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 내내 전학 걱정없이 우리 동네서 ‘엘리트 선수’ 꿈 키워”

춘천=이인모 기자 2024. 10. 2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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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교육청의 ‘운동부 계열화’… 배드민턴-테니스-태권도 등 종목
운동부 없던 지역에 새로 만들어… 학생들, 졸업 뒤에도 진로 이어가
창단비용 적지 않지만 전폭 지원… 전국체전 금메달 등 성과 가시화
“지역인재 유출도 막는 알찬 사업”

강원 춘천시 대룡중 배드민턴부 1학년 이종윤 군(13)은 지난해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춘천에 배드민턴부가 있는 중학교가 없다 보니 배드민턴부가 있는 다른 지역 중학교로 진학하거나 운동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에 놓였던 것. 그러나 올해 대룡중에 배드민턴부가 생긴 덕분에 춘천에서 계속 학교를 다니면서 운동을 할 수 있게 됐다.

● 학생 선수 키우고 인재 유출 방지 효과

강원 춘천시 대룡중 배드민턴부의 이원복 코치(왼쪽)와 1학년 선수들. 이 학생들은 올해 대룡중에 배드민턴부가 창단하면서 학생 선수로 운동을 계속할 수 있게 됐다. 춘천=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배드민턴을 시작한 이 군이 이처럼 중학교에서도 선수 생활을 계속하게 된 것은 강원특별자치도교육청이 역점 추진 중인 ‘학교 운동부의 초중고교 종목별 계열화’ 덕분이다. 이는 특정 종목의 운동부가 지역 초중고 가운데 한 곳이라도 없다면 새로 만들어 학생 선수들이 한 지역에서 초중고 내내 끊김 없이 계속 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우수 선수가 안정적 환경에서 운동을 계속함으로써 실력을 키울 수 있고, 지역 인재가 타 지역으로 유출되는 현상도 막을 수 있다.

춘천에는 이 군이 졸업한 동내초에 남자 배드민턴부가 있지만 관내 중학교에는 없었다. 이 때문에 초교를 졸업한 뒤에도 배드민턴을 계속하려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야 했다. 그러나 올해 관내 대룡중에 배드민턴부가 생기면서 이 군을 포함한 3명의 동내초 졸업생이 학업과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대룡중 배드민턴부는 새롭게 운동을 시작한 1명을 포함해 4명의 선수가 미래의 안세영과 이용대를 꿈꾸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 군은 “좋아하는 배드민턴을 계속하려면 운동부가 있는 원주로 갔어야 하는데 춘천에 배드민턴부가 생겨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며 “졸업하기 전까지 춘천의 고교에도 배드민턴부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내 테니스 최고 유망주로 꼽히는 이서아 양(16)도 지난해 고교 진학을 앞두고 같은 고민을 겪었다. 춘천에 테니스부가 있는 고교가 없다 보니 방송통신고에 진학해 스포츠클럽에서 테니스에 전념하거나 테니스부가 있는 다른 지역 고교로의 진학 등을 놓고 선택해야만 했다. 하지만 올해 춘천 봉의고에 테니스부가 창단되면서 이 양은 봉의고에 진학했고, 현재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며 국내 여자 주니어 랭킹 1위의 뛰어난 성적을 내고 있다.

춘천에는 동춘천초교와 봄내중에 테니스부가 있지만 관내 고교에는 없어 초등학교, 중학교 졸업생들이 진로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형택을 배출한 옛 테니스 명문 봉의고에 테니스부가 부활하면서 지역 내 초중생들은 진로 걱정이 사라졌다.

올해 창단한 강원 태백시 철암중 태권도부의 지경신 지도교사(왼쪽), 김종주 코치(오른쪽)와 선수들. 철암중 제공
태백 철암중에도 태권도부가 생겨 학생 3명이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 1학년 조비송 양(13)은 “태권도를 배우기 위해 다른 지역 학교로 가지 않아도 돼 너무 좋다”며 “열심히 연습해서 학교와 지역을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 강원 학생 선수들 전국체전서 맹활약

강원도교육청의 운동부 계열화는 오래전에 시작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기간 한때 주춤했지만 최근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지난해 춘천 유봉여고 컬링과 태백 철암고 레슬링, 정선 사북중 태권도 등 7개 종목 운동부가 창단한 데 이어 올해 대룡중 배드민턴, 봉의고 테니스, 태백 철암중 태권도, 원주 버들중 여자 양궁부가 창단했다. 내년에도 춘천 소양중 소프트테니스, 남춘천여중 탁구, 강원체중 빙상, 강릉중 스키, 강릉 교동초교 빙상 등 다양한 종목에서 학생 운동부 창단이 계획돼 있다.

학교 운동부 창단에는 상당한 예산이 뒷받침돼야 한다. 선수들이 운동할 수 있는 시설이나 장비 등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강원도교육청은 대룡중 배드민턴부 창단을 위해 체육관 리모델링에 14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배드민턴에 적합하게 바닥을 새로 깔고 밝은 조명을 설치하는 등 체육관을 새롭게 단장했다. 이 체육관은 학생 선수뿐 아니라 일반 학생과 지역 동호인도 이용할 수 있어 리모델링 효과를 많은 사람들이 누리고 있다.

테니스부가 창단한 봉의고에도 7억9000만 원이 투입돼 테니스장 조성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또 탁구부가 창단 예정인 남춘천여중에는 19억 원을 들여 탁구장을 신축할 예정이다.

