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겨울론' 녹인 SK하이닉스, 내년에도 뜨겁다…'독주 체제' 시동

오진영 기자, 임동욱 기자 2024. 10. 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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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SK하이닉스의 비상(飛翔)' (下)
[편집자주] 창립 41년, 2위의 설움은 간데없다. SK하이닉스가 AI시대 HBM이란 날개를 달고 날아올랐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독보적 지배력을 과시하던 경쟁기업을 넘어 이제 새로운 1등 기업으로 도약 중이다. 경쟁자는 오직 자신뿐. SK하이닉스의 성공 비결과 앞으로의 과제를 살펴본다.
SK하이닉스의 HBM, 1등끼리 뭉쳤다…'엔비디아·TSMC도 우리편'
/그래픽 = 김지영 디자인기자

AI(인공지능) 반도체의 필수품인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에서 SK하이닉스의 입지는 압도적이다. 점유율은 53%(매출 기준·트렌드포스 집계)로 2위 삼성전자와 두 자릿수 차이가 벌어진데다, 글로벌 AI 칩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엔비디아의 까다로운 관문을 유일하게 넘었다(HBM3E 기준). 세계 최초로 5세대 HBM3E 12단 양산에 돌입한 것은 물론 2027년까지 HBM 주문이 예약돼 있다.

SK하이닉스가 확고부동한 1위에 올라선 것은 선제적인 투자와 AI 시장의 개화, 최대 경쟁자의 실기가 맞물린 영향이다. 삼성전자는 HBM을 상용화한 제품인 HBM2를 가장 먼저 양산하고도 시장이 커지지 않을 것으로 오판하고, 2019년 HBM 개발팀을 해체하는 등 제자리걸음을 했다. 이 사이 SK하이닉스는 조 단위 투자를 통해 HBM2E, HBM3에서 앞섰다.

SK하이닉스의 최대 강점은 강력한 기술경쟁력을 토대로 한 수율이다. 2013년 업계 최초로 HBM에 적용한 TSV(실리콘관통전극) 기술이 대표적이다. 성능과 전력효율을 크게 높이면서도 크기를 줄일 수 있어 HBM에 적합하다. 수도권 대학의 한 반도체학과 교수는 "TSV 기술을 상용화한 곳은 전세계에서도 3~4곳 정도로, 특히 SK하이닉스는 수율이 다른 기업보다 최소 10~20% 가까이 높다"고 설명했다.

파운드리(위탁 생산) 1위 TSMC도 SK하이닉스의 든든한 우군이다. SK하이닉스는 TSMC와 내년 출시 목표로 6세대 HBM4를 개발중인데, TSMC는 HBM 전담팀을 꾸리고 초기 단계에서부터 수율과 성능 개선에 매달릴 정도로 열정적이다. TSMC 내부 상황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HBM4 이후 세대에도 설계부터 개발, 패키징(후공정 )까지 SK하이닉스와 협력한다는 것은 사실상 기정사실"이라고 말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웨이저자 TSMC 회장이 지난 6월 대만 타이페이 TSMC 본사에서 회동하는 모습. / 사진 = SK그룹 제공

엔비디아(고객사)와 SK하이닉스(설계), TSMC(생산)의 3자 동맹도 이점이다. AI 서버에 필수적인 가속기 시장에서 1위인 엔비디아는 빡빡한 퀄(품질) 테스트를 통과한 소수 기업에 주문을 몰아주는데, HBM3E 8단, 12단 모두 SK하이닉스가 독점적인 입지를 확보하고 있다. A100, H200 등 AI 가속기의 성능이 강화될수록 더 우수한 HBM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SK하이닉스의 물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의 우위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최근 M7(매그니피센트7)이 모두 SK하이닉스에 커스텀 HBM 관련 요청을 넣었고,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가속기인 '블랙웰'도 4분기 출시를 앞두고 있다. 경쟁사인 삼성전자는 연내 퀄 테스트 통과가 불투명하고, 마이크론은 양산 능력 문제로 공급 물량이 제한적이다.

HBM4부터 커스텀(고객사 맞춤형) 제품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M7의 주문이 예상을 웃돌 것이라는 관측에도 힘이 실린다. 레거시 D램보다 웨이퍼 투입량이 3배 이상 많고, 적층 과정이 복잡한 HBM 특성상 비용이 최대 3~4배 이상 비싸기 때문에 검증된 기업이 아니고서는 HBM 주문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트렌드포스는 엔비디아의 내년 HBM 점유율을 70% 이상으로 전망하며 공급사가 원하는 자격을 충족하는 것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일반 메모리와 다르게 HBM은 고객사의 주문이 들어온 다음에 생산하기 때문에, 최대 고객사인 엔비디아를 틀어쥐고 있는 SK하이닉스가 계속 실적이 개선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엔비디아가 내년도 HBM 물량도 몰아준다면 관련 매출은 더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BM '새로운 게임' 시작...SK하이닉스 내년엔 더 세진다
(서울=뉴스1) 황기선 기자 = 2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26회 반도체대전(SEDEX)’에 SK하이닉스의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E)'가 진열돼 있다. 이번 전시는 'AI 반도체와 최첨단 패키지 기술의 융합'이라는 주제로 이날 부터 오는 25일까지 진행된다. 2024.10.23/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황기선 기자

메모리 반도체 수요 지속에 대한 불안감에 '반도체 조기 겨울론'까지 제기되고 있지만, AI반도체 열풍 속에서 SK하이닉스는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HBM 시장의 절대 강자로 올라선 SK하이닉스는 과잉공급, 경쟁자의 도전 등에 대한 우려를 일축하며 당분간 독주 체제를 굳힐 것으로 보인다.

