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맘 백지연 “MBC 퇴사는 子 때문”→재벌 며느리 첫만남서 눈물 (강연자들)[어제TV]

장예솔 2024. 10. 28.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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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심장을 울려라 강연자들’ 캡처
MBC ‘심장을 울려라 강연자들’ 캡처
MBC ‘심장을 울려라 강연자들’ 캡처

[뉴스엔 장예솔 기자]

MBC 아나운서 출신 백지연이 홀로 키운 외아들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10월 27일 첫 방송된 MBC '심장을 울려라 강연자들'(이하 '강연자들')에서는 백지연이 '결국 해내는 사람'이라는 주제로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전했다.

이날 백지연은 유명인들이 총출동해 화제를 모은 '60세 생일파티'에 대해 "정말 기쁜 생일이었다"고 미소를 지었다. 오은영은 노란색 드레스를 입은 백지연의 모습에 "너무 예쁘지 않냐. 보기만 해도 레몬처럼 상큼하다"고 극찬했다.

오은영은 "작년에 아드님한테 경사가 있었다"며 백지연의 외아들 결혼을 언급했다. 백지연 아들 강인찬 씨는 지난해 6월 HL그룹 정몽원 회장 차녀와 결혼했다. 정몽원 회장은 고(故) 정인영 HL그룹 명예회장의 차남으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조카다.

재벌가와 사돈을 맺은 백지연은 "우리 아들이 그렇게 빨리 결혼할 줄 몰랐는데 기쁜 날이었다"며 "며느리가 처음 인사하러 왔을 때 가슴이 너무너무 떨리더라. 생방송 할 때보다 더 떨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제가 왜 왈칵하고 눈물이 나왔나 했더니 어렸을 때 아들에게 항상 기도를 해줬다. 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어디선가 자라고 있을 그 아이도 축복해 주세요'라고 했다. 문이 열리고 예비 며느리의 얼굴을 보는 순간 '네가 바로 그 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해 뭉클함을 안겼다.

지난 1987년 MBC 공채 15기 아나운서 입사 후 5개월 만에 '뉴스데스크' 메인 앵커로 발탁된 백지연은 "당시 뉴스 시청률이 30%였다. 전통적으로 남성 앵커 1인이 뉴스를 진행했는데 MBC가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우리도 여성 앵커를 기용하자. 그렇게 대학을 갓 졸업한 24세 여성이 9시 뉴스 앵커로 등장한 것"이라고 밝혔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응시한 MBC 공채 시험에 합격해 수습사원으로 입사했다는 백지연은 "사회적으로 굉장히 유명한 선배 한 분이 첫 질문으로 '아버지 뭐 하시나?'라고 묻더라. 은퇴하셨다고 했더니 언니, 형부의 직업까지 물었다. '사회는 어떤 배경이 없으면 안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남들이 부정할 수 없는 실력을 키우기 위해 뉴스만 연구하고 공부했다"고 털어놨다.

백지연은 최초, 최연소, 최장수 MBC '뉴스데스크' 여성 앵커 기록을 모두 가졌다. 그는 "수습 5개월 차에 '뉴스데스크'가 여성 앵커 투입을 결정했다. 전 사원을 대상으로 앵커 공개 오디션을 치뤘는데 저희가 불쌍하게 구석에 앉아 있으니까 선배가 스튜디오 구경을 시켜주면서 카메라 앞에서 멘트를 해보라고 하더라. 연습이니까 재밌게 했는데 다음날 회사가 술렁였다. 제가 오디션 1등을 했기 때문"이라고 말해 놀라움을 안겼다.

그러나 주변 분위기는 냉담했다고. 백지연은 "사무실 분위기가 아주 싸했다. 그때는 출근하면 선배 책상에 찾아가 90도 인사하던 시절이다. 부서장이 갑자기 호출하더니 '귀하가 오는 월요일부터 MBC '뉴스데스크'에 투입돼'라고 하더라. 그러면서 '나는 반대했다. 보도국은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네가 6개월을 버티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장을 지지셔야 되겠군요'라고 생각했다. 물론 입 밖으로는 안 냈다"고 설움을 고백했다.

갓 사회에 나온 24살 병아리 사원이 듣기엔 무자비한 독설. 백지연은 "세상은 원래 그렇다. 세상은 따뜻하기도 하지만 안 그럴 때가 더 많다. 독설을 독약처럼 꿀떡 삼키지 마라. 저도 처음엔 삼켰는데 바로 뱉었다"며 "그 당시에는 큰 부담, 상처, 엄청난 시련으로 다가왔지만 정신을 차리고 '해보자'라고 마음 먹었다. 그때 '아무도 나를 그 자리에서 못 내려오게 해. 내가 내려간다고 할 때까지'라고 생각했다"며 레전드 여성 앵커가 탄생할 수 있었던 과정을 공개했다.

백지연은 언론노조 파업과 유학, 출산 등으로 세 번의 하차와 복귀를 반복하면서 약 8년 3개월간 '뉴스데스크'를 지켰다. MBC를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성 앵커로 거듭난 백지연은 "20대 초반부터 30대 초반까지 오로지 뉴스 스튜디오에서 살았다. 나를 믿어주고 기용한 조직에 최선을 다했다. 나를 뽑아준 선택이 헛되지 않게끔 하기 위해 나태해질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후 앵커직에서 내려온 백지연은 1999년 사직서를 제출했다. 백지연은 퇴사를 결정한 이유에 대해 "나를 더 채우지 않으면 성장이 멈출 것 같아서 MBC를 떠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이유로 '싱글맘'이라는 처지를 언급한 백지연은 "아이에게 엄마, 아빠 역할을 동시에 해줬어야 했다. 일도 하면서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갖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IMF 여파로 모든 것이 불확실했던 상황. 백지연은 "불현듯 '나는 원래 맨주먹이었어'라는 생각이 들더라. 또 아직 젊었고 엄마는 힘이 세다"면서 "회사를 나왔더니 감사하게도 광고 제의가 많이 들어왔다. 이후 국내 최초 프리랜서로 뉴스를 진행했고, 시사 프로그램에서 인터뷰어로 활약했다"고 남다른 끈기를 자랑했다.

뉴스엔 장예솔 imye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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