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첫 소설을 덜 망칠까

한겨레21 2024. 10. 28.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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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문학상]제16회 손바닥문학상 심사위원 서윤빈 소설가… 첫 작품 ‘루나’ 해부한 ‘나의 첫 소설 쓰기’
서윤빈 소설가의 첫 작품 ‘루나’에는 우주에서 광물을 캐는 ‘우주 해녀’들이 등장한다. 서윤빈 소설가는 소설 첫 문장을 우주 해녀들이 준비운동을 하며 몸을 푸는 장면을 보여주는 문장으로 선택했다. 사진은 제주도에서 물질 시범을 보이는 해녀의 모습. 제주도 제공

당신이 어떻게 소설 쓰기를 결심하게 됐는지는 알 수 없다. 원래부터 쓰고 싶었을 수도 있고, 200자 원고지 50장이라는 분량이 크게 부담스럽지 않으니 한번 해보자는 가뿐한 마음이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소설을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당신은 에너지를 느낀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건 흥분되는 일이니까. 당신은 대가들의 이름을 떠올린다. 카뮈와 카프카와 보르헤스와 울프와…. 요즘 들어 한강이 추가됐을 수도 있다. “어느 날 식탁에 앉아 있는데 소설이 내게 찾아왔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처럼 당신은 힘차게 자리를 잡고 앉는다. 이제 역사적인 첫 문장을 쓸 차례다. 위대한 소설들의 첫 문장이 떠오르고 당신은 그것들을 음미한다. 그리고… 한 글자도 쓰지 못한다.

모든 것은 첫 문장에 달려 있다

내가 소설 쓰기로 엄청 거들먹거릴 처지가 아니라는 건 나도 안다. 경력이 길든 짧든 내가 만난 모든 소설가는 하나같이 자기가 아마추어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게 참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스스로에 관해 비슷하게 느끼고 있다. 한 소설가는 “자신의 모든 걸 꺼내놓은, 인생의 명작을 썼다면 거기에 만족하고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겠지”라고 말했다. 정말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우리 소설가들은 모두 실패작의 전문가들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첫 소설 쓰기에 관한 다소 건방져 보이는 글을 내가 쓴다고 해도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 글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어떻게 세계 문학의 정전이 될 명작을 쓸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당신의 첫 소설을 조금 덜 망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내 데뷔작 ‘루나’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어느 정도 ‘루나’를 예시로, 제법 해부해가면서 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서윤빈 소설가의 첫 작품 ‘루나’가 실려있는 소설집 ’파도가 닿는 미래’

자, 다시 당신의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첫 문장을 어떻게 쓸 것인가? 나는 이것이 엄청나게 중요한 문제이며 놀랍게도 첫 문장과 첫 문단에 관해서만 이야기하는 소설 작법서마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첫 문장은 소설의 첫인상을 결정하고, 소설의 핵심 문제와 사건을 드러내며, 소설의 스타일을 독자가 받아들일 수 있게 안내하고…, 극단적으로는 독자가 당신의 소설을 읽을지 읽지 않을지는 첫 문장에 달려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수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첫 문장으로 찬사를 받는 소설의 목록이 ‘설국’ ‘안나 카레니나’ ‘모비딕’ 등 몇 가지 안에서 항상 돌고 돈다는 걸 떠올려보면 모든 소설의 첫 문장이 반드시 위대할 필요가 없음은 명백하다.

소설의 첫 문장은 소설을 올바르게 시작해주기만 하면 된다. 여기서 올바른 시작이란 당신이 소설 첫머리에 배치하고 싶은 에피소드가 ‘우주에서 해녀들이 준비운동을 하며 몸을 푸는 장면’이라고 할 때, 갑자기 “나는 우주선에서 태어났으며 부모가 누구인지 모른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지 않는다는 걸 뜻한다. 해당 문장은 소설 내용상 참이고 또 어떤 소설은 그렇게 시작할 수도 있겠지만, 우주에서 광물을 캐는 해녀의 세계를 먼저 소개하는 것이 순서인 ‘루나’의 첫 문장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루나’는 “나는 이오와 나란히 서서 준비 운동을 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솔라리스를 모른다고? 그렇다면…

하나 더 유념해두면 좋을 것은 소설을 쓸 때 첫 문장을 반드시 처음에 쓸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자기가 가장 쓰고 싶은, 머리에 생생하게 떠오르는 장면부터 쓰는 것이 좋다. 그편이 더 즐겁고, 글이 술술 나오며, 소설의 핵심 아이디어가 충분히 재미있고 깊이 있는지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는 내가 ‘루나’를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루나’에서 가장 먼저 쓰인 문단은 “솔라리스로 가는 길은 막혀버렸다.”(‘파도가 닿는 미래’ 중 ‘루나’, 66쪽)로 시작하는 소설의 세계관을 설명하는 장면이다. 나는 ‘루나’를 소설에 관해 다루는 소설인 메타소설로 기획했으므로 그런 식의 설명에서 출발해 몇 겹의 레이어를 씌우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켈빈이 루나에게 이 세계의 소설적 진실에 관해 설명하는 장면은 소설의 하이라이트로 쓰기에 좀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스타니스와프 렘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에스에프(SF) 문학의 거장이었는데도 그의 작품 ‘솔라리스’는 의외로 한국에서 유명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 장면은 소설의 중반부로 밀려나 새로운 쓰임을 가지게 되었다. 설명의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루나와 켈빈 사이의 긴장감을 드러내는 장면으로.

