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아빠, 진지한 배우 장동건 다시 보기

김명희 기자 2024. 10. 28.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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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긴 배우,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집에 사는 스타, 고소영의 남편…. 자신을 둘러싼 온갖 수식어를 내려놓고 오로지 연기로 승부를 보기 위해 비장하게 돌아온 장동건의 이야기. 

데뷔작에서의 첫인상이 유독 잊히지 않는 배우들이 있다. 1993년 드라마 '공룡선생’에서 커트 머리를 한 풋풋하면서도 당찬 김희선, 1994년 드라마 '마지막 승부’에서 청순하고 사랑스러웠던 심은하, 2012년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코믹 연기로 단 한 번에 존재감을 알린 조정석 등이 그들이다. 1993년 MBC '우리들의 천국’에 장동건(52)이 처음 등장했을 때, 오뚝한 코와 크고 부리부리한 눈, 짙은 눈썹을 지닌 그를 보며 '우리나라에도 저런 조각 같은 미남이 있었나’ 싶어 놀랐던 기억이 난다. 심은하와 함께 출연한 '마지막 승부’는 남녀 주인공이 모두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비주얼로 화제가 되며 50%에 육박하는 시청률로 국민 드라마 반열에 올랐다. 이후에도 장동건은 드라마 '모델’ '의가형제’ '이브의 모든 것’,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태극기 휘날리며’ 등에 출연했지만 외모에 가려 연기력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미남 배우의 이미지가 그에겐 축복인 동시에 족쇄였던 것. 2010년 배우 고소영과 결혼 후에는 작품 활동이 뜸했던 데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집과 럭셔리한 라이프스타일이 부각되며 배우보다 셀럽의 이미지가 강했다.

사실 장동건은 누구보다 연기에 대한 열정이 깊은 배우다. 영화판에선 작품이 마음에 들면 개런티나 캐릭터의 경중을 따지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창궐’ 이후 6년 만에 '보통의 가족’으로 스크린에 돌아왔다. '보통의 가족’은 각자 신념을 지키며 살아가던 형제 커플이 아이들의 범죄 현장이 담긴 CCTV를 보게 되면서 신념과 본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그린다. 네덜란드 작가 헤르만 코흐의 소설 '더 디너’를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네덜란드와 미국, 이탈리아에서 이미 영화로 만들어졌을 만큼 스토리가 탄탄하다.

장동건이 연기하는 재규는 의료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명감 넘치는 소아과 의사다. 연상의 자원봉사 활동가 아내 연경(김희애)과 결혼해 아들 시호(김정철)를 두고 있는 그는 형 재완(설경구)을 대신해 알츠하이머 증세를 보이는 노모를 모시는 효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들의 범죄라는 극한 상황을 마주하면서 그간 보여줬던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모습과는 다른 선택을 한다. 이 작품에서 장동건은 미남 배우, 셀럽의 이미지는 잊게 하고 오롯이 배우로서 관객들의 멱살을 잡고 스크린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나간 인터뷰 자리엔 풋풋한 꽃미남이 아닌, 또래 남자들보다 멋지게 나이 든 중년의 장동건이 있었다. 생각보다 달변이었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자기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와 나눈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아이들이 아빠를 뿌듯하게 여길 만한 작품 하고 싶어"

영화 ‘보통의 가족’에서 자신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했다고 말하는 배우 장동건.
‘창궐’ 이후 오랜만에 영화로 돌아왔는데 소감은.
"오랜만의 영화이기도 하고, 최근에 좋은 평을 받은 작품이 없어서 호평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시사회 날 대기실에 있다가 극장으로 이동하는데 마치 재판장에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허진호 감독님이 하신다는 말을 듣고 아내와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 두 편을 같이 봤다. 설경구 형이 이미 캐스팅된 상태였는데 현실에 있을 법한 캐릭터였고, 또 재규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너무 잘 알 것 같았다. 기존에 맡았던 캐릭터들은 상상이나 외부의 어떤 인물을 설정하고 거기에 뭔가를 덧붙여 연기했는데, 재규는 나를 많이 투영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인간의 진짜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점, 외적인 선함이 아니라 내면의 모습을 다 꺼내서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라는 생각에 흥미로웠다. 아내도 재완, 재규 중에 내가 재규와 더 잘 어울린다고 하더라."

허진호 감독과는 '위험한 관계’ 이후 12년 만에 재회다.
"예전에 허 감독님과 작품을 할 때 나도 좀 당황했었다. 그날 찍어야 할 분량이 있는데 거의 반나절을 영화와 관계없는 잡담만 하기도 하고, 분명한 디렉션이 없을 때도 있다. 그런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면 감독님과 나눈 의미 없는 잡담이 캐릭터를 이해하는 출발점이 된다. 경구 형과 희애 선배는 허 감독님과는 처음이지만 배우로서 경험이 많다 보니 감독님 스타일을 금방 이해하고 좋은 작업을 할 수 있었다."

