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배달 음식을 멀리하는 이유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소설 ‘마지막 왕국’ 저자 2024. 10. 28.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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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새벽배송 업체가 보낸 과대포장된 식자재들 모습. /조선일보 DB

집 앞에 새벽 배송한 상자를 열고 물건을 하나하나 꺼냈다. 바나나 한 다발이 플라스틱 박스에 담겨 있고 다시 비닐 버블 랩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우유 역시 버블 랩에 싸여 있었다. 동네 수퍼마켓에서 장을 볼 때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상추는 플라스틱 트레이에 담아 비닐 포장을 했고 배는 스티로폼으로 감싸 플라스틱 상자로 한번 더 감싼다. 비스켓 종류를 열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게 과자 이상의 플라스틱이 쏟아져 나온다. 나의 죄책감은 쌓여 간다.

요즘 배달 음식을 피하려 노력하고 있다. 집에서 만든 음식이 더 맛있다는 점보다 주된 이유는 1인 주문만 해도 플라스틱 쓰레기가 엄청나게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봉지를 열면 음식이 담긴 큼직한 플라스틱 상자뿐 아니라 반찬 하나하나가 작은 플라스틱 통에 담겨 있다. 짜장면을 주문하면 여러 번 쓸 수 있는 그릇에 담겨 배달 오던 시절이 그리운 건 나뿐일까.

한국은 플라스틱 재활용에서 앞선 나라다. 하지만 플라스틱 쓰레기가 100퍼센트 재활용되는 건 아니기에 소비하는 플라스틱의 절대량을 줄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과연 과일 하나가 흠 없는 완벽한 상태로 냉장고에 들어가는 데 플라스틱 세 겹으로 감싸야 할 만큼 필수 불가결한 선택일까? 그중 한두 겹을 줄인다면 맛이 나빠질까?

요즘 사람들은 편리함에 더해 완벽함까지 요구한다. 플라스틱은 이 두 가지를 충족해 주며 저렴한 가격으로 배송 가능하게 하는 핵심 요소다. 비즈니스 클래스 여행이나 다른 사치재와 마찬가지로 ‘완벽함’과 ‘편리함’은 한번 경험해서 기준이 높아지고 나면 이전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한국은 일반적으로 거의 모든 것에 매우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 나라다. 이런 점이 사람들을 성공으로 향하도록 몰아붙이고 있지만, 행복 측면에서 대가를 치르게 한다. 플라스틱 포장과 스티로폼 쿠션에 싸여 배달되는 크고 싱싱한 노란 배는 무척 상징적이다. ‘기준이 매우 높군.’ 결국 그것은 우리에게 그만큼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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