소설 ‘루나’에서 메타 소설적 세계관으로 등장하는 솔라리스의 배경이 되는 스타니스와프 렘의 걸작 ‘솔라리스’

어떻게든 한 덩어리를 만들었다면 축하한다. 당신의 소설은 드디어 시작됐다. 이제부터는 신나게 쓸 일만 남았다!고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쓰고 싶었던 장면을 쓴 당신은 이제 여기에 어떤 아이디어를 어떻게 덧붙여야 할지 고민한다. 기똥찬 아이디어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걸 당신이 만들어놓은 덩어리에 어떻게 붙이는지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소설은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야 한다는 말이 머릿속을 떠돌고, 당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려고 치면 그건 모두 너무 설명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당신은…, 또다시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있다.

내가 ‘루나’를 쓸 때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최초의 ‘우주 해녀’ 설정은 최종 결과물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해녀가 우주로 나가 자원을 채취하는 이유는 지구를 둘러싼 운석들에 현대 전자산업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희토류 광물이 다량 포함돼 있기 때문이었다. ‘루나’ 이야기의 핵심은 석유나 다이아몬드에 얽힌 슬프고 잔혹한 사연처럼 자원 정치에 관한 것이었다. 이런 설정의 흔적은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등장인물의 이름으로 남아 있었는데, 소설을 보내기 직전까지 루나의 이름은 ‘루테’였고 친구들의 이름 역시 희토류 원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란타넘족 원소들에서 따온 것이었다.

소설은 연루시키는 장르

설정과 아이디어를 이야기에 맞게 바꾸라고? 하지만 그러면 내 이야기의 주제의식이 사라져버릴 텐데? 당신은 그런 의문을 가질지도 모른다. 그건 정당한 의문이다. 동시에 당신의 이야기에 스스로 브레이크를 거는 의문이기도 하다. 설정과 주제의식이 그 자체로 소설에 가치를 부여해줄 때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소설은 이야기이며 하나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주제의식을 내포한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인물이 하는 말과 행동, 선택, 갈등이 전개되는 양상, 배경 묘사 등 소설을 이루는 모든 것 안에 주제는 은밀하게 숨어 있다. 반대로 말하면 당신은 주제를 ‘염두에  두고’ 문장들을 그 주제에 ‘연루시키는’ 방식으로 이야기의 멋진 포장지 안에 주제를 초콜릿처럼 넣을 수 있다는 뜻이다.

‘루나’에서 지구에서 온 이방인 켈빈을 따라 지구로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루나의 모습에는 자원 정치의 양상에서 드러나는 불평등의 구조가 유사하게 작동하고 있다. 그녀는 다른 방식의 인생이 가능한지 알지 못한다. 켈빈의 제안이 정말로 사랑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루나를 속이려는 것인지는 루나도 독자도 알 수 없으므로 표면적으로는 사랑 이야기처럼 보이는 ‘루나’에는 어쩐지 불편하고 불온한 긴장감이 흐르게 된다.

그런데 절대로 그게 전부가 아니다. 내가 자원 정치에 관한 문제의식을 전면에 드러내는 소설이 아니라 그것을 ‘연루시킨’ 소설을 썼기 때문에 소설은 더욱 풍부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모계 사회에서 집단생활을 하는 루나와 친구들의 ‘자기 것’을 가지고자 하는 욕망, 스타니스와프 렘의 ‘솔라리스’를 활용함으로써 발생하는 메타적 효과, ‘나아가는 것보다 돌아오는 것이 중요하다’는 우주 해녀로서의 정체성과 ‘나아가서 그 너머를 확인하’고자 하는 내면의 목소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루나의 모습에서 드러나는 반성장 소설적 면모…. 지금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풍부함이 ‘루나’에는 담겨 있다.

아마 당신도 소설은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것이다. 이런 게 내가 생각하는 소설의 보여주기다. 설명하는 문장을 쓰면 안 되는 게 아니라, 소설이 어떤 의미인지에 관해 소설이 스스로 확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 아무리 주제의식이나 설명이 장면화돼 있다고 해도 그것이 스스로 주제를 주장하는 이상 그것은 설명적이다. 적어도 지금의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렇다. 소설은 연루시키는 장르다.

목적지까지 여정이 만족스러웠는가

마지막으로 한마디. 짜잔 하는 마무리는 필요 없고, 가능하면 마지막 장면을 먼저 써놓는 편이 좋다. 목적지가 있는 지도를 따라가면 좀 헤매더라도 반드시 도착할 수 있다. 글이 부족하다는 생각이나 아직 때가 아니라는 생각보다는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그 여정이 만족스러웠는지만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루나’의 마지막 장면도 그렇게 쓰였고, 나는 여전히 모든 소설을 그렇게 쓰고 있다.

당신의 첫 소설을 응원한다.

서윤빈 소설가

 제16회 손바닥문학상을 모집합니다
대상 논픽션·픽션 불문 ‘인공지능’을 주제로 한 문학글 
 * 주제어 외에 작품 제목을 정해주세요
분량 200자 원고지 50~70장(원고 분량을 지켜주세요. 감점 요인이 됩니다.)
마감 2024년 11월10일(일요일) 밤 12시
발표 12월9일 배포되는 한겨레21 제1542호(12월16일치)
상금 대상 300만원, 우수상 100만원(제세공과금 본인 부담)   
 * 선정 이후에 표절이나 중복 응모가 밝혀지면 수상을 취소할          수 있습니다.
응모 방법 아래아한글이나 MS워드 파일로 작성, 제목에 [제16회 손바닥문학상 공모] 쓰고 ‘작품명’ ‘응모자 이름’ 포함, 전자우편 본문에 응모자 연락처 기재해 아래 전자우편으로 접수
손바닥문학상 담당자 pal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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