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제 '아파트'의 중독성은 'ㅍ'과 'ㅌ'의 한국말맛 때문...일본 언어학자 분석

고경석 2024. 10. 28.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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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핑크 로제 싱글곡 '아파트' 세계적 신드롬
일주일 만에 각국 음악차트 1위 오르며 인기
'아파트' 발음의 거센소리 'ㅍ' 'ㅌ'의 말맛
한국어·영어 모두 살리는 복수 언어주의
도입부 랩, 선율 뚜렷한 프리 코러스 매력
'아파트 술 게임' 구호로 채운 후렴구에
로제의 록적인 가창이 곡에 극적 변화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아파트' 뮤직비디오 중 한 장면. 어틀랜틱 레코드 제공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거친 발음의 한국 술 마시기 게임 구호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걸그룹 블랙핑크 멤버 로제가 미국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 함께 부른 ‘아파트(APT.)’의 폭발적인 인기를 타고 영어 ‘Apartment’가 아닌 한국어 ‘아파트’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가장 뜨거운 단어로 떠올랐다. 중독성이 강해 ‘수능금지곡’으로 불리는 이 곡의 인기에는 곡 자체의 통통 튀는 매력도 있지만 영어와 한국어가 충돌하는 K팝의 독특한 ‘말맛’도 적잖은 지분이 있다.


'아파트' 스포티파이와 애플뮤직, 멜론 등서 1위...빌보드서도 10위 안착 예측

이달 18일 첫 공개된 ‘아파트’는 발매 직후 국내 멜론 일간 차트 1위에 올랐고 22일 세계적인 음원 서비스인 스포티파이와 애플뮤직의 글로벌 차트까지 정복했다. 뮤직비디오는 유튜브에서 단 9일 만에 조회수 1억6,000회를 돌파했다. 영국 오피셜 차트 싱글 부문에선 4위에 첫 등장했는데 이는 국내 여성 솔로 가수 최고 기록이며 블랙핑크가 지금껏 거둔 성적보다 높은 순위다.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인 핫100에서도 10위 안에 데뷔할 것으로 점쳐진다. 마스는 이 곡이 한국 음악 방송에서 1위를 차지하자 인스타그램에 한글로 “첫 음방 1위 해서 아침 내내 울었다 ㅠㅠ”고 적어 화제를 모았다.

로제와 아파트 게임을 즐기는 브루노 마스. 브루노 마스 인스타그램

‘아파트’는 로제가 술 마시기 게임인 ‘아파트 게임’에서 착안해 작사, 작곡했다. 국내 아이돌 그룹 멤버 중 자작곡으로 이처럼 세계적 화제를 모은 건 사실상 처음이다. 뉴질랜드 출신인 로제는 싱어송라이터로서 재능을 증명해 보이는 한편 '혼종성'이라는 K팝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최근 트렌드를 거스르며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곡 자체는 1982년 미국 가수 토니 바실의 히트곡 ‘Mickey’의 비트를 새롭게 풀어 쓴 팝 펑크 스타일의 짧고 단순한 곡이지만, 도입부의 랩, 선율이 뚜렷한 프리 코러스(후렴구 직전의 소절), 아파트 게임 구호로 채운 후렴구, 다리 역할을 하는 로제의 록적인 가창 등으로 급격한 변화를 준다.

정원석 대중음악평론가는 “’Mickey’를 비롯해 2008년 발표된 영국 듀오 팅팅스의 ‘That’s My Name’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곡 자체가 신선하지는 않지만 요즘 K팝 중에선 드문 스타일이라는 점에서는 꽤 신선하다”면서 “요즘 인기 있는 영어권 팝 노래들과도 차별화된 스타일의 잘 만든 팝”이라고 평가했다. ‘That’s My Name’ 유튜브 뮤직비디오에는 ‘아파트’를 듣고 이 곡이 떠올랐다는 댓글이 쏟아졌다.


노마 히데키 교수 "영어와 다른 외래어 '아파트' 발음의 매력 극대화"

영어와 한국어가 뒤섞이고 서양의 팝과 한국의 게임 구호가 충돌하면서 K팝 특유의 맛이 나는 것도 '아파트'의 매력이다. 노마 히데키 전 일본 도쿄대외국어대 교수는 한국일보와의 서면인터뷰에서 '아파트'의 뜨거운 인기에 대해 “두 언어의 주종 관계없이 복수 언어를 살리는 복수 언어주의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이야기’성에 기대는 20세기 작사법이 아니라 영어와 한국어를 함께 써서 말 자체의 성질인 '말성'을 극대화했다는 것이다. 언어학자로서 K팝을 연구해온 노마 교수는 ‘한글의 탄생’ ‘K-POP 원론’의 저자이다.

로제와 브루노마스가 협업한 'APT.(아파트)'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유튜브 캡처

노마 교수는 “한국어의 격음인 ‘ㅍ’과 ‘ㅌ’이 리듬을 타고 노래에서 반복되는데, 영어에서 왔으나 영어와 다른 ‘아파트’라는 외래어가 발하는 매력을 충분히 살렸다”면서 “한국어가 모어(母語)가 아닌 사람도 ‘아파트’의 뜻은 작은 수수께끼로 남긴 채 그 음을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팝스타 찰리 푸스도 '아파트'가 발표된 직후 SNS 앱 틱톡에 ‘아~파트 아파트’ 부분만으로 영상을 올리며 “이 곡이 머릿속에 영원히 박혀 버렸다”고 썼다. 음인 'ㅡ' 발음이 센 한국식 '트'를 표현하기 위해 곡 제목을 영어로는 ‘Apateu’라고 표기한다.

‘369게임’에서 유래한 구호의 빠른 리듬감과 ‘아파트’의 격음이 만들어내는 파티 분위기는 외국인에게 생소한 술 마시기 게임과 결합해 호기심을 자극했다. 로제는 이에 대해 한 인터뷰에서 “브루노 마스가 ('아파트' 듀엣 협업을) 거절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파트'를 포함한 세 곡을 보냈는데 그중 ‘아파트’에 관심을 보였다"며 "그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고 한국의 술 마시기 게임이라고 답했더니 그가 이 곡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마스는 뮤직비디오에서 양손으로 태극기를 흔들며 가사에 맞춰 ‘건배, 건배’를 외친다. SNS에도 아파트 게임을 설명하거나 따라 하는 영상이 쏟아지고 있다.

러시아의 청소년들이 로제의 '아파트'에 맞춰 아파트 게임을 즐기고 있다. 틱톡 캡처

세대를 가리지 않는 ‘아파트’의 인기에 정치인들도 가세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SNS 계정에 뮤직비디오를 공유했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자꾸 듣게 되네요”라고 SNS에 썼다. 주류업계도 반색한다. 로제가 소주와 맥주를 섞어 '소맥' 만드는 법을 설명한 미국 패션 전문지 ‘보그’ 영상이 유튜브 공개 닷새 만에 조회수 300만 건을 돌파하자 한국 주류 업체들이 해외 소비자를 겨냥해 소맥 마케팅을 검토 중이다. 제목 외엔 공통점이 없는 윤수일의 1982년 히트곡 ‘아파트’도 덩달아 인기다. 로제의 ‘아파트’ 공개 전인 17일 윤수일의 '아파트' 하루 청취자는 1,942명이었는데 26일 1만159명으로 5배 이상 뛰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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