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빈의 두 번째 의견]‘세계-섬 지정학’의 귀환?

기자 2024. 10. 28.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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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러시아·이란·북한
핵 개발과 보유를 도우며
긴밀하게 협력하고
유라시아서 사방팔방으로
미국과 그 동맹 세력들에
파상적 공세를 취한다면
2차대전 때 연합국 위협한
‘추축 세력’ 재건을 뜻한다
이에 미국과 동맹들은
공조 체제 구축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당연히
동북아 안보와 외교에도
지각변동을 가져올 것이다
서방 지배 엘리트 일각서
옛날 매킨더가 불러냈던
‘세계-섬 지정학’ 유령이
다시 혹은 이미 오랫동안
떠도는 증후가 아닐까

1904년 영국의 지리학자 해퍼드 매킨더는 이후 ‘세계-섬(World-Island) 지정학’이라고 불리게 되는 기본 아이디어를 발표한다. ‘동유럽을 지배하는 자가 유라시아 심장부를 지배하고, 유라시아 심장부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은 미국과 영국을 필두로 한 서방 ‘민주주의’ 나라들의 지배 세력의 사고 틀에 오랫동안 지속적인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자신들의 세계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유라시아 심장부에 자리 잡은 러시아와 중국 등이 동유럽, 인도양, 태평양 등으로 밀고 내려오지 못하도록 철저히 봉쇄할 것이며 또한 이들이 하나로 합쳐 자신들에게 대항하는 것 또한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다.

물론 이러한 ‘매킨더 명제’는 많은 비판을 받은 바 있고, 공군력의 출현 등 군사 기술의 발달과 함께 낡은 것으로 치부되어 왔다. 또한 1990년대가 되어 소련과 공산권이 무너지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군사적인 일극 체제가 성립하고 또 경제에 있어서도 미국과 중국이 함께 세계 경제를 끌고 나가는 냉전 이후의 질서가 자리를 잡으면서 이러한 ‘세계-섬’의 지정학적 전략은 현실적으로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어언 30년이 흐른 지금,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계기로 이제 기억에서 잊히는 줄 알았던 매킨더 명제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 아닐까라는 걱정을 낳고 있다.

지난주 미국의 국방장관 로이드 오스틴은 북한군이 현재 러시아에 있으며 조만간 우크라이나 전장에 배치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하였다. 그런데 그의 말에 걸리는 대목이 있었다. 만약 북한군이 정말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면 이는 ‘유럽뿐만 아니라 인도·태평양 지역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이었다. 북대서양과 인도·태평양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북한 정권이 설령 파병이라는 결정을 했다고 해도, 유라시아 반대쪽에 살고 있는 한반도 사람들까지 왜 우크라이나 전쟁에 적극적으로 휘말려야 하며 나토와 공조해야 한다는 것인가?

시야를 크게 넓혀서 볼 필요가 있다. 우크라이나 따로, 이스라엘 따로, 대만 따로, 한반도 따로 보지 말고 전체 유럽과 아시아 즉 유라시아 대륙이라는 큰 땅덩어리를 한눈에 보면서 생각해 보자. 이 네 군데의 격전지 혹은 갈등 지역을 이어서 선을 그어 보면 그 안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있고 그 바깥쪽 동쪽과 서쪽 끝에는 미국의 동맹 세력들이 있다는 것이 보인다. 서쪽 끝에는 유럽의 나토가 있으며 동쪽 끝에는 이른바 IP4라고 불리는 네 나라, 즉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가 있다. 지금 유라시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은 이렇게 큰 그림 안에서 맥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 군사력, 전선 넓어지며 분산

