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미국 진출 한국 기업의 인력난, 그 해법은!

정양범 매경비즈 기자(jung.oungbum@mkinternet.com) 2024. 10. 28.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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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劉備)의 가족을 데리고 조조(曹操)의 진영에 머무르던 관우(關羽)는 유비가 살아 있다는 말을 전해 듣고 옛 주군을 찾아 천리길을 나섰다. 도중에 관우는 앞길을 막는 다섯 관문, 여섯 장수의 목을 베며 거침없이 진격한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유명한 고사 ‘오관참육장(五關斬六將)’으로, 이는 뜻이 있다면 겹겹이 가로막는 난관을 과감히 돌파해야 한다는 비유이다. “관우가 가니 통과시켜라” 라는 조조의 통관문첩(通關文牒), 즉 통행증이 사전에 발행되었다면 인명 손실은 없었을 것이다.

통행증의 의미로는 통관문첩 외에도 여러 단어가 시대에 따라 사용되었지만, 청나라 때부터는 ‘신분을 조회(照會)하고 보호(保護)하라’는 의미에서 ‘호조(護照)’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이 단어는 1900년대 초까지 조선에서도 쓰였다. 서양에서 통행증은 ‘Passport’였다. 항구(Port) 통과(Pass)함을 허락한다는 의미이다. 우리나라 여권에도 인쇄된 바와 같이 ‘통행을 허가하고 안전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하는 문구가 있는 통행증은 고대 페르시아부터 몽고제국, 중세 영국까지 흔히 있었지만, 19세기까지도 국제여행 시 필수 지참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기차 등 빠른 교통 수단이 발달함에 따라 통일된 국제규격의 통행증 즉, 여권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드디어 1920년 국제연맹에서 표준여권을 마련하였고, 그것은 곧 해외여행에서 필수가 되었다. Passport라는 단어를 일본과 우리나라는 ‘여권(旅券)’으로 번역하여 쓰고 있으나, 중국은 청나라 때부터 쓰던 통행증 개념을 그대로 써서 지금도 ‘호조(護照; 후짜오)’라 한다.

초기의 여권에는 사진이 없었으나, 1차 세계대전 전후 스파이들이 입국을 시도하다 적발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사진 있는 여권이 요구되었다. 뿐만 아니라 여권 소지자라 하더라도 국익상 입국을 허락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입국을 허락한다는 사증(査證) 즉, 비자(Visa)가 필수로 요구되기 시작하였다. 비자(Visa)는 ‘인정한다, 보장한다’라는 뜻의 라틴어 ‘Vise’에 어원을 둔 보통명사이다. 흔히 1976년부터 미국의 한 은행이 창안한 신용카드인 VISA가 Visa에서 유래된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는 않다. ‘VISA’ 스펠링을 써 놓고 읽으라 할 때, 전세계 거의 모든 언어에서 동일하게 발음되기 때문에 채택한 로고이자 브랜드이지, 여행 비자(Travel Visa)와는 전혀 관련 없다.

미국 비자는 입국을 확정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합법적인 비자나 ESTA를 가지고 비행기에서 내렸지만, 공항 입국 심사대에서 입국을 거절당해, 바로 다음 비행기에 태워져 한국으로 보내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는 미국 비자는 ‘입국 예비허가’ 정도이고, 입국에 대한 최종적인 허가는 도착한 공항이나 항구의 ‘관세 및 국경보호청(CBP)’ 담당자가 내린다는 의미이다.

잘 알다시피, 이민자의 나라이지만 아직도 비자발행에 가장 까다롭고 이민정책에 논란이 치열한 나라가 미국이다. 쉽게 말하면, 먼저 온 이민자들이 새로운 이민자를 더 이상 받지 말자고 선동하는 판세가 현재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다. 트럼프는 그것을 간파하여 중남미에서 밀려 올라오는 이민자를 막는 강경 이민정책을 외치고 있으니, 민주당의 후보보다는 이민정책에서는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트럼프 1기 집권시에는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치고 중남미 난민과 불법이민을 봉쇄하였다. 그 결과 공장과 서비스업의 인력이 부족하여 인건비가 크게 올라 인플레이션의 기폭제가 되었다. 11월 초, 대선 결과에 따라 그 상황은 재연되어 그 전보다 더 심각한 인건비 상승이 현실로 될 수 있다.

