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디바’ 마리아 칼라스, 美서 성공적 데뷔 무대[역사 속의 This week]

김지은 기자 2024. 10. 28.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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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역사에서 BC란 칼라스 이전(Before Callas)을 뜻한다." 영화감독이자 오페라 연출가였던 이탈리아의 거장 프랑코 제피렐리는 이렇게 칭송했다.

1954년 11월 1일, 유럽에서 명성을 날리던 칼라스는 시카고 리릭 오페라 극장에서 미국 데뷔 무대를 치렀다.

이날 그는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에서 주연을 맡아 독특한 목소리와 강렬한 연기로 관객들을 사로잡으며 미국 진출의 성공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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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TV 토크쇼 ‘스몰 월드 (Small World)’에 출연한 마리아 칼라스의 모습. 위키피디아

■ 역사 속의 This week

“오페라 역사에서 BC란 칼라스 이전(Before Callas)을 뜻한다.” 영화감독이자 오페라 연출가였던 이탈리아의 거장 프랑코 제피렐리는 이렇게 칭송했다. 미국의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황금빛 목소리를 가진 태풍”이라고 극찬했다. 20세기 전설적인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를 두고 한 말이다.

1954년 11월 1일, 유럽에서 명성을 날리던 칼라스는 시카고 리릭 오페라 극장에서 미국 데뷔 무대를 치렀다. 그는 7년 전 뉴욕에서 변변한 활동을 못하고 이탈리아로 떠났을 때 그 모습이 아니었다. 90㎏에 달하는 몸무게에서 30㎏ 이상 체중을 감량하고 전혀 다른 사람으로 나타났다. 한 해 전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오드리 헵번에게서 자극을 받은 것이 다이어트의 계기였다. 이날 그는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에서 주연을 맡아 독특한 목소리와 강렬한 연기로 관객들을 사로잡으며 미국 진출의 성공을 알렸다. 이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도 활약하며 세계적인 디바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했다.

1923년 미국에서 그리스 이민자의 딸로 태어난 칼라스는 부모의 이혼으로 어머니를 따라 그리스로 갔다. 일찍이 음악적 재능을 보여 13세 때 국립음악원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교육을 받았다. 무대 경험을 쌓아가다 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1945년 미국으로 돌아왔지만, 오디션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1947년 베로나에서 ‘라 조콘다’로 데뷔해 주목받게 됐고, 이후 라 스칼라, 메트로폴리탄 등 세계 최고의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을 이어가며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푸치니의 ‘토스카’,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를 비롯한 수십 편의 작품에서 주연을 맡아 다양한 배역을 완벽하게 표현해 냈다. 특히 ‘노르마’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등 화려한 기교를 필요로 하는 벨칸토 오페라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 주며 큰 찬사를 받았다.

인생의 전성기에 그녀를 폭풍 속으로 몰아넣은 것은 바로 사랑이었다. 1949년 26세에 27세 연상의 사업가 조반니 바티스타 메네기니와 결혼한 그는 1957년 선박왕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를 만나게 되고, 결혼생활은 파국을 맞았다. 오나시스와의 열정적인 사랑으로 음악 활동에서 멀어진 그는 1965년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오나시스는 칼라스를 버리고 1968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미망인 재클린 케네디와 결혼했고, 그의 사랑은 비극으로 치달았다.

옛 동료 주세페 디 스테파노의 설득으로 무대에 다시 섰으나 1975년 오나시스의 사망 소식으로 큰 충격에 빠졌다. 그는 모든 의욕을 상실한 채 파리의 아파트에 홀로 칩거하다 1977년 9월 54세에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내 안에는 두 사람이 있어요. ‘마리아’로 살고 싶지만 ‘칼라스’로서도 살아야 해요.” 사랑을 갈구했던 여인 마리아로, 예술적 성취를 이룬 디바 칼라스로 살았던 그의 고백이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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