역대 최대 분기 실적을 기록한 SK하이닉스는 HBM 사업에 더욱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4일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새로운 게임'의 시작을 알렸다. 사실상 시장을 지배하는 기업의 이익 극대화 전략과 프리미엄 제품 개발 경쟁력, 더욱 강화된 재무적 체력, 이 3가지가 맞물리면서 선순환 사이클이 시작됐다는 분석이다.

삼성증권은 "이제 성공의 필요조건은 '비용 통제'에서 '시간 통제'로 변화하고 있다"며 "SK하이닉스는 기술 속도에 맞춰 차세대 제품을 적기에 공급하는 것이 AI시대 반도체 성공의 핵심 요인이며 매우 어려운 과제라고 설명했는데, 이는 정확한 상황 판단"이라고 평가했다. 인력과 자본을 더 투입해서라도 적기에 제품을 공급하는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AI기술에 대응하는 가장 수익성 높은 방법인데, SK하이닉스는 이를 알고 잘 실행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HBM3E(5세대) 출하량은 이미 3분기에 HBM3(4세대)를 넘어섰고, 4분기에는 HBM3E 12단 제품 출하를 시작해 내년 상반기 중에는 12단 제품 비중이 전체 HBM3E 출하량의 절반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예고했다.

경쟁사인 삼성전자가 아직 엔비디아의 HBM3E 인증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SK하이닉스는 당초 계획대로 차세대 제품을 공급하며 HBM 시장의 지배적 위치를 더욱 굳힌다는 계획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2024~2025년 SK하이닉스의 HBM 시장점유율은 50% 이상을 차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HBM 비트출하량 기준 시장점유율/그래픽=김지영

일각에선 HBM 천문학적 자금을 쏟아붓던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AI투자를 줄일 가능성이 있고, 삼성전자가 엔비디아 인증을 받은 이후 공격적으로 생산을 늘려 시장 내 공급이 늘어날 수 있다며 공급 과잉 가능성을 말하지만 SK하이닉스와 시장전문가들은 이같은 우려를 일축한다.

SK하이닉스는 최근 컨퍼런스콜에서 "HBM은 일반 D램과 달리 장기계약구조로서 2025년 고객들의 물량과 가격 협의가 대부분 끝났다"며 "내년 HBM 수요는 예상보다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AI기술은 단순히 학습된 패턴을 생성하거나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예측을 내놓는 것을 넘어 다양한 가능성을 생성하고 추론에 기반한 결정을 내리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선 더 많은 컴퓨팅 파워가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HBM의 수요 둔화를 걱정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는 2025년 이후에도 이어질 것"이라며 "AI인프라 투자는 아직 성숙을 논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이의진 흥국증권 연구원도 "내년에도 HBM 공급과잉은 없다"며 "시장이 HBM3E 12단으로 이동하면서 선단 HBM 출하는 더욱 제한적일 것"이라고 했다.

미즈호증권은 "삼성전자가 성공적으로 (엔비디아향 HBM) 품질 인증을 통과한다고 해도 최소한 2025년까지는 엔비디아의 소규모 공급업체에 머물 것"이라고 전망했다.

내년 시장의 승부처는 차세대 제품인 HBM4다. 시장은 HBM4 역시 SK하이닉스가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예상한다. 김광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의 HBM 시장 주도권은 지속적으로 부각될 것"이라며 "올해 HBM3E 8단 시장을 사실상 독점했던 것처럼 4분기부터 본격화되는 12단 시장에서도 독주 체제를 유지할 것"이라고 봤다. 그는 "HBM4 고객사 샘플 대응도 SK하이닉스가 가장 빠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SK하이닉스가 'HBM 이후'를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쏟아져 들어오는 주문에 사업 전략의 중심을 HBM에 맞추고 있지만, 다른 차세대 반도체 준비에도 소홀해선 안된다는 조언이다. 시장은 HBM의 뒤를 이을 차세대 AI 메모리로 PIM(메모리 반도체에 연산 기능을 더해 AI와 빅데이터 처리 분야에서 데이터 이동 정체 문제를 풀 수 있는 기술)과 CXL(차세대 고성능 컴퓨팅 인터페이스) 등을 주목한다.

오진영 기자 jahiyoun23@mt.co.kr 임동욱 기자 dwl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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