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여성 최초 남극점 도달…이번엔 횡단한다 [산악인 김영미]

'그리고 이젠 남극점을 지나 걸어가고 있다.'
2023년 3월호 본지에 실린 아시아 여성 최초 무지원 단독 남극점 도달 산악인 김영미 대장의 단독 인터뷰 기사는 위와 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당시 그는 확실히 무언가를 이뤘다거나 끝냈다는 눈빛이 아니었고, 스스로도 거듭 앞으로 길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땐 그런 말과 표정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단순히 '모험사를 계속 이어나가려는 의지가 크구나' 정도로만 받아들여 적었던 글이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정말 문자 그대로 김 대장은 남극점을 '지나' 걸어갈 작정이었다. 그는 10월 26일 한국을 출국한 뒤 70여 일간 남극점을 지나 남극대륙을 횡단하는 장장 1,700km 거리의 탐험에 나선다. 지난번보다 500km 이상 늘었고, 이번에도 동력을 사용하지 않고, 이번에도 단독이다. 10월 15일 서울 북악산에서 김영미 대장을 만나 도전 각오를 들어봤다.
2년 만입니다. 그간 어떻게 지냈나요?
남극점 도달 이후 자잘한 짐을 정리하는 데 6~7개월 정도 걸렸어요. 방바닥에 던져놓고 건드리지도 못했죠. 그걸 조금씩 정리하면서 마음과 몸도 같이 정리했어요. 그리고 정리가 끝나자마자 바로 남극대행사에 메일을 보내 남극대륙 횡단 도전을 위한 준비에 착수했습니다. 훈련도 시작했고요.
또 남극이란 사실에 놀랐습니다. 이번처럼 같은 대상지를 연거푸 간 적이 또 있나요?
남극은 3번째죠. 처음이 빈슨 매시프, 그리고 작년의 남극점, 그리고 이번에 횡단이네요. 사실 이렇게 여러 번 간 곳들이 많아요. 칼스텐츠는 행정 문제로 3번 만에 올랐고, 알프스도 연거푸 4번 갔죠. 히말라야랑 다르게 너무 거칠지 않고 아기자기한 맛도 있어서 좋았어요. 에베레스트는 5번이나 원정을 떠났었고, 가셔브룸도 4번이나 도전했어요. 봄에 네팔, 여름에 파키스탄, 다시 가을에 네팔 식으로 1년에 200일을 히말라야에 머물며 밀도 있게 등반했었죠.
남극점 도달 이후 언제 남극 대륙을 횡단해야겠다고 결심했나요?
정확하게는 '이후'가 아닙니다. 한 번도 공식적으로 남극 대륙 횡단을 목표로 하겠다고 말한 적은 없지만 굉장히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도전이에요. 먼저 '남극에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2013년 암푸 1봉에서 하산하면서였다고 말씀드렸었죠. 그때 자료조사를 했는데 보니 한국원정대가 4번이 있었는데 횡단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그래서 이를 위해 총 3단계의 모험 과정을 설정했어요. 첫 번째가 바로 2017년 바이칼 종단이었고, 두 번째가 지난 남극점 도달이죠. 당시 회사에 제출한 바이칼 원정 계획서 첫 장에 이 내용이 담겨 있어요. 원래부터 목표했던 거죠. 다 계획이 있었습니다.

잘 걷기 위해 상체 운동을 했다?
어떤 훈련들을 주로 진행했나요?
올해 3월에 노르웨이에 한 달 동안 머물면서 혹한 적응 훈련을 했습니다. 또 지난겨울에 우리나라에도 눈이 많이 내려서 훈련하기 참 좋았어요. 대관령도 갔고, 백두대간도 일부 종주하면서 충실하게 훈련할 수 있었죠. 어차피 기초체력은 평생에 걸쳐서 쌓아야 길러지는 것들이라 급하게 키울 순 없어요. 대신에 중점을 둔 것이 상체 운동입니다. 어깨와 승모근이요. 나침반을 보느라 계속 고개를 숙이고 가니 관절의 고통이 심해서 이를 완화시킬 수 있는 운동을 했어요. 벤치프레스죠. 20kg으로 시작해 42.5kg까지 늘려가는 루틴으로 했습니다.
그리고 역시 훈련은 산이죠. 일주일에 2~3번씩 심박수 160 정도 유지하면서 검단산을 오르내렸어요. 또 롤러스키도 입문했죠. 아무리 걷고 뛰어서 몸을 잘 만들어도 스키를 타면 자극을 받는 지점과 쓰는 근육이 꽤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런데 롤러스키가 실제 스키를 탈 때 자극 받는 느낌과 똑같더라고요.
