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러 헬스장에 갑니다

칼럼니스트 최은경 2024. 10. 28.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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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번 해봤어] 몸과 마음을 돌보는 일의 중요함

"요즘 몸은 어때?"

"여름보다 많이 나아졌어요. 신경감각 증상은 거의 나아진 것 같아요. 결국 운동 밖에 답이 없네..."

"운동하자. 그래도 답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니!"

건강상의 이유로 회사를 갑자기 열흘 정도 쉬게 되었을 때 팀 일을 서포트해줬던 선배와의 대화 내용이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그랬다. 운동이라도 할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감각신경이 한참 안 좋았을 때는 어떤 운동도 할 수 없었으니까. 운동만 할 수 있다면, 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몸을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어리석게도 건강을 잃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러니 지금의 상태는 정말 기적 같다. 일도 하고 운동도 할 수 있으니까.

감각신경에 이상이 있은 지 두 달 만에 재활필라테스를 시작하면서 맨발 걷기, 수영장 걷기를 계속했다. 감각신경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다. 수영장 걷기를 하면서 방광염이 시작된 것 같은데 잘 낫지 않아서 수영장 출입 금지령이 떨어졌다. 개인적으로 감각신경 회복에 가장 도움이 많이 되었던 것이 수영장 걷기라서 속상하고 아쉬웠다. 운동도 건강할 때 할 수 있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건강을 잃으면 운동도 할 수 없다.

재활필라테스 선생님이 수영장 걷기의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자전거 타기. 마침 피티운동을 하다가 중간에 쉬어버린 탓에 남은 횟수가 있었는데 그걸 헬스장 이용권으로 돌렸다. 근육 운동은 당분간 할 수 없기에 유산소 운동을 하기로 한 것. 재활 필라테스를 가지 않는 날에는 헬스장으로 향했다.

수영장 걷기 대신 자전거 타기. 신경감각 회복에 도움이 되는 유산소 운동. ⓒ최은경

이걸 해야 낫는다는 마음으로 빠지지 않고 나갔다. 그런데 운동도 혼자 하는 것은 역시나 재미가 없더라. 피티가 재미있던 건 어쨌든 운동에 대해, 근육에 대해, 내 몸의 쓰임에 대해 개인 트레이너로부터 배우면서 했기 때문이었다. 헬스는 달랐다. 빠른 걷기로 30분 하고 스트레칭을 15분, 자전거를 20분 정도 타고나면 운동은 끝.  재택근무를 하면서 하루 종일 말없이 일을 하는데 운동을 하면서도 말없이 하려니까 뭔가 묵언수행하는 기분이었다.

말이 하고 싶으나 말할 사람이 없는 게 현실. 그래서 한날은 음악을 듣다가 그냥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어차피 헬스장은 시끄러워서 옆 사람 말도 잘 안 들렸다. 대부분 이어폰을 꽂고 운동을 하기 때문에 내가 조용히 노래를 부른다고 해서 신경 쓰일 만한 일은 아니었다.

요즘 가수 음악은 100번을 들어도 가사가 잘 외워지지 않는데 어릴 적 들었던 노래는 희한하게 자동재생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신해철의 음악은 가사를 한 소절도 틀리지 않게 부르는 내가 신기할 정도다. 신해철뿐인가. 이승환, 서태지와 아이들, 변진섭, 신승훈, 김동률 같은 가수의 노래들은 저절로 따라 부를 수 있었다. 어허, 의도치 않게 이렇게 운동하면 치매 예방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요즘 헬스장에 노래를 부르러 간다. 노래하는 동안에는 시간도 잘 간다. 노래 몇 곡 부르다 보면 20분~30분이 후딱 지나간다. 헬스장 머신에 붙은 타이머를 노려보지 않아도 된다. 노래를 부르다가 생각에 잠기는 일도 잦다. 몰랐는데 예전 노래들은 사색하게 만드는 가사들이 많더라. 특히 신해철의 이 곡은 정말이지 몇 번을 들어도 들을 때마다 자전거 페달을 멈춰 세워야 했다.

흐린 창문 사이로 하얗게 별이 뜨던 그 교실
나는 기억해요 내 소년 시절의 파랗던 꿈을
세상이 변해 갈 때 같이 닮아 가는 내 모습에
때론 실망하며 때로는 변명도 해보았지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질문은 지워지지 않네
우린 그 무엇을 찾아 이 세상에 왔을까
그 대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홀로 걸어가네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노라고

그대여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질문은 지워지지 않네
우린 그 무엇을 찾아 이 세상에 왔을까
그 대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홀로 걸어가네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노라고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노라고

나는 무엇을 찾아 이 세상에 왔는지, 계속 질문하게 되는 것이다. 쉽게 떠오르지 않는 답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운동을 마쳐도 질문은 계속되더라.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그대에게 (우린 그 무엇을 찾아 이 세상에 왔을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할 거냐고.

며칠 만에 겨우 찾아낸 내 대답은 이거다.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그 대답이 달라질 수 있는 거 아니겠냐고. 다른 건 아직 모르겠고 생각나는 건 하나. 일단 내 몸부터 잘 돌봐야겠다고. 그래야 다음을, 무엇인가를 도모할 수 있을 테니. 그러니 나는 오늘도 헬스장에 간다. 노래하러. 내 몸과 마음을 돌보러. 이보다 더 크고 중요한 이유가 있을까.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편집기자로 일하며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성교육 대화집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일과 사는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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