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월급제’ 전국 도입 가능할까… 서울 제외, 주 40시간 근무 정한 기사 9%뿐

세종=김민정 기자 2024. 10. 2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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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별 법인 택시 소정근로시간 실태조사 결과
광주·울산·세종·전북, ‘주 40시간’ 근무 기사 0명
“고령 기사, 긴 근무 시간 부담에 이탈 우려”
자발적 비정규직 선택 66.6%… ‘역대 최고’

택시 월급제가 시행되고 있는 서울을 제외한 전국 법인 택시 기사 중 소정근로시간을 주 40시간 이상으로 정하고 일하는 기사가 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정근로시간이란 근로자가 회사와 협의해 일하도록 정한 시간을 의미한다. 법인 택시 기사들의 근로 시간을 40시간 이상으로 의무화하는 택시 월급제의 전국 확대 시행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전망이다.

28일 국토교통부가 국회에 제출한 ‘시도별 법인 택시 소정근로시간 실태조사 결과’ 자료에 따르면, 서울을 제외한 지역의 법인 택시 기사(5만2245명) 중 소정근로시간이 주 40시간 이상인 기사는 4782명(9.1%)에 불과했다.

서울을 포함하면, 전국 법인 택시 기사 7만2802명 중 소정근로시간이 40시간 이상인 기사는 1만9085명으로 전체의 26.2%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소정근로시간이 40시간 미만인 기사는 4만6730명(64.1%)에 달했고, 이 중 1만1101명은 주 20시간 미만으로 계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경영 등 기타 사유로 소정근로시간이 없거나 무응답인 경우는 6987명(9.5%)이었다.

서울시에서 운행하는 한 택시 모습. /뉴스1

전국 택시업계는 택시 월급제 도입을 앞두고 있다. 이 제도는 법인 택시 기사들의 소정근로시간을 주 40시간 이상으로 정하고 있다. 기존 사납금 제도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2019년 8월 법 개정으로 도입됐다.

이 제도는 지난 2021년부터 서울에서 우선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소정근로시간이 40시간 이상인 기사 비율이 69.6%에 그치는 상황이다. 서울의 2만557명의 법인 택시 기사 중 1만4303명만이 소정근로시간 40시간 이상으로 계약한 것이다. 이는 서울이라는 조건이 비교적 유리한 대도시에서도 택시 월급제가 완전히 정착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택시 월급제는 아직 전국적으로 시행되지는 않고 있다. 시행이 2026년 8월까지 유예된 상태다. 국토부는 지역별 택시업계 운영 실태를 조사하고 택시 산업 전반에 대한 종합적인 발전 방안을 만들어 내년 8월까지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실태 조사 결과 광주광역시, 울산광역시, 세종특별자치시, 전라북도에서는 소정근로시간이 주 40시간 이상인 기사가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광역시에서는 소정근로시간 40시간 이상으로 계약한 택시 기사가 3명에 불과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법인 택시 회사마다 소정근로시간을 산정하는 방식이 달라, 주 40시간 이상 근무하는 기사가 없는 지역도 있다”며 “통상 주 30시간을 소정근로시간으로 정하고, 이를 초과하는 근무 시간에 대해서는 별도로 성과급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손민균

최근 경제 전반에서 나타나는 비정규직 근로자 선호 경향은 택시 월급제 도입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8월 경제활동인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 근로자 비율은 전년 대비 1.2%포인트 증가한 38.2%로 나타났다. 이는 많은 근로자들이 정규직보다는 유연한 근무 조건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비정규직 근로자 중 자발적으로 이 직종을 선택한 비율은 66.6%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러한 변화는 택시 업계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택시 기사들 중 상당수는 장시간 근무를 부담스러워하며, 소정근로시간이 40시간 이상인 근무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특히 고령의 기사들은 긴 시간 근무를 감당하기 어려워 월급제가 도입될 경우 이탈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월급제가 도입되면 기사들이 성과와 상관없이 고정된 임금을 받게 되고, 이전처럼 자율적으로 근무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근무 시간에 대한 압박을 느낄 수 있다”며 “일부 기사들은 실제로 운행하지 않고 쉬거나, 시간만 채워 월급만 받아 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택시 월급제를 전국적으로 시행하는 것보다, 택시 업계의 현실을 반영한 유연한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동영 한국개발연구원(KDI) 전문연구원은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근로자가 증가하는 일자리의 패러다임 변화를 제도가 반영해야 할 때”라며 “규제 완화를 통해 법인 택시를 활용한 다양한 수입 확보 방안을 마련해주는 것이 근로자와 사업주 모두 상생하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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