이렇게 훈련해야 1시간에 평균 3km를 채 못 갈 정도로 혹독한 남극에서 10~11시간 내내 걸을 수 있어요.

이미 남극의 경험이 있습니다. 이번 도전에서 지난 경험으로 인해 바뀌는 점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먼저 식단을 바꿨어요. 지난번엔 고기 위주로 식단을 꾸려서 아침엔 소고기, 점심엔 단백질 파우더, 저녁엔 돼지고기를 먹었죠. 그런데 한 달이 지나면 진짜 몸에 필요한 영양소가 뭔지 느껴져요. 바로 탄수화물이었죠. 그래서 귀리로 만든 뮤즐리를 점심에 추가하려고 해요. 나머지는 작년과 동일하고요.
장비들도 개선됩니다. 일단 모자에 달린 털도 빼요. 그 자체도 무게로 느껴지더라고요. 가장 큰 건 썰매와 이어지는 벨트입니다. 이 벨트를 원래 옷 밖에 체결하는데 한 핀란드 친구가 이 때문에 벨트가 얼어붙으면서 복부와 겨드랑이에 동상을 입었었어요. 그래서 저는 이 벨트를 외투 안에 입으려고 합니다. 그러면 외투 뒤가 썰매와 이어지는 줄 때문에 들리잖아요? 그러면 바람이 들어오죠. 그래서 외투에 구멍을 뚫어서 이 줄을 연결할 수 있도록 했어요.
또 이번엔 해발 2,000m대에 머무는 시간이 아무래도 더 길어집니다. 그래서 다운의 함량도 높였어요. 장갑도 레이어링 시스템을 적용해서 총 네 겹을 사용할 예정입니다. 파워스트레치 장갑을 끼고 그 위에 손모아 미튼을 두 겹, 그리고 외부에 고어텍스 미튼을 낍니다. 이렇게 하면 젖은 장갑을 말리기도 편해요. 장갑이 진짜 말리기 어려웠거든요.
무게가 이번에도 100kg대입니다. 지난번에 비해 거리가 늘어났는데 왜 똑같을까요?
일단 계획은 그런데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요. 식량무게가 변수거든요. 식량을 저 혼자서 포장하는 게 아니고 도와주는 분들과 함께 하는데 이게 사람 마음인지라 조금이라도 더 챙겨 주시더라고요. 사탕 한 개 넣을 것 두 개 넣고, 고기도 좀 더 채우고 하다 보니 그런 고마운 마음들이 더 채워져서 5kg 정도 더 늘어나기도 해요.
빠진 장비도 있어요. 캠코더가 대표적이죠. 그리고 배터리도 영하 40℃에 작동되는 작은 크기의 것들이 새로 나와서 무게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침낭도 등판이 필요 없으니 노스페이스 인페르노와 퀼트 침낭을 혼용할 생각이에요. 그리고 남극점에서 보급을 한 번 받습니다.
정신의 힘에 대한 믿음으로 간다
원정 계획과 일정은 어떻게 되나요?
10월 26일 출국, 11월 2일 남극대륙 진입, 11월 중순에 남극 허큘리스 인렛에서 횡단 시작, 12월 말 남극점 도달, 1월 말 남극 레버릿빙하 도착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남극점 도달은 직선거리 1,130km, 실제거리 1,186km로 끝냈는데 이번엔 1,700km를 예상하고 있어요. 70일 걸릴 것으로 보고 있고요.
남극점 이후로는 어떤 지형이 기다리고 있는 걸까요?
남극점의 해발고도가 약 2,835m, 도착지인 레버릿빙하의 해발고도가 약 80m에요. 그래서 완만한 내리막의 쉬운 길일 거라 생각하는 사람도 꽤 있는데 그렇지 않아요. 남극점 이후 200~300km 지점까지 해발고도가 2,900m 정도 됩니다. 올라가는 건 큰 문제가 아닌데 어쨌건 2,000m대 고도와 추운 기온에 계속 노출되어야 한다는 점이 문제예요. 남극점이 지나면 바람의 방향도 바뀌죠. 뒤나 옆에서 바람이 올 수도 있어요. 레버릿빙하에선 빙하로 들어서는 초입부터 가파른 내리막입니다. 이것도 주의해야 하죠.