강원도교육청은 초중고뿐 아니라 대학과 실업팀에도 해당 종목 운동부를 신설할 수 있도록 도내 대학들과 협의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지역 내에서 우수 선수들이 진로에 대한 걱정 없이 안정된 생활 속에서 운동을 계속할 수 있다.

11~17일 경남 김해에서 열린 제105회 전국체육대회에 참가한 강원 고등부 선수들과 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방문한 강원특별자치도교육청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교육청 제공
강원 고등부 선수들(19세 이하부)은 최근 열린 제105회 전국체육대회에서 맹활약했다. 지난해보다 금메달은 8개가 많은 35개를 땄고 은메달 28개, 동메달 36개 등 총 99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17개 시도 가운데 금메달 순위 4위, 종합 순위 7위에 해당한다. 강원도의 전체 학생 선수 및 참가 선수 규모에 비하면 매우 뛰어난 성적이다. 선수들의 부단한 노력과 지도자의 뜨거운 열정, 도교육청의 물심양면 지원이 어우러진 값진 결과로 평가받고 있다.

이인범 강원도교육청 문화체육특수교육과장은 “운동부 계열화는 우수 선수의 안정적인 성장과 지역 인재의 유출을 막는 알찬 사업이며 뛰어난 성적으로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며 “도내 시군 초중고별로 빠져 있는 종목의 운동부를 채울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강원특별자치도 고등부 선수단 제105회 전국체육대회 주요 성과
―금 35개, 은 28개, 동 36개
―금메달 순위 전체 4위, 종합 순위 7위
―강원체고 금 17개, 은 17개, 동 15개
―강원체고 3명 3관왕 등극
―수영 한국신기록 3개, 대회신기록 4개
―양구고, 전국체전 최초 테니스 단체 5연패

“운동부 계열화 이후 전국대회 금메달 등 성과… 투자한 만큼 결과 나와”

신경호 강원도교육감 인터뷰
엘리트 선수 배출 위해 계열화 지원
시설-장비 예산뿐 아니라 훈련비도

신경호 강원특별자치도 교육감은 2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운동부 계열화의 성과는 갈수록 커질 것으로 자신한다”고 밝혔다. 강원특별자치도교육청 제공
“체력도 학력입니다. 운동에 소질 있는 학생들이 마음껏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고 싶습니다.”

신경호 강원특별자치도 교육감은 23일 도교육청 집무실에서 진행된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학교 체육과 운동부 계열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운동부 계열화란 운동 분야에 뛰어난 학생이 초중고교 내내 공백 없이 훈련, 연습할 수 있도록 관련 운동부를 만들어주는 것을 말한다. 다음은 일문일답.

―학교 운동부 계열화 추진 배경은….

“학생들은 다양한 소질을 갖고 있다. 이 가운데 운동에 소질 있고, 운동을 하고 싶어 하는 학생도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학령인구 감소로 선수 선발이 어렵고, 인기 종목 쏠림으로 학교 운동부가 축소 또는 해단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운동부 계열화는 학생 선수로 진학을 이어가고, 지속적인 진로 탐색을 통해 전문적인 엘리트 선수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운동부 창단 시 예산 문제는 없나.

“창단 초기 시설, 장비 등에 예산이 많이 들어가지만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운동부의 특성을 고려해 3년 동안 단계적으로 창단지원금이 지급된다. 그 이후에도 안정적 운영을 위해 지속적으로 훈련비를 지원한다.”

―운동부 계열화의 성과는….

“학생들의 진학, 진로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우수한 강원도의 학생 선수들이 타 시도로 가지 않고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지역에서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성과가 상당하다. 올해 창단한 봉의고 테니스부의 이서아 학생이 올해 전국체육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다. 학교 운동부 계열화의 성과는 갈수록 커질 것이다.”

―올해 전국체육대회에서 뛰어난 성적을 올렸는데….

“운동도 투자한 만큼 결과가 나온다. 투자에 대한 결실이 하나둘 나타나고 있다. 올해 여름 종목 우수 선수 30명에게 7박 9일 스페인 연수 기회를 줬다. 겨울 종목 선수 16명도 독일과 네덜란드를 다녀왔다. 양양고 사이클부에는 대당 1600만 원 하는 신형 자전거 3대를 지원했다. 해당 학생 선수들이 이번 대회에서 대부분 좋은 성적을 냈다. 상지대관령고에는 1억 원 상당의 봅슬레이용 썰매를 지원했다. 이 학교의 소재환 학생이 올해 강원 겨울청소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대학과 실업팀까지도 계열화가 되면 좋을 것 같은데….

“일단은 도체육회 7개 종목을 비롯해 강원대, 한림대, 강릉원주대 등 도내 대학, 실업팀들과 적극 협력해 학생 선수들이 졸업 이후에도 계속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울 방침이다.”

―학생 선수들과 가족, 지도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강원도교육청의 슬로건이 ‘마음껏 펼쳐라’다. 학생 선수들이 훈련과 대회에서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고 지도해 준 학부모와 지도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학생 선수들이 더 집중해서 운동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해 주고, 좋은 의견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달라. 학교와 학부모, 교육청이 서로 소통하고 믿음이 쌓여간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 학생 선수들이 체육으로 강원 교육을 활짝 피어나게 할 것이다.”

춘천=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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