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성기 전쟁’ 60년…남북관계의 가늠자로

2024. 10. 28.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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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 선전에서 괴음 테러까지 대남심리전 변천사
지난 9월 19일 인천 강화군 송해면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도 개풍군 야산에 설치된 대남 확성기. 북한의 대남 확성기 소음으로 인천 강화군 송해면, 양사면, 교동면 등 3개 면 주민 4천600여명이 소음 피해를 겪고 있다. 연합뉴스



휴전 이후 남북은 확성기로 싸웠다. 정전협정은 “쌍방은 모두 비무장지대 내에서 어떠한 적대 행위도 감행하지 못한다”고 명시했지만 그래도 했다. 서로의 체제를 선전하고, 상대 지도자를 비방하는 심리전의 주된 도구였기 때문이다.

남북은 때로는 중단하고, 때로는 재개하면서 확성기 방송을 이어갔다. 확성기 방송은 시기별 남북관계가 대화로 향했는지, 적대로 향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가늠자기도 하다.

북한은 1960년대부터 대남 확성기 방송을 시작했는데, 방송의 목적과 성격에 따라 세 가지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시기는 남북이 대등하게 겨뤘던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다. 비무장지대 일대의 한국군과 남한 주민들을 상대로 “사회주의 지상낙원으로 오라”며 월북을 선동하거나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했다.

대남 확성기 방송은 이 시기 가장 활발했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발표 후 중단한 것도 잠시, 양측은 1년 만에 방송을 재개했다. 과거의 대남 방송을 기억하는지를 묻자 당산리 주민 김완식씨(76)는 가수 고운봉이 1941년 발표한 ‘선창’을 북한이 개사한 노래로 불렀다. “울려고 내려왔나, 매 맞으러 내려왔나, 지긋지긋한 국군 생활.” 김씨는 “1970년대에 정미소에서 일하다가 팔을 다쳤는데, 그다음 날 북한 방송에서 ‘누구누구씨 어디서 일하다 팔 다치셨죠’라고 하더라. 이야, 무서웠다”고 했다.

상황이 변한 건 19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다. 북한은 경제난과 전력난이 심화하자 확성기 방송 시간을 줄였다. 전문가들은 이 시기 북한의 확성기 방송이 방어용으로 변모했다고 본다. 체제 경쟁의 의미가 없어지면서 북한은 남한에서 송출하는 확성기 방송을 북한 군인과 주민들이 듣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확성기 방송을 했다. 한국의 정권교체 이후 마련된 대화 국면도 주요 변수였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은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을 먼저 요구했다. 회담 이후 상호 비방은 중단됐고, 체제 우월성 선전이나 음악 방송으로 대체됐다. 2004년 장성급 군사회담을 통해 남북은 확성기 방송 중단에 합의했다. 그해 6월 “통일될 날까지 안녕히 계십시오”라는 멘트를 마지막으로 휴전선 전 지역에서 확성기가 꺼졌다. 2015년 목함지뢰 사건으로 양측은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으나 2018년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다시 확성기 방송이 중단됐다.

6년 만에 재개된 최근의 대남 확성기 방송은 세 번째 시기로 부를 수 있을 만큼 특징적이다. 이번 대남방송도 애초에 방어적 목적으로 시작됐을지 모르나, 최근에는 한국의 접경지역 주민들을 괴롭히는 공격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강화도 당산리 주민 안미희씨는 “이 소리를 못 참아서 문제를 제기하는 와중에도 북한이 ‘얘네들 힘들어하는구나’ 하고 더 심하게 할까봐 걱정이 된다”고 했다. 실제 북한은 파주시 대성동마을을 향해 7월부터 방송을 했는데, 9월 28일부터는 소음의 출력을 높여 온종일 방송하고 있다. 파주시 대성동마을에서 55년을 산 주민 정순자씨는 “예전에 노래 나올 때가 은은하고 듣기 좋았다. 괴뢰도당, 미제 어쩌고 할 때는 그래도 말로 했는데, 지금은 귀신 소리, 공장에서 쇠 가는 소리, 짐승 소리 등 갖은 소리가 다 난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남북대화라는 변수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는 점이다. 파주가 고향으로 민통선 안쪽에서 30년째 농사를 짓고 있는 박해연씨(65)는 “남북이 대화하면서 (대남 확성기 방송이) 어느 날 갑자기 없어졌거든요. 왜 다시 하게 하냐고요? 출구도 다 막아놓고선. 고무줄도요, 너무 빨리 당기면 끊어져요”라고 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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