물론 중국과 러시아는 동맹국이라고 할 수 없지만, 지정학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것에 공동의 이해관계를 갖는다. 러시아가 우선 주된 관심으로 삼고 있는 지역은 동유럽이다. 러시아는 나토의 무리한 동진으로 자국의 안보가 위협당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옛날 공산주의 소련이 행사했었던 동유럽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되찾는 것을 당면의 이익으로 삼아 왔다. 중국 또한 현재로서 가장 첨예하게 미국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곳은 말할 것도 없이 대만이다. 그런데 이 두 군데 모두 배후에는 미국의 강력한 군사력이 버티고 서서 러시아, 중국 두 나라의 팽창을 철저히 봉쇄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상태에서 미국이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유라시아 전체를 둘러싼 잠재적인 전선 혹은 전장이 너무 넓은 지역에 너무 많이 분포되어 있어서 군사력이 심하게 분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느 한쪽에서 상황이 악화되면 한쪽의 군사력을 다른 쪽으로 이동하는 등 무게중심을 옮기지 않을 수가 없게 되고, 이렇게 되면 전체의 길고 넓은 전선에서 약한 지점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한 예로 만약 동아시아 태평양에서 문제가 생기면 유럽에 진주해 있는 군사 역량을 대거 이동해야 한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대만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경우 단 1주일 만에 미국의 장거리 대함 미사일이 모두 소진되어 버릴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대만을 둘러싸고 중국과의 충돌이 현실화될 경우, 지금 유럽 방어를 위해 이탈리아 나폴리에 진주해 있는 제6함대를 뺄 가능성이 높고 또 공군력의 상당 부분도 이동해야 할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될 경우 유럽에는 심각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러난바, 나토의 군사적 역량에는 여러 한계가 있으며 미사일 등 전략 전술 무기의 축적량도 크게 부족한 상태이다. 그렇게 된다면 동유럽으로의 진출과 영향력 확대를 꾀하는 러시아에는 아주 유리한 상황을 낳을 수 있게 된다.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이란·이스라엘의 갈등을 축으로 삼는 중동 및 중앙아시아에서의 대립이다. 미국으로서는 이란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안보 위협 세력이다. 현재 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미군에서는 이스라엘에 미사일 방어체계 즉 사드를 배치하였고, 많은 이들이 이를 미국이 중동에서 진행되는 갈등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게 될 효시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이란·이스라엘 전쟁과 중동에서의 군사 갈등이 어느 정도 규모로 비화되느냐에 따라 미국이 소모해야 할 군사적 역량도 훨씬 더 늘어날 수 있다.

즉 지금 유라시아 전체를 일별해 보자면,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이를 포위하고 있는 미국의 동맹 세력들은 우크라이나, 이란, 대만 즉 동쪽 서쪽 남쪽 모두에서 심각한 전쟁이나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 또 하나의 나라가 등장한다. 바로 북한이다. 이 또한 미국의 영향력 약화를 자신의 활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이익을 가진 나라이다. 북한도 김정은 정권 들어서서 한때는 통미봉남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한 고립 탈출을 꾀한 적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한국과의 통일 포기와 적대국 선언 등 일정한 행보를 계속하면서 적대적인 자세로 전환해 버렸다.

‘세계-섬 지정학’ 파급력에 촉각

그런데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이 네 나라의 중요한 공통점이 있으니, 핵보유국이거나 핵보유에 아주 가까이 와 있는 나라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아직은 순전히 이론적 가능성이지만, 만약 이 네 나라가 서로의 핵무기 개발과 보유를 도우면서 긴밀하게 협력하며 유라시아에서 사방팔방으로 미국과 그 동맹 세력들에 대해 파상적인 공세를 취한다면, 이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을 위협하던 이른바 ‘추축 세력(Axis Powers)’의 재건을 뜻한다. 그것도 문제의 유라시아 대륙의 심장부에. 미국과 서방 세력으로서는 최악의 악몽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미국과 유라시아 대륙을 둘러싼 동맹 세력들은 긴밀한 공조 체제를 구축하려 들 것이다. 그리고 이는 너무나 당연히 동북아의 안보와 외교에도 심각한 지각 변동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지난 토요일, 나는 이러한 가능성의 우려를 담아 개인 유튜브 채널에 짧은 영상을 올린 바 있다. 그런데 일요일 아침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보수파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니컬러스 에버스탯의 기고문도 거의 똑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서방 세계의 지배 엘리트들 일각에서는 옛날 매킨더 교수가 불러냈던 ‘세계-섬 지정학’의 유령이 다시 혹은 이미 오랫동안 떠돌아다니고 있다는 증후가 아닐까?

19세기 말 유라시아 중앙부의 패권을 둘러싼 영국과 러시아의 ‘거대한 게임(Great Game)’은 결국 영·일 동맹과 러일전쟁으로 이어지면서 조선에 식민지라는 운명을 덧씌운 바 있다. 21세기에 만약 ‘세계-섬 지정학’이 되살아난다면 이는 한반도 사람들의 삶에 어떤 충격을 가져오게 될까? 이 상황에서 우리들의 현명한 선택은 무엇일까? 급변하는 세계를 제대로 읽기 위해, 낡은 머리를 깨끗이 털어내고 새로운 렌즈를 눈에 장착할 때이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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