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성추행한 가톨릭 신부가 또다시 아동 돌보네…“시간이 약이라고? 치유받길 원합니다” [씨네프레소]

박창영 기자(hanyeahwest@mk.co.kr) 2024. 10. 28.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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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프레소-137] 영화 ‘신의 이름으로’

*주의: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인공 알렉상드르(멜빌 푸포)는 어린 시절 성당에서 프레나 신부에게 성적으로 착취당했다. 아이가 감당하기엔 어두운 기억이었다. 그렇지만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사회적으로 선망되는 일자리를 갖게 됐고, 화목한 가정도 꾸렸다.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알렉상드르는 다시 온몸이 뻣뻣하게 굳는 경험을 한다. 프레나 신부가 여전히 성직자로서 아이를 양육하고 있단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신부로 계속 활동하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최소한 아이와 관련된 일에서는 손 떼야 하는 게 아닐까. 그는 프레나 신부에게 상처받게 될지 모를 아이들을 위해 용기를 낸다.

선망받는 직업을 갖고, 화목한 가정을 꾸렸지만 주인공은 어린 시절 신부에게 당한 성추행 피해로 여전히 고통받는다. [찬란]
이 문제를 성당 차원에서 해결하고 싶었던 알렉상드르는 또다시 상처받는데, 성당엔 해결 의지가 전혀 없음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성당은 되레 조직이 받을 피해를 걱정했다. “누구도 그 행위의 결과로 고통을 받으면 안 된다” “교회가 입은 상처를 치유하길 원한다”는 등의 말을 돌려줬다. 피해자인 그가 입은 아픔은 고려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프레나 신부와 손을 잡은 채 주기도문을 외워야 하는 상황에까지 몰린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가정생활을 영위하는 데도 큰 어려움으로 작용한다. [찬란]
회개는 신과 인간의 일, 인간 사이에선 처벌이 먼저
‘신의 은총으로’(2020)는 종교가 ‘회개’를 너무 중시함으로써 개인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데 실패한다고 지적한다. 회개를 통해 신에게서 죄 사함을 얻었다는 믿음 때문에 정작 피해자에게 사죄하는 과정이 축소된다는 것이다. 신의 용서는 어디까지나 신과 신자 사이의 일일 뿐이므로 중범죄를 저지른 죄인은 일단 감옥에 보내는 게 먼저라는 주장이다.

주인공은 신자의 상처에 무심한 성당 대신 법에 호소하기로 마음먹는다. 그의 결단은 다른 피해자의 용기를 북돋고, 피해자 연대 모임인 ‘라 파롤 리베레’가 결성되기에 이른다. 이들은 가해자인 프레나 신부뿐만 아니라 범죄를 묵인한 추기경과 교구를 상대로 한 싸움을 펼친다.

피해자 연대 모임인 ‘라 파롤 리베레’는 가해자인 신부뿐 아니라 교구 전체를 상대로 한 싸움을 펼친다. [찬란]
물론 한 단체로 모였다고 해서 전부 같은 생각을 지닌 건 아니다. 어떤 이는 얼굴을 공개해야 자신의 당당함이 드러난다고 역설하는 반면, 누군가는 본인의 피해 사실이 드러나는 게 꺼려져 얼굴을 가리길 원한다. 몇몇 멤버는 사회성과 인성에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며 조직 운영에 해를 끼치기도 한다.

감독은 이처럼 피해자 단체와 개별 구성원이 가진 문제를 ‘굳이’ 드러낸다. 말하고 싶은 바가 있기 때문이다. 세상엔 ‘피해자다움’이란 게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해자는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다. 화합할 수도 있고 분열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에도 그들이 피해당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주인공은 가해자가 여전히 아동을 돌보는 직무를 담당한다는 점을 발견하고 충격에 휩싸인다. [찬란]
“시간이 약”이란 말, 또다른 폭력일 수도
프랑스 가톨릭 리옹 교구에서 발생한 실화를 소재로 삼은 이 영화는 ‘아동 성폭행’ 문제를 다루면서 주로 성인들을 등장시킨다.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플래시백으로 그리는 대신 어른이 된 피해자들이 견뎌내는 현실을 그린다.

20년이 지났든 50년이 흘렀든 피해자에게 그 일은 현재진행형이다. 30~50대인 피해자들은 여전히 그날을 떠올리면서 눈물짓는다.

배우자와 성관계를 할 때면 가해자 신부가 옆에서 쳐다보는 느낌을 받는다고 증언하는 사람도 있다. 적어도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피해자 본인을 제외하고선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무거운 소재를 다루지만 관객을 몰입시키는 힘이 크다. 사건의 핵심으로 속도감 있게 들어가는 전개 덕분이다.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신의 은총으로’ 포스터 [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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