허 감독과 다시 만났을 때 배우로서 성장했다고 느꼈는지.
"‘위험한 관계’ 이후 감독님과 '우리 나중에 대표작을 한번 경신해보자’ 얘기한 적이 있다. 이후로 감독님은 영화 '선물’을 비롯해 여러 좋은 작품을 하셨지만, 나는 좋은 평을 받은 작품이 없다. 그런 것들이 한두 편 쌓이다 보니 원인이 무엇일까,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을까, 고민과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됐다. 결론은 나 스스로에 대해 새로운 느낌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신선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관객들이 나를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겠나. 작품을 할 때마다 캐릭터를 심화한다는 마음으로 더 좋은 걸 만들어보려고 노력하는데, 돌아보면 자기 반복을 '심화 과정’이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이 영화를 하는 동안 내 속에 감추고 있던 모습들을 꺼내면서 연기하다 보니까 평소에 안 하던 생각까지 하게 되더라. 연기하면서 재밌었고, 나에 대한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이제 다시 출발점에 선 것 같다."

장동건은 고소영과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실제로 두 아이를 키우는 부모이기 때문에 그가 연기하는 재규가 더 생동감 넘치고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실제로는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가장 즐거운 다정한 아빠다. 장동건은 "친구 같은 아빠는 되지 않으려 했는데, 결국 그렇게 됐다"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버지가 된 후 배우로서 스펙트럼이 넓어졌다고 느낄 때가 있는지.
"좀 더 자유로워진 느낌이다. 예전엔 내가 그래도 이것까지는 포기하면 안 될 것 같은 지점들이 있었는데, 그런 게 사라지고 오로지 캐릭터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됐다. 또 부모이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들이 있다. 극 중 고수부지에서 울먹이는 아들과 얘기하는 장면이 있는데, 내 아들이 저러고 있을 걸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고 눈물이 나더라. 한 번이 아니라 테이크를 찍을 때마다 같은 마음이었다. 사실 영화 제목이 촬영 다 끝나고 정해졌다. 중간중간 감독님과 농담처럼 영화 제목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를 이야기했는데, '자식이 웬수다’ '무자식 상팔자’라는 말도 나왔다. 그 정도로 자식 문제에 대해서는 부모 입장에서 공감되는 지점들이 많았다."

‘실제 내가 재규라면 어떻게 했을까’란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다.
"맞다. 나도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연기하면서 하기 싫은 상상을 해야 하는 게 큰 고통이었다. 극 중 아들과 연기할 땐 실제 내 아들이 투영돼 죄책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배우들끼리도 쉬는 시간에 '실제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지만 모두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상상만으론 답을 낼 수 없고, 상황이 닥쳐봐야 알 수 있을 거다. 정답이야 '자수시켜 광명 찾게 하자’겠지만,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싶다."

재규는 처음엔 신념 있는 인간적인 의사 모습을 보이지만 마지막엔 그와 정반대의 선택을 한다. 그는 어떤 인물인가.
"한마디로 정의하긴 어렵지만 내 결론은 이렇다. 사람은 어떤 선택의 순간에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 의식을 한다. 그리고 그런 선택들이 모여서 그 사람의 이미지가 형성된다. 재규의 경우 그동안은 의사로서 옳고 바람직한 선택을 하면서 살 수 있었지만 극한의 상황에서 본능적인 모습이 나온다. 그가 마지막에 선택한 것이 결국 그의 본모습이 아닐까.

실제 자녀가 폭력 문제에 연루된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부모로서 참 어려운 문제다. 아이가 맞고 왔을 때를 대비해 준비해둔 말이 있긴 하다. '너도 똑같이 폭력으로 대응하지 않은 건 정말 칭찬해주고 싶다’는 말이다. 이런 말을 준비해야 하는 현실이 참 씁쓸하다."

얼마 전 아들과 극장에서 '태극기 휘날리며’를 함께 봤다고 들었다.
"그동안 아이들에게 극장에서 보여줄 만한 내 영화가 없었는데, 이번에 '태극기 휘날리며’가 재개봉된다기에 아들과 함께 가서 봤다. 아들이 엄청 감동받았는지 며칠 동안 그 여운을 갖고 지내더라. 나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뿌듯한 한편으로 이렇게 보여줄 수 있는 작품들을 더 많이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들에게 '친구 같은 아빠’인 것 같다.
"아들은 사춘기가 올 나이가 됐는데 아직 그렇지는 않아서 사이가 굉장히 좋은 편이다. 딸은 야무지면서도 '개그캐’다. 대화가 잘되고 농담도 잘 받아친다. 딸과 지내는 시간이 되게 재밌다. 그러다 보니 아빠로서의 권위는 없는 편이다(웃음). 내 어린 시절을 돌이켜봤을 때 타고난 성향이나 친구 등 주변 환경이 더 중요하지 부모의 직접적인 말이 큰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잔소리를 많이 하지 않는다."

