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위법’ 지적에도 인권위 ‘소위 의결방식’ 변경…“1심 엉터리”
“‘소위원회 의견 불일치일 때의 처리’ 안건 제안자에게 이 안건을 철회할 것을 요청드립니다. 안건 제안자의 ‘자동기각’ 주장이 타당하지 않다는 점은 지난 7월 법원의 판결로 드러났습니다. 위원회가 해야 할 본연의 업무를 지연시키고 대외적 위상을 실추시키는 이러한 상황을 이제 종료시켜야 합니다.”
‘소위원회에서의 의견불일치때의 처리’ 건이 제20차 전원위원회에 공개 안건으로 상정된 28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3시간 동안 날 선 공방을 벌였다. 남규선 상임위원은 서울행정법원이 지난 7월26일 소위 기각취소 소송을 낸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손을 들어준 1심 판결로 소위 의결방식 변경의 위법성이 증명됐다며 안건 발의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인권위가 2001년 출범 이후 18만건이 넘는 진정사건을 처리했는데 8월1일 침해구제제1위원회(침해1소위)에서 김용원 위원이 수요집회 방해 진정을 독단적으로 기각하기까지 소위 운영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며 막판까지 안건 처리가 부당하다고 말했다. 원민경 위원은 “최근 본인이 참여하는 군인권보호위원회(군인권소위)에서 소위원장인 김용원 위원이 전횡을 부려 진정안건을 기각하고 있다”며 “‘자동기각’의 폐해가 이미 인권위에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미 이충상·김용원·한석훈·김종민·이한별·강정혜 위원의 입장은 확고했다. 이들은 지난 7월26일 인권위 소위 의결방식의 변경이 위법하다고 한 서울행정법원 판결에 대해 “굳이 따라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충상 상임위원은 “대법원 판결이면 모르겠지만…1심 판결은 엉터리”라는 취지로 발언했고 강정혜 위원도 ”1심 판결이 뒤집어지는 걸 많이 보았다”고 했다. 안창호 위원장은 “내가 법조인 경력이 40년”이라면서 행정법원 판결을 폄하하듯 말했다. 남규선 위원이 안 위원장에게 “인사청문회 시절엔 행정법원 판결을 존중해야 한다고 직원들에게 말하지 않았느냐”고 따지자 “(행정법원 판결이)일리가 있다고 말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충상 위원의 말을 들으니 그것도 일리가 있었다”고 했다.
이충상·김용원 위원 등은 ‘자동기각’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지난 6월부터 기존의 ‘3인 소위’를 ‘4인 소위안’으로 변경했고, 이는 이날 전원위의 주문의결안에도 반영됐다. 하지만 “소위를 4인으로 할 경우 비상임위원의 소위 참여도가 약화할 수 있고, 2대2로 갈릴 경우 ‘자동기각’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비상임위원들이 참여해야 할 소위가 늘어날 수 있어 비상임위원의 업무만 가중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한 2대2로 의견이 갈릴 경우 자동기각될 수 있다. “표결 결과 진정사건 인용에 필요한 의결정족수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 소위원장은 그 부결 선언과 함께 진정사건의 기각 또는 각하 선언을 한다”는 조항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날 안창호 위원장은 이충상·김용원 의원 등의 기존 의결 주문안에 더해 본인의 주문안을 추가해 배포했다. “소위에서 안건의 내용이 중대하거나 사회적으로 미칠 영향이 광범위하고, 표결에 나아갈 경우 인용 찬성 위원 수와 인용 반대 위원 수가 같을 것으로 예상되면, 소위원회 위원장은 그 표결에 앞서 해당 안건을 전원위원회에 회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이다. 하지만 ‘소위원장이 노력해야 한다’는 문구가 자의적이고 구속력이 전혀 없다는 비판이 나왔다. 결국 ‘노력해야 한다’의 주체가 ‘소위원장’이 아닌 ‘소위원회’로 바뀌었으나 이 역시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대해서는 남규선·원민경 위원이 끝까지 반대했다.
소위 의결방식 변경이 문제인 이유는 인권침해와 차별을 당해 진정을 낸 진정인들의 권익이 침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권위 각 소위에 오른 진정사건들이 충분한 숙의를 거치지 못한 채 기각되거나 각하될 수 있다. 인권위 상임위원(2020.1~2023.2)을 지낸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러한 결의 자체가 법률에 위배된다”면서 “오늘 결의를 한다해도 당사자가 행정소송 등으로 이의하면 법원은 의결 취소를 선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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