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했던 날도, 울었던 날도… 지나보니 우리의 사랑이었소[주철환의 음악동네]

2024. 10. 28.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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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감별사 별칭을 가진 선배가 있다.

하지만 '한 번쯤 이혼할 결심' '이제 혼자다'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이 정규 편성되고 수년째 이어지는 '나는 솔로'에서도 '돌싱 특집'이 화제가 되는 걸 보면 결혼을 앞둔 커플이나 이혼을 고민하는 부부에게 시사점이 되는 면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는 톨스토이 소설 첫 문장에서 유래했을 텐데 이걸 결혼과 이혼에 대입해도 무방할 성싶다.

결혼의 조건은 비슷한데 이혼의 사유와 조건은 천차만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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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철환의 음악동네 - 한상일 ‘웨딩드레스’

이혼감별사 별칭을 가진 선배가 있다. 유명인들의 결혼 소식이 뜨면 반응이 색다르다. “쟤들 1년 못 가” “3년 본다.” 이런 식이다. 축하는 못해 줄망정 왜 그런 저주를. 그러면 담담하게 대꾸한다. “감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고 이건 과학이야. 방송사 다니면서 사람들 만났다 헤어지는 거 한두 번 봤냐.”

감 얘기가 나오니까 대뜸 ‘어릴 때 집 근처에 감나무 있었지’ 때려잡더라는 그분이 떠오른다. 진짜 있었다면 용한(?) 점쟁이고 다가올 일에 대해선 ‘아무말대잔치’를 벌여도 속수무책. 그러니 대책(부적)을 신줏단지로 받들 수밖에. 만약 없었다고 이실직고하면 목소리가 더 높아졌겠지. “그거 보라고. 감나무가 없었으니까 오늘 이렇게 살아있는 거지 만약 있었다면 당신 여기 걸어들어오지도 못했어.”

감도 감 나름이다. 행복감과 기대감은 다르다. 기대감 옆에는 부담감이나 실망감이 기생 공생한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시인과 촌장 ‘가시나무’) 이혼을 결심한 결정적 이유는 상대의 가시 돋친 말 한마디 때문인 경우가 흔하다. 이혼감별사가 소환된 것도 요 며칠 새 유명인의 이혼 소식이 잇달아 뉴스에 등장해서다. 이런 게 무슨 뉴스냐고 언짢아하는 댓글도 있다. 하지만 ‘한 번쯤 이혼할 결심’ ‘이제 혼자다’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이 정규 편성되고 수년째 이어지는 ‘나는 솔로’에서도 ‘돌싱 특집’이 화제가 되는 걸 보면 결혼을 앞둔 커플이나 이혼을 고민하는 부부에게 시사점이 되는 면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안나 카레니나 법칙이란 게 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는 톨스토이 소설 첫 문장에서 유래했을 텐데 이걸 결혼과 이혼에 대입해도 무방할 성싶다. 결혼의 조건은 비슷한데 이혼의 사유와 조건은 천차만별. 눈에 보이는 건 제한적인데 눈에 안 보이는 건 측량하기 어렵기 때문일까. 하기야 결혼 조건엔 있어야 할 항목이 많은데 재혼 조건 중엔 없어야 할 것들이 나열되는 것도 흥미롭다.

합포문화동인회(마산)에서 가수 한상일 씨를 만났다. 올드팬들에겐 ‘애모의 노래’ ‘웨딩드레스’로 유명한 분이다. 애모(愛慕)는 사랑과 그리움이 합쳐진 말인데 뜻밖에도 노래의 종착역은 슬픔과 외로움이다. ‘내 마음 나도 모르게 꿈같은 구름 타고’로 시작해서 ‘나는 짝 잃은 원앙새 나는 슬픔에 잠긴다’로 끝난다. 그 느낌으로 들으니 ‘웨딩드레스’도 다르게 다가온다. ‘당신의 웨딩드레스는 정말 아름다웠소’로 시작해서 ‘사랑이었소’ ‘순결이었소’로 이어지다가 ‘레몬 향기였다오’로 끝나는 시제가 온통 과거 일색이다. 그래서 다시 들어본다. ‘우리가 울었던 지난날은 이제 와 생각하니 사랑이었소 우리가 미워한 지난날도 이제 와 생각하니 사랑이었소’ 핵심은 ‘이제 와 생각하니’다. ‘이제’가 무르익으면 슬픔도 힘이 된다.

외모와 학벌이 강조되니 가창력이 손해(?) 본 경우가 한상일이다. ‘서울공대 건축과 출신에 조각 같은 미남’이란 수식이 늘 붙으니 명가수의 노래가 살짝 묻힌 느낌도 든다. 인터뷰를 찾아 읽으니 ‘애모의 노래’도 남 얘기가 아닌 듯하다. “둘이 있어 괴로운 것보다 혼자 있는 외로움을 택한 거 아닐까요.” 외로워서 결혼하고 괴로워서 이혼한다는 말이 생각난다. ‘이제 혼자’는 인생 2막도 인생 후반전도 아니다. 인생 2막이라면 계속 연기해야 하고 인생 후반전이라면 줄곧 싸워야 한다. 그래서 인생 2모작이 적당하다. 가뭄에 시달리고 물난리도 겪어야 가을이 오지 않던가.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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