성과 민주성은 필요하지만 그것을 관리하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회원이나 시민들이어야 하지 않을까?

사실 정부가 시민단체의 투명성을 문제 삼으려면 대부분 밥값으로 사용되는 업무추진비나 내역조차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 특수활동비부터 공개하고 줄여야 한다. 그리고 매년 수백억원의 정부예산을 지원받는 새마을운동중앙회나 한국자유총연맹, 바르게살기중앙협의회 같은 관변단체들의 지원금부터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 시민사회를 관변화하려는 시도는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시민단체 없이 시민사회가 유지?

사회위기가 계속 심화되는데 시민사회조차 개별화되고 단절되면 효과적인 대응이 어렵다. 이런 세상에서 시민단체들은 다시 시민들의 관계를 잇고 서로를 지지하도록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통계청의 2023년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사회단체 참여율은 64.2%로 높지만 대부분이 친목·사교단체(77.1%)나 취미·여가단체(54.9%)이고 시민사회단체(8.9%)나 정치단체(2.1%)의 비중은 낮다. 사익과 공익의 경계가 모호하긴 하지만 공익을 지향하는 단체들이 더 많은 관심을 받으면 좋겠다.

나는 시민단체에 내는 돈을 후원금이 아니라 응원금이라 부른다. 응원은 곁에서 지켜보다 여차하면 동참하겠다는 의미가 강해서이다. 더 많은 시민단체들을 응원하자.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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