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대신 인공지능(AI)이 수업… 英 교실 ‘AI 혁명’

코번트리(영국)= 2024. 10. 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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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활용해 모든 학생에 ‘맞춤 수업’ 제공 목표
우리 정부, 내년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 계획
“디지털 중독 우려… 사용 자제해야” 목소리도

지난 10일 방문한 영국 중서부 코번트리에 있는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기숙학교 ‘NatMatSci’(The National Mathematics and Science College). 우리나라 과학고 격인 이 학교 교실에서 교사 마틴 콜리버(Martyn Colliver)와 학생들은 필기 앱 ‘굿노트’가 개발한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을 이용해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다.

학생들이 문제 풀이를 마치자 교사 태블릿 화면에 학생들의 답안지가 표시됐다. 프로그램이 오답률이 높은 문제를 표시하자 교사는 아이들이 써 놓은 풀이 과정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어느 단계에서 실수가 있었는지 설명했다. 수업에 새로운 프로그램에 사용됐지만, 학생들은 신기할 게 없다는 반응이었다. 이미 학습 과정에 디지털 기기나 AI를 활용하는 것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한 학생은 “문제를 풀거나 필기할 때, 숙제할 때도 AI 보조앱을 많이 사용한다”며 “AI를 활용하면 필요한 자료를 찾는 시간을 훨씬 절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영국 코번트리에 있는 'NatMatSci' 한 교실에서 선생님이 굿노트의 AI 프로그램을 이용해 수업하고 있다./연선옥 기자

이 학교 교장인 앤디 켐프(Andy Kemp)는 “다양한 AI 프로그램을 활용해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높이기 위해 새 학기가 시작한 지난 9월부터 선생님이 사용할 수 있는 AI 프로그램 ‘굿노트 클래스룸’를 시범 사용하고 있다”며 “AI는 효과적인 교수(敎授) 도구”라고 말했다.

또 다른 영국 교실에선 AI가 더 극단적으로 활용된 사례도 있다. 런던에 있는 기숙학교 데이비드 게임 컬리지(David Game College)는 이번 학기부터 중등교육과정 평가시험(GCSE)을 준비하는 학생 20명을 대상으로 인간 교사가 아니라 AI가 수업하는 과정을 개설했다. 학생들은 교실에서 AI 플랫폼과 가상현실 헤드셋을 사용해 수업을 듣는다. 인간 선생님은 ‘학습 코치’로써 AI 수업에서 학생 행동을 모니터링하고, AI 수준이 떨어지는 미술, 성교육 과목을 가르치는 정도만 담당한다.

이런 파격적인 학습 과정이 도입된 것은 학생들에게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학교를 이끌고 있는 존 달튼(John Dalton)은 “훌륭한 선생님이 많이 있지만, AI만큼 정확하고 지속적으로 학생을 평가하기는 어렵다”며 “AI를 활용하면 모든 학생이 효과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라고 말했다.

AI 앱을 활용해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학생들./연선옥 기자

코로나 사태 이후 원격수업이 확산하고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세계 교실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특히 영국에서는 AI를 활용해 고질적인 교육 불균형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하는 다양한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세계적인 명문 이튼 칼리지는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이전인 2019년 9월, 교실에 AI 학습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2015년 런던에 설립된 교육 관련 AI 스타트업 센추리테크(Century Tech)가 개발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특히 선생님이 학생 개개인의 부족함을 잡아주기 어려운 맞춤법이나 문법 개선에 효과적이었다.

이튼 칼리지는 이 프로그램을 사용함으로써, 교사가 이미 다른 학생이 알고 있는 내용을 수업 시간에 반복함으로써 발생하는 비효율을 크게 줄였고, 학생 한명 한명의 이해 수준에 대한 정보를 교사가 직접 관찰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취합해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높였다고 설명했다.

이미 AI가 깊숙이 들어온 영국 교실에 비하면 우리나라 교실에서 AI 활용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지난 9월 11일 서울교육대학교에서 열린 '학부모와 함께하는 교실혁명 토크콘서트'에 참석한 학부모들이 AI디지털교과서 시연을 살펴보고 있다./뉴스1

우리 정부는 내년 3월부터 세계 최초로 공교육 현장에 ‘AI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할 계획이다. 초등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을 시작으로 초·중·고교에 차례로 수학·영어·정보 과목에 우선 적용된다. 우리 정부는 디지털 교과서를 국가 전체적으로 도입하는 사례는 우리나라가 처음이라며 대대적으로 홍보에 나선 상태지만, 적용될 AI 기술은 아직 초보 단계로 평가된다.

다만 영국에서도 논란은 있다. 영국 정부는 맞춤형 교육을 실현하고, 학교 행정의 비효율을 줄일 것이라며 교육 현장에 AI 사용을 확대하는 정책을 채택했다. 영국 교육부는 “우리 목표는 교사 역할을 약화시키는 게 아니라, 교사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AI를 개발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AI 활용이 확대되면서 필연적으로 학생들이 유해하고 부적절한 콘텐츠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고, 학습 과정에서 부정행위를 하거나 데이터와 지식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앤디 켐프 NatMatSci 학교장./연선옥 기자

장기적으로는 AI나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는 학습 방법이 학업 성취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목소리도 크다. 영국 교육 관련 비영리단체 ‘Campaign for Real Education’을 이끌고 있는 크리스 맥거번(Chris McGovern) 대표는 “AI는 학습 과제를 학생의 개별 요구에 즉시 맞출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디지털 기술은 중독성이 있다”며 “이런 학습에 아이들이 장기간 노출되면 학생의 정신 건강은 희생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학교와 학부모는 많은 학생이 디지털 기술의 ‘과부하’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며 “교육 현장에서 AI와 같은 새로운 기술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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