레버릿빙하로 가는 루트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원래 3개의 루트를 계획하고 이 중 하나를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이 루트는 그중에서 가장 안전한 편에 속하는 것입니다. 맥머도 기지에서 남극점으로 가는 차량 카라반이 지나는 루트거든요. 물론 그렇다고 바퀴자국이 썰매를 끌어주지도 않고, 보일지도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안전할 확률이 가장 높죠.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한 건 아무래도 단독행이기 때문입니다. 여름의 남극 해안가는 고도가 100m가 안 되고 하루 종일 눈 반사가 있어서 빙하 지반이 굉장히 약해져요. 크레바스도 계속 살아 움직이죠.
일례로 작년에 무지원 횡단을 계획한 사람이 있었어요. 계획했다는 것만으로도 그가 남극에 대한 경험이 꽤 많은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죠. 그런데 출발 이틀 만에 크레바스에 머리까지 빠졌어요. 남극은 대륙 특성상 사고가 났을 때 구조하러 가는 길이 너무 멀어요. 그러니 안전이 중요하죠.

지난 원정에선 하루도 쉬지 않았는데, 이번 운행 계획은 어떤지?
그땐 나침반이 고장 나는 사고로 인해서 운행을 쫓기듯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요. 눈이 내리거나 화이트아웃이 있는 날 등에는 가급적 쉬어갈 생각입니다. 박영석 대장님의 옛 원정기록도 봤는데 첫 열흘 중에 3일을 쉬었더라고요.
그래도 이왕이면 남극점까지 쉬지 않고 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번 남극점에 도달했을 때 더 갈 여력이 있다고 느끼셨나요?
몸이란 것이 되게 신기합니다. 걸을 때 하루를 예로 들자면 오후 3시쯤 되면 굉장히 배가 고파요. 그런데 갈 거리가 남아 있고, 오늘 못 걸은 만큼 내일 걸어야 할 거리가 쌓인다는 걸 생각하면 그 배고픈 걸 잊고 오전보다 훨씬 많이 걸을 수 있게 됩니다. 정신적인 부분이 있는 거죠. 이전에도 어느 정도 그런 정신적인 힘이 있긴 있었죠. 그런데 이젠 남극의 경험이 더 쌓여서 이 정신적인 힘에 대한 믿음이 훨씬 커졌습니다. 인생에서 미래에너지까지 가불해서 써야 할 정도로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 부을 기회가 많지 않잖아요? 그래서 굉장히 소중한 시간이자 소중한 원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녹음기에 지인들 응원 목소리 담아가
왜 또 단독행입니까?
바이칼 종단 이후 남극을 고민하면서 스웨덴의 어떤 단독 여성 탐험가에게 SNS로 물어본 적이 있어요. '왜 혼자 가냐'고. 그러니까 그 사람이 '혼자 가는 게 리스크가 더 적다'고 답했습니다.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부분이 있어요. 준비가 안 된 사람하고 원정을 함께 가면 너무 힘들어져요. 단순히 체력과 정신력의 문제가 아니라 탐험에 대한 애정의 온도도 같아야 해요.
그리고 함께해 준 사람들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엄청 외롭거나 혼자서 도전한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아요. 남극에 가면 사람들 생각이 정말 많이 나긴 하는데 그건 제 짐을 덜어주는 그런 물리적인 파트너로서의 사람이 아니라 제 어깨를 다독여 주고 힘들 때 힘내라고 말해 주는, 그런 사람들에 관한 것들이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도 사람들 목소리를 녹음해 갈 생각입니다. 저번에 도움이 정말 많이 됐어요.
이번 도전에 성공한다면 어떤 기록을 달성하게 되나요?
아시아 여성 최초나 그런 걸 말하는 것인가요? 그건 그냥 결과에 따른 옵션이지 그걸 위해서 가는 것은 아니에요. 끝나고 나면 다른 사람들이 이것이 어떤 모험이었는지 확인해 줄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단 제가 정한 길을 가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도전을 앞둔 심정이 궁금합니다.
산악스키 대회 같은 걸 나가면 출발선상에 섰을 때, 남들과 경쟁하려고 할 때, 그럴 때 떨리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건 그냥 안전하게 돌아오는 게 목표고, 지난번에 경험했던 것이 이미 있고 그걸 넘어서서 제 스스로와 싸우는 과정이잖아요? 그래서 떨린다는 감각은 그리 크지 않아요.
남극점 도달을 앞뒀을 땐 출발선상에 섰을 때를 많이 떠올렸어요. 혼자 남겨져 출발 직전 보내는 첫날밤이요. 그런데 이번에는 끝점에 서 있는 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습니다. 과연 어떤 기분일까요.
이 이상을 생각하기 어려운 큰 프로젝트입니다. 일단 이번 모험의 장은 여기까지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커요. 모든 것은 끝나봐야 알 것입니다.
월간산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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