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공정경쟁’ 잣대에 흔들린 국민식탁

이유리 기자 2024. 10. 28. 05:01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가격 탄력성이 낮은 가금업계에 '공정 경쟁' 잣대를 겨누는 것은 다같이 죽자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을 조사하겠다며 토종닭·오리·육계 할 것 없이 가금업계를 들쑤시고 다니자 이를 세상에 알리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런데도 2022년 공정위는 가금업계에 잇따라 시정명령을 내리고 200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과징금을 부과했다.

또 공정위의 지나친 규제가 오히려 국민경제와 식량안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경고도 된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가격 탄력성이 낮은 가금업계에 ‘공정 경쟁’ 잣대를 겨누는 것은 다같이 죽자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3년 전 한여름, 가금 생산자들은 상복을 입고 거리에 나섰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을 조사하겠다며 토종닭·오리·육계 할 것 없이 가금업계를 들쑤시고 다니자 이를 세상에 알리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런데도 2022년 공정위는 가금업계에 잇따라 시정명령을 내리고 200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과징금을 부과했다. 당시 가금업계의 생산량 조절 배경은 간단하다. 축산물 가격이 생산원가 이하로 떨어지자 농가의 생계를 위협했을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시장 자체가 붕괴될 위험이 감지됐다. 오리의 경우 한국오리협회가 회원사들과 논의해 자발적으로 생산량을 조절했다. 공정위는 이를 ‘부당한 공동행위’로 판단하고 제재를 가했다.

최근 판도가 바뀌는 일이 일어났다. 지난달 서울고등법원은 한 오리업체의 생산량 제한 행위가 ‘공정거래법’ 위반이 아니며 공정위의 시정명령과 과징금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냈다. 농수산물의 수급 균형과 가격 안정은 국가의 책임이자 생산자들의 권리라는 ‘헌법’을 근거로 들었다.

이 판시는 한 오리업체 승소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농축산업의 자발적인 수급 조절은 농축산물의 가격 안정과 국민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위한 합리적 대응임이 명확해졌다. 또 공정위의 지나친 규제가 오히려 국민경제와 식량안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경고도 된다.

농축산물 시장은 공산품과 다른 특수성을 가진다. 보관이 어렵고, 공급과잉이 발생하면 가격이 급락해 수익을 내기 어려운 생산자는 시장에서 퇴출당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식량안보가 무너지고 수입에 의존하게 된다. 축산물의 자율적 수급 조절은 가격 안정과 지속가능한 생산을 위한 전략이며, 생산자와 소비자를 모두 보호하는 필수적인 조치다.

서울고법의 판결은 공정위의 행태가 ‘불공정’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공정위의 공적 활동은 산업을 일단 때려잡고 보자는 우격다짐이어서는 안된다. ‘경제검찰’이란 별명에 부합하려면 조사 능력을 갖추고 신중할 필요가 있다.

공정위의 상고로 이 사건은 다시 대법원에 가게 됐다. 대법원이 원심 판결을 확정한다면 흔들리던 국민 식탁은 비로소 균형을 잡을 수 있다. 농축산업의 자율적 공동 행위는 국민경제의 필수 요소임을 고려한 대법원 판결을 기대한다.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