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122> 신비의 귀걸이, 결상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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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시대에 국제적으로 유행한 귀걸이가 있었다.
그 주인공은 결상이식(玦狀耳飾)이라고 불리는 유물로, 한쪽이 트인 고리 모양 옥 귀걸이다.
1999년 부산 동삼동패총에서는 우리나라 두 번째로 결상이식이 출토되어 신석기시대 옥 귀걸이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출토 양상을 통해 판단컨대, 신석기시대에 결상이식이 매우 귀하게 여겨졌던 것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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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시대에 국제적으로 유행한 귀걸이가 있었다. 그 주인공은 결상이식(玦狀耳飾)이라고 불리는 유물로, 한쪽이 트인 고리 모양 옥 귀걸이다. 1999년 부산 동삼동패총에서는 우리나라 두 번째로 결상이식이 출토되어 신석기시대 옥 귀걸이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절반 정도가 부러진 상태지만, 독특하게 석영으로 만들어지고 가공 흔적이 잘 남아있어 연구자료로 가치가 높다.
결상이식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연해주, 일본 등에서도 발견되어 동아시아 차원에서 사랑받은 장신구였다. 9000~8000년 전쯤 중국 내몽고 지역 또는 중국과 러시아의 경계인 우수리강 유역에서 탄생하여 주변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가장 외곽지역인 일본에서 2000점 넘게 출토되는 특이한 현상도 엿보인다.
한반도에서 결상이식은 현재까지 모두 12점이 출토되었으며, 편평한 바닥 토기가 쓰인 7500~6000년 전 무렵을 중심으로 유행하였다. 고성 문암리, 청도 사촌리, 울주 신암리·처용리, 부산 동삼동, 사천 선진리, 여수 안도, 제주 고산리·도두동·삼양동·용담동 등 중동부~남부지역에서 발견되었다.
재료로는 연옥·옥수·석영·납석 등이 사용되었고, 가운데 구멍은 드릴과 활비비를 이용한 천공(穿孔)기법으로, 귓불에 끼우는 결구(玦口) 부분은 돌과 모래가루를 이용한 찰절(擦切) 기법으로 정교하게 제작됐다.
제주 고산리 유적 출토 결상이식은 실을 사용하여 결구를 만들었는데, 이는 중국과 러시아 연해주의 결구 제작기법과 동일한 기술이다. 연구자들은 중국·러시아 연해주와 가장 멀리 떨어진 제주도에서 같은 제작기법이 확인된 명확한 이유를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결상이식이 제대로 출토되는 경우는 대부분 무덤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무덤 유적에서는 대롱옥·구슬옥·펜던트 등의 장신구와 함께 출토됐으며, 우리나라 고성 문암리와 울산 처용리에서는 의례용으로 추정되는 곱게 마연한 돌도끼와 같이 부장돼 있었다. 무덤에서 놓인 위치가 대부분 인골 머리 부분이어서 귀걸이였다고 추정한다.
출토 양상을 통해 판단컨대, 신석기시대에 결상이식이 매우 귀하게 여겨졌던 것은 틀림없다. 희소한 재료 확보와 가공이 그리 간단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사회적으로 정해진 엄격한 규율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집단 내에서 특정 역할을 맡은 소수 사람이 썼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소수의 사람은 결상이식을 착장하기 위해 귓불을 뚫는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7000년 전 무렵 신석기시대 동아시아에는 서로 다른 많은 집단이 할거했지만, 공통으로 결상이식이 어떤 신비한 힘을 가졌다고 믿었던 것 같다. 신체 변형 고통을 이겨낸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허락되었던 귀걸이의 수수께끼를 풀어낸다면, 신석기시대 문화를 밝히는 데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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