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뒤처지자 삼성 전체가 흔들…스마트폰 시너지도 줄었다

이재연 기자 2024. 10. 28.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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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삼성’ 어디 갔나
삼성전자 서초사옥. 연합뉴스

삼성전자의 자본이익률(ROE) 퇴보는 ‘종합전자기업’의 강점이 빛바랜 현실을 보여준다. 종합전자기업으로서 삼성의 특징은 스마트폰 같은 완제품부터 여기에 들어가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부품까지 모두 직접 만든다는 점이다. 각 사업 간의 시너지 효과를 통해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지만, 반대로 여러 사업 중 하나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위기가 회사 전반으로 쉽게 전이된다는 단점도 있다. 그러면서 효율성이 떨어지고 이익도 정체되는 것이다. 삼성전자에서도 이런 위기가 실현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사라진 시너지

27일 증권사 자료를 종합하면, 삼성전자의 시스템 반도체 부문은 올해 3조6천억원 수준의 영업손실을 기록할 전망이다. 삼성 시스템 반도체는 설계 담당인 시스템 엘에스아이(LSI) 사업부와 제조 담당인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사업부로 나뉜다. 증권사들은 이들 사업부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와 내년에도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을 수조원 깎아먹을 것으로 내다본다. 무슨 일일까.

시스템 반도체 부문의 주된 고객은 다름 아닌 같은 회사의 모바일 사업부다. 시스템 반도체 부문의 핵심 제품이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엑시노스’이기 때문이다. 갤럭시 스마트폰을 만드는 모바일 사업부는 엑시노스와 다른 회사의 제품을 비교한 뒤 어떤 부품을 쓸지 선택하는데, 통상 엑시노스와 미국 퀄컴의 ‘스냅드래곤’을 혼용해왔다. 스냅드래곤은 품질이 상대적으로 뛰어나지만 다른 회사에서 사 오는 만큼 비싸기 때문에 자체 생산하는 엑시노스와 섞어 써온 것이다.

업계는 내년 초 출시될 갤럭시 스마트폰 신제품에 엑시노스가 탑재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엑시노스를 생산할 때 수율(양품 비율)이 낮은 탓에 ‘갤럭시 S23’에 이어 ‘갤럭시 S25’도 스냅드래곤에 ‘올인’ 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사실이라면 시스템 반도체 부문 입장에서는 엑시노스 판매량이 확 줄게 된 것이다. 모바일 사업부 입장에서도 퀄컴에만 의존하면 협상력이 낮아져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만큼 이는 악재에 해당한다. 결국 삼성의 모바일과 시스템 반도체 모두 수익성이 나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삼성 같은 종합전자기업에서 한 사업의 고전이 다른 사업에도 타격을 주며 악순환을 부른다는 점을 보여준다. 엑시노스 생산을 맡는 파운드리는 2017년 독립 사업부로 출범하며 회사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았으나, 반도체의 회로 선폭이 7나노미터(㎚) 이하로 얇아지는 ‘초미세화’ 국면에 진입한 뒤 기술 경쟁력이 급격히 뒤처졌다는 시장의 평가를 받는다. 그러면서 엑시노스를 고리로 모바일 사업 경쟁력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 셈이다.

삼성 외면하는 투자자

더 큰 문제는 악순환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파운드리뿐 아니라 주요 사업이 모두 경쟁력 약화에 직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절대 강자’로 군림해왔던 메모리 반도체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같은 첨단 영역에서 힘을 못 쓰고 있다. 모바일 사업부도 올해 초 ‘갤럭시 S24’로 흥행을 거뒀지만 그 뒤로 폴더블폰의 부진한 실적과 잇따른 품질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류영호 엔에이치(NH)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자본이익률이 하락하는 건) 모든 사업이 총체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라며 “가령 모바일 사업은 엑시노스를 못 쓰니 이익이 늘지 못하고 있고, 가전과 디스플레이도 정체돼 있으며 반도체도 예상만큼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의 미래에 장기간의 ‘보릿고개’가 기다리고 있다고 본다. 최근 반도체 기술의 고도화를 고려하면 한번 뒤처진 경쟁력을 단기간에 회복하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다. 종합전자기업으로 덩치가 비대해지며 조직이 관료주의화되었고, 기술과 트렌드를 빠르게 따라잡았던 과거 ‘패스트 팔로어’로서의 역량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은 “쉽게 말해 한달 만에 개발할 기술이 지금은 6개월, 1년 걸리는 상황”이라며 “메모리 하나만 (집중)해도 쉽지 않은데, 삼성은 파운드리까지 있기 때문에 더 오래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도 삼성전자의 위기가 장기화할 가능성에 돈을 걸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는 지난 25일까지 삼성전자 보통주를 33거래일 연속 순매도하며 최장 기록을 거듭 경신했다. 이 기간 외국인이 팔아치운 삼성전자 보통주만 13조원어치에 육박한다. 그러면서 투자자들이 평가한 기업가치도 역대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삼성전자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지난 25일 0.998로 마감했다. 주가순자산비율은 회사 순자산의 장부가치 대비 시가총액 규모를 나타낸 것으로, 이 숫자가 1 밑이면 회사 자산을 전부 장부가치로 처분해 받을 수 있는 돈보다 현재 주가가 싸다는 뜻이다. 그만큼 투자자들이 본 미래가 어둡다는 의미다.

증권업계에선 고대역폭메모리를 둘러싼 혼선은 물론 적확한 문제의식이나 해결 방안이 없는 삼성전자의 ‘위기’ 선언이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하고 있다. 아울러 최고 의사결정권자(총수)인 이재용 회장의 침묵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8일 3분기 잠정실적 발표 직후 전영현 반도체(DS)부문장(부회장)의 이름으로 ‘반성문’을 낸 바 있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전 부회장은) 회사 전체를 이끄는 사람이 아니지 않으냐”며 “결국은 이재용 회장이 리더십을 보여줘야 하는데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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