고소영 씨 연기 공백이 길어지고 있는데.
"아내도 연기에 대한 목마름이 있고 남편으로서 나도 아쉬운 부분이다. 대본이 가끔 들어오긴 하는데, 공백이 길어지니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고 그러다 보니 생각이 많아지는 것 같다."

고소영 씨가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남편에 대해 "잘생겼는데 말 안 들으면 더 짜증 난다"고 했던 게 화제가 됐다.
"내가 고집이 좀 있다. 결혼 생활을 돌아보면 아내 말을 들었을 때 좋은 결과가 생긴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어떤 순간에는 굽히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런 부분을 유튜브 채널에서 재미있게 이야기한 것 같다."

"나이들수록 작품 현장 더 소중하게 느껴져"

영화 ‘보통의 가족’은 장동건, 설경구, 김희애, 수현이 보여주는 연기의 합이 일품이다.
장동건은 2020년 절친인 배우 주진모의 휴대폰이 해킹돼 과거 그와 나눈 사적인 대화 메시지가 유출되면서 사생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데뷔 30년 가까이 별 스캔들 없이 모범적으로 연예계 생활을 해온 그에겐 큰 타격이었고, 한동안 작품 활동이 뜸한 이유가 됐다. 장동건은 "그 일 이후 촬영할 때 현장과 대사 한마디가 예전보다 너무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어 "당연한 건 없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앞으론 다양한 작품을 통해 계속 도전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김희애 배우와 나이 차가 꽤 나는데 부부로 나온다.
"김 선배와는 나이를 떠나 경력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선배는 이미 '책받침 여신’이었다. 그런데도 워낙 관리를 잘해서 부부로 나오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번에 만나 1990년대 MBC 방송국 시절 얘기도 하고 그랬는데, 시대를 함께 관통해온 동료 같은 느낌이 나더라. 선배가 후배들과 있는 자리에서 '라떼’ 시절 얘기를 하면서 자꾸 나를 쳐다보더라. '너도 알잖아. 빨리 대화에 동참해’ 하는 눈빛으로. 하하하."

동료로서 김희애 씨는 어떤 배우인가.
"‘신인 배우도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지 않을 텐데’ 싶을 정도로 준비해온다. 카메라가 자신을 찍든 말든, 정말 열심히 한다. 연기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설경구 씨와는 첫 만남이다. 나이는 설 배우가 많지만 배우로서는 장 배우가 선배다.‌
"설경구라는 배우의 존재 자체는 스크린을 통해 처음 알았다. 그때만 해도 거친 남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박중훈 선배 소개로 사석에서 만났는데 영화와는 달리 순하고 마음도 여린 사람이더라. 늘 함께 작업하고 싶었는데 이번에 드디어 만났다. 개인적으로 극 중 재완과 재규 형제 관계를 굉장히 치열하게 생각했다. 현장에서도 그 생각으로 연기했는데 경구 형은 오히려 치열하지 않게 툭툭 받아치더라. 그 연기를 따라가면서 '아 이런 형제 관계가 훨씬 좋구나’ 느꼈다. '괜히 설경구가 아니구나’ 싶었다."

전작인 영화 '창궐’, 드라마 '아라문의 검’ 등은 시대물이다 보니 분장이 많았다. 간만에 현대물을 하면서 '내게 이런 얼굴이 있었나’ 싶은 부분이 있다면.
"‘보통의 가족’ 첫 테이크를 찍고 모니터를 확인하는데 내 모습이 낯설었다. '이게 나라고?’ 할 정도로 나이가 들어 보이더라. 농담으로 김희애 선배한테 '(설)경구 형보다 제가 더 형처럼 보이지 않아요?’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연기하는 입장에서 그런 내 모습이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예전엔 외모가 나의 큰 무기라고도 생각했고 족쇄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외모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고 나니 집중이 더 잘되더라. 나중엔 모니터도 잘 안 보고 감독님만 믿고 연기했다."

연기 경력에 비해 작품 수가 많지 않은데 앞으로의 계획은.
"개인적으로도 후회되는 부분이고, 이제는 그러지 말아야겠단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작품 유통 채널이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훌륭한 작품을 내놔도 사람들이 외면하거나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면 그다음 작품(캐스팅)이 굉장히 어려운 구조였다. 한 번의 실패가 다음에 너무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순수하게 선택하지 못하고 여러 지점을 고려해야 했다. 지금은 채널도 많고, 작품만 좋으면 사람들이 언제든 찾아서 볼 수 있지 않나. 배우 입장에선 선택과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자신 있게 도전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거 같다. 예전엔 작품이 들어오면 단점을 찾았는데 이제는 장점부터 보려 한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다."

#장동건 #보통의가족 #여성동아

사진제공 (주)하이브미디어코프 (주)마인드마크

김명희 기자 may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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