미국 앨라배마 남쪽 걸프 만의 모빌 항구에서 시작하여 몽고메리 그리고 조지아 애틀란타를 통과하여 대서양의 사바나(Savannah) 항구로 이어지는 고속도로 주변에는 한국의 자동차 및 배터리 업체가 줄지어 입주해 있으니 이를 ‘K자동차 벨트’라 부른다. 이 K 벨트에 입주한 화학, 소재, 배터리, 자동차 부품 그리고 엔지리어링 및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한국 업체의 수는 무려 수백 개가 넘는다. 앨라배마와 조지아 주는 지금도 활발하게 그 선상에 한국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고 있으므로 여전히 한국 기업들이 이 벨트 상에 신규 진입하고 있다. 문제는 단순 조립공, 숙련공 및 고급 인력 그리고 심지어 인사, 재무 등 일반 사무직조차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인건비의 상승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한국 기업들이 노동력 확보를 위해 편법을 쓰다가 미국 노동 당국에 적발된 사례도 종종 있다. 또 최근에는 중남미 출신 근로자들로부터 집단소송(Class Action)까지 당해 언론에 보도되었다.

현재 미국은 약 백 개가 넘는 다양한 비자를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 일할 수 있는 비자의 종류는 많지 않고 취득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E, L, H 그리고 TN 비자 등이다. 그 중 TN 비자는 미국이 북미자유무역협정(USMCA) 대상국인 캐나다와 멕시코의 학사 이상 고급인력들이 미국에서 일하도록 허락해주는 비자이다. 통상적으로 미국은 일할 수 있는 비자의 연간 발행 건수에 한도를 두고 있지만, 캐나다와 멕시코인에게 주는 TN비자에는 이런 제한조차 안 둔다. 따라서 학위를 위조해서 TN 비자를 받아 입국한 경우, 고급 전문직이 아닌 단순 조립공으로 일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그들이 모여 한국 기업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내고 있으니 답답한 현실이다.

또 미국은 칠레와 싱가폴과도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으므로, 각국에 연간 5,400개씩 취업 비자를 따로 내주고 있다. 호주에게는 FTA 대가로 연간 15,000개의 취업비자(E3)를 따로 법으로 할당해서 내주고 있다. 고급 전문직으로 일할 수 있는 H-1B비자는 연간 개수가 정해져 있는데, 추첨으로 배정된다. 그나마 중국과 인도인들이 인해전술로 싹 쓸어가고 있으니 한국인이 당첨되는 경우는 로또보다도 어렵다.

이제 한미간의 자유무역협정은 발효된 지 12년이 넘었다. 캐나다, 멕시코, 칠레, 싱가폴, 호주처럼 우리도 FTA 파트너이지만, 그들과는 달리 한국인을 위한 전문직 비자는 따로 할당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 발효 당시부터 약 15,000개의 전문직 취업 비자를 받기 위해 전직 대통령, 주미 대사 등이 나섰지만 아직도 못 받아 냈다. 최근에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이나 미국 하원 의원이 한국인을 위한 특별 취업 비자 할당 법안을 추진 중이지만 그 성취 여부는 불투명하다. 더구나 공화당의 트럼프가 집권한다면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나 IRA(인플레이션감축법) 등 미국의 적극적 투자유치에 부응하여 미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의 수가 많아진 지금 상황에서 절실한 것이 한국인만을 위한 취업비자 할당이다. 이제 우리 기업들은 그 혜택을 누릴 자격이 충분히 차고도 넘친다. 삼성, 현대차그룹, SK, LG 등 대기업이 대미 투자를 어느 FTA 국가보다도 활발하게 진행해왔고, 그들과 동반 진출한 부품 및 관계회사들이 미국 및 한국 경제에 기여하는 정도를 생각한다면 호주나 칠레, 싱가폴에 비해 푸대접을 받을 이유는 하나도 없다. 한미간 FTA 이후 미국의 대한(對韓) 무역적자는 540억 달러(약 71조원)를 넘어 사상 최고치에 달하고 있다. 그 무역적자의 상당 부분은 자동차 및 그 부품 그리고 배터리 산업에서 생긴다고 한다. 이는 K 자동차벨트 등에 한국 기업의 투자가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현지 생산을 준비하면서 기계설비나 중간재를 한국의 모기업 등에서 조달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가면서 점차 그 비중은 해소될 것이니 문제는 아니다.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그들이 어디에 있든 간에, 현지에서의 지속적 성장과 고용창출을 위해서는 한국의 기술과 노하우를 습득하고 동료 현지인에게 전파할 수 있는 고급인력이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현재 미국에는 그럴 만한 인력이 태부족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그토록 염려했던 허술한 미국 공교육이 초래한 현실이다. 금수저 트럼프는 미국 제조업의 인력난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이제 해법 중의 하나는 한국에서 정년 퇴직한 또는 기술 있는 한국인들이 쉽게 취업비자를 받아 미국의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것이다. 정부는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던 간에 12년간 받아온 차별을 더 이상 받지 않도록 팔 걷고 나설 때이다. 관우의 ‘오관참육장’ 기개가 필요한 시점이다. 법안은 나와 있다.

[진의환 매경 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소프트랜더스㈜ 고문/ 전 현대자동차 중남미권역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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