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 신해철 없는 10년, 그가 떠났다는 거짓말은 멍으로 남았다 [추모공연 리뷰]

고경석 2024. 10. 28.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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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7일 신해철 10주기 추모 공연 열려
싸이, 이승환, 국카스텐, 김범수 등 출연
26일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열린 신해철 10주기 추모 콘서트에서 그룹 넥스트가 연주하고 있다. 넥스트유나이티드·드림어스컴퍼니 제공

“10년 전 가을에 들은 지독한 거짓말이 하나 있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10년 전 들은 거짓말은 얼마나 황당하고 독했는지, 지금도 가슴에 멍으로 남아 있습니다.”

26일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열린 신해철 트리뷰트 콘서트 ‘마왕 10th: 고스트 스테이지’에서 라디오 DJ 배철수는 이렇게 말했다. 미리 녹음된 음성으로 관객과 만난 배철수는 자신이 진행하는 MBC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고정 코너인 ‘철수생각’ 형식을 빌려 2014년 10월 27일 의료사고로 세상을 떠난 신해철을 추모했다. “세상의 성공 논리를 줏대 있게 거절하면서도 스스로 행복하려는 사람이었다”고 칭하기도 했다.

26일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열린 신해철 10주기 추모 콘서트에서 가수 싸이가 공연하고 있다. 고경석 기자

'성덕' 싸이 "해철 형은 추모도 유쾌하길 바랐을 것"

27일까지 열린 2회 공연 중 첫날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신해철이 가깝게 지냈던 가수 싸이의 무대였다. 40분 정도의 길지 않은 공연이었지만 밴드와 함께 무대에 오른 싸이는 “24년째 댄스가수 외길 인생인 제가 무작정 댄스만 하는 게 아니라 공연에서 항상 밴드와 협연하고 있는데, 제게 밴드와 협연을 알려준 건 (신해철) 형이었다”고 말했다. “내가 아는 형은 추모도 유쾌하게 하길 바랄 것”이라는 글과 함께 ‘챔피언’을 부르며 공연을 시작한 싸이는 ‘강남스타일’까지 7곡을 일순에 내달렸다. ‘예술이야’를 부를 땐 “제가 만든 노래 중 형에게 가장 칭찬을 많이 받은 곡”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관객의 앙코르 요청에 돌아온 그는 “성덕(성공한 덕후)의 무대”라면서 ‘해에게서 소년에게’ ‘나에게 쓰는 편지’ ‘그대에게’를 메들리로 부르며 40, 50대가 주축이 된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가수 신해철. 넥스트유나이티드 제공

‘마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신해철의 10주기를 추모하는 이번 공연에는 첫날 싸이 외에도 그룹 해리빅버튼과 넬, 슈퍼주니어 예성, 마마무 솔라, 김범수 등이 무대에 올랐고 둘째 날에는 이승환, 전인권밴드, 에피톤 프로젝트, 그룹 국카스텐과 엑스디너리 히어로즈 등이 공연했다. 전인권밴드를 제외한 각 팀은 자신들의 곡 3~7곡을 부르고 신해철의 노래 한두 곡을 연주했다. 넬은 ‘날아라 병아리’, 김범수는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국카스텐은 ‘일상으로의 초대’와 ‘라젠카, 세이브 어스’, 이승환은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를 불렀다.

공연의 서두를 장식한 넥스트의 세 멤버 이수용(드럼), 김세황(기타), 김영석(베이스)은 홍경민, 플라워 고유진, 신화 김동완의 목소리와 함께 ‘라젠카 세이브 어스’ ‘더 드리머’ ‘머니’ ‘코메리칸 블루스’ 등을 연주하며 공연장을 뜨겁게 달궜다. 김영석은 “신해철의 노래가 계속 들리게 되길 원하고 그에 관한 추억이 오래 기억되길 원한다”고 말했다. 고인의 배우자 윤원희씨가 대표인 넥스트 유나이티드와 음악 유통사 드림어스컴퍼니가 기획한 이번 2회 공연에는 1만2,000여 관객이 모였다. 첫날 공연은 예정보다 한 시간을 더 채워 4시간 반가량 이어진 뒤 끝이 났다. 공연장 내부엔 신해철의 음반과 악기, 그가 사용하던 소품과 작곡 노트 등을 모은 전시도 마련됐다.


관객들 "신해철 곡 비중 적어...연출, 음향도 아쉬워"

신해철은 가요 역사상 보기 드문 궤적을 보인 인물이다. 1988년 그룹 무한궤도 멤버로 대학가요제에 참여해 ‘그대에게’로 대상을 받으며 음악 활동을 시작한 뒤 스타 가수로 음악 차트를 누비다 갑자기 록 밴드 넥스트를 결성해 다양한 실험을 거듭했다. 싱어송라이터 윤상과 결성한 일렉트로닉 듀오 ‘노땐스’, 솔로 프로젝트 모노크롬, 얼터너티브 록 밴드 비트겐슈타인 등을 통해 끊임없이 변신을 시도했다.

27일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열린 신해철 10주기 헌정 콘서트 '마왕 10th: 고스트 스테이지' 공연장에 신해철의 작업실이 재현돼 있다. 연합뉴스

TV 토론 프로그램에 자주 패널로 초청될 만큼 직설적이고 자신감 넘치며 거침없는 언변과 화술로 추종자를 양산했다. ‘마왕’ ‘교주’라 불리며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로 사랑받았던 그는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에 출연하며 개그 본능을 펼치기도 했다. 발라드에서 댄스음악, 하드 록, 프로그레시브 록, 일렉트로닉 등 다양한 장르를 종횡무진하고 실험을 거듭하면서도 대중성을 잃지 않는 감각은 선후배 음악가들에게 적잖은 영감을 줬다.

방탄소년단 제이홉은 이번 콘서트 무대에 오르는 대신 영상을 통해 “나를 포함한 많은 아티스트에게 영감을 준 마왕”이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둘째 날 공연한 국카스텐의 하현우는 “신해철의 음악을 초등학생 때 알았는데, 어린 시절에 들었을 때도 그의 음악의 결이 달랐다는 것을 느꼈다”며 “늘 듣던 음악이 아닌, (신해철 음악의) 신선함 때문에 많이 좋아했다”고 회고했다.

공연을 마친 뒤 관객들 사이에선 "여러 음악가들의 공연을 볼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10주기 추모 공연임에도 신해철의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적어 아쉽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첫날 공연을 본 40대 관객 김지훈씨는 “신해철의 곡이나 관련 영상이 많지 않은 점이 아쉬웠고 출연진 구성, 공연 연출, 곡 구성, 음향 등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았다”면서 “10주기였던 만큼 추모의 뜻을 담아 조금 더 신경 써서 기획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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