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이익 관철 위해 기업인 집 앞 골목 시위···"주민 불편 호소"

구경우 기자 2024. 10. 28.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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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재건축조합 등 기업인 자택 시위 지속
현대트랜시스 영업익 2배 성과급 요구 시위
전삼노는 이재용 회장 없는데도 집 앞 찾아
소음 규정 80dB, 지하철 객차 수준으로 커
주민 불편 줄이기 위해 소음 규제 강화 필요
현대트랜시스 노조가 26일 현수막과 피켓 등을 동원해 서울 한남동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자택 인근 주택가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독자제공
[서울경제]

이익 단체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기업인 자택 앞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동네 골목을 점거하고 시위를 하는 것인데 지나친 소음에 주민들마저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현대트랜시스 영업익 2배 성과급 요구 관철 안 되자 정의선 회장 자택 앞 시위

성과급을 요구하며 파업을 강행하고 있는 현대트랜시스 노조는 지난 26일 용산구 한남동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자택 주변에서 상경 투쟁을 벌였다.

약 20여명의 현대트랜시스 노조원들이 주말 오전 현수막과 피켓 등을 동원해 주택가에서 시위를 했다. 이로 인해 인근 주민들은 주말에 소음에 시달리는 불편을 겪어야 했다.

현대트랜시스가 시위를 벌이는 이유는 성과급을 관철하기 위해서다. 현대트랜시스 노조는 올해 임단협에서 연간 매출액(지난해 연결 기준 11조6940억원)의 2%를 성과급으로 지급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약 2300억 원을 성과급으로 지출하라는 것이다. 2300억원은 현대트랜시스의 지난해 연결 기준 연간 영업이익인 1170억원의 약 2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사측은 합리적인 결과를 내기 위해 교섭 재개를 요구했지만 노조는 이를 뿌리치고 주말에 정 회장 자택 앞에서 시위를 하는 쪽을 택했다. 특정 기업 노조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주민들을 볼모로 시위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삼노, 이재용 회장 없는데도 집 앞 시위 이익 관철 위해 주말에도 골목 점거·소음
현대트랜시스 노조가 26일 현수막과 피켓 등을 동원해 서울 한남동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자택 인근 주택가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독자제공

일반 시민에게 불편을 주는 골목 시위는 이번 뿐만이 아니다. 지난 7월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자택 앞에서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시 이 회장은 2024년 파리올림픽 참관과 비즈니스 미팅 등을 위해 유럽 출장 중이었다. 하지만 노조는 여론의 주목을 받기 위해 빈집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당시 이웃 주민들은 전삼노 관계자들과 이를 취재하려는 언론, 상황을 관리하려는 경찰 등이 몰리면서 소동이 일기도 했다. 같은 달 한화오션 노조 근로자들은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이 3개월 넘게 진척되지 않자 서울 가회동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자택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파업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서울 장충동 이재현 CJ 회장 자택 앞에서 벌어진 2022년 CJ 대한통운 택배노조 시위, 2018년 서울 평창동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자택 인근에서 열린 현대중공업노조 시위 등은 주변 주민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했다.

정치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공공개발 철회, 전세사기특별법 제정 등을 요구하며 다수 시위가 열린 서울 본동 원희룡 당시 국토부장관 자택 앞, 오세훈 서울시장의 자택이던 서울 자양동 아파트, 추경호 당시 기재부장관이 거주하던 서울 도곡동 아파트 등 고위공직자 자택 인근에서도 크고 작은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마포구 소각장 신설 반대 등 각종 시위가 끊이지 않자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웃들께 평온한 일상을 돌려 드려야겠다"며 주거 밀집 지역이 아닌 서울 한남동 내 위치한 시장 공관으로 이주하기도 했다.

민폐 시위로 주민들 소음 피해 호소 선진국 수준으로 소음 규제 강화해야
삼성전자 사측과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의 임금 인상 협상이 결렬되자 8월 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자택 앞에서 조합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노조가 기업인 자택 앞이나 인근 일반 주택가에서 무리한 민폐 시위를 벌이는 경우가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노조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일반 시민의 생활마저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민들의 불편을 고려해 집회·시위의 소음 기준을 현재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올해 8월부터 국민 의견 수렴을 거쳐 주거지역 등의 집회·시위 소음 기준치를 5 또는 10데시벨(dB)씩 하향 조정하는 집시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됐다. 이에 따라 최고 소음 규제 기준치는 주간 80데시벨, 야간 70데시벨 및 심야 65데시벨 이하로 낮아졌다. 하지만 80데시벨은 지하철 객차 안의 소리와 맞먹는 소음으로 청력 손실을 유발할 수 있는 수준이다.

반면 독일은 주거지역 내 집회·시위 소음이 주간 50데시벨, 야간 35데시벨을 초과할 수 없다. 미국 뉴욕에서는 집회 신고를 했더라도 확성기를 사용하려면 별도의 소음 허가를 받아야 한다. 유럽과 캐나다와 뉴질랜드 등에서는 집회·시위 중 표출되는 극단적 혐오 표현에 대한 형사처벌도 가능하다.

법조계 전문가는 “정부가 지난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 71%가 집회·시위 요건 및 제재 강화에 찬성했다”며 “주거지역 내 다수 시민의 권리를 충분히 보호할 수 있도록 글로벌 주요국 수준의 실효성 있는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구경우 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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