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 산업 따라 정부 지원 들쭉날쭉… 공대생 “미래 불안”

강다은 기자 2024. 10. 28.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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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 ‘도미노 이탈’ 원인은
그래픽=백형선

내년도 의대 신입생이 1497명 증원됨에 따라 전국 공과대학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가뜩이나 인재가 부족한데 의대가 증원되면서 다시 수능을 보거나 편입을 통해 의대·치대·한의대·약대 등 이른바 ‘메디컬 학과’로 가려는 이탈자들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 공대에선 “이러다간 공학의 경쟁력 전반이 약해질 것”이라는 비관적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대 공대는 최근 “그간 교육 방식을 다 바꾸자”며 ‘공대 활성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래픽=백형선

◇“의대 가겠다” 공대 자퇴생 급증

의대 등 메디컬 학과에 가기 위해 자퇴하는 공학도는 계속 늘고 있다. 지방 의대나 치대, 한의대, 약대 등에 다니는 학생들도 수도권 의대를 가기 위해 다시 수능을 보고, 이 자리를 다시 공대 학생들이 채우는 식의 ‘도미노 이탈’이 벌어지고 있다.

카이스트(KAIST)에 따르면 2021년부터 이달 4일까지 의대·치대 진학을 위해 자퇴한 카이스트 학생은 182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학부 자퇴생이 178명으로 대다수였고, 석·박사 과정도 4명 있었다. 내년 의대 입학정원이 대폭 늘어난 데다 학생들이 수능을 본 뒤 자퇴하는 경우도 많아 올해 자퇴생은 더 늘 것으로 예상된다.

공대는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공대생들과 교수들은 정권이나 산업 트렌드에 따라 정부의 연구 지원이 너무 달라지는 불안정성이 가장 큰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김성재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해외 학회를 가서 ‘우리나라는 12대 국가전략기술을 육성한다’고 하면 ‘그럼 연구를 어떻게 하느냐’며 깜짝 놀란다”고 했다. 유행에 따라 특정 산업에 예산을 몰아주고, 전국에 클러스터를 만들면 다른 분야는 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더 큰 문제는 이런 트렌드가 정권 따라 5년마다 바뀐다는 것”이라고 했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에서 차세대 원전을 연구하는 대학원생 구모(25)씨는 “지난 정부 ‘탈원전 정책’으로 학생들이 강의실 대신 거리로 나가 집회를 했다”며 “꾸준한 지원을 통해 흔들림 없이 연구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했다. 박은수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10개 연구에 실패해야 선구적인 연구 1개를 성공할까 말까인데, 실패에 너무 인색하다”고 했다.

“공대생은 의대 못 간 패배자”라는 인식이 팽배한 것도 문제다. 의대에 가려고 수능을 준비하는 한양대 공대생 김모(22)씨는 “올해 군대에서 전역을 하고 학교에 갔더니 동기 대부분 이미 학교를 떠났거나 수능 준비한다고 바쁘더라”면서 “얼떨결에 같이 휴학하고 의대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기업에선 이미 초격차 기술을 연구하고 있는데, 대학은 여전히 낡은 장비와 책으로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문제다. 지난 24일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에선 1998년에 들어온 반도체 전(前) 공정 관련 장비로 수업이 한창이었다. 이 연구소 관계자는 “1980~1990년대 기술과 장비로 ‘이런 개념이 있구나’라는 것만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수준”이라며 “그래도 서울대니까 이 정도 수업을 하는 것이지 지방 공대들은 더 심각하다”고 했다.

◇서울공대, ‘공대 대전환’ TF 꾸려…인재 잡기 안간힘

의대 증원을 계기로 특히 더 위기의식을 느낀 서울대 공대는 학생 이탈을 막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난 7월엔 ‘공대 대전환’을 준비하는 태스크포스(TF) 7개를 구성해 TF마다 교수 10여 명이 매달 2~3회씩 회의를 열고 있다. 단순히 수업이나 연구의 질을 높이자는 차원이 아니라, 의대로의 이탈을 막고 자조·비관적인 공대 분위기를 바꿔 공학에 자부심을 느끼는 학생들을 길러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서울공대 역사 TF’는 역사적인 엔지니어를 소개하는 공간이나 프로그램을 설계 중이고, ‘공학인재역량센터설립TF’는 엔지니어로서 필요한 역량을 개발하는 센터를 만든다. 또 의대와 함께 의공학 관련 협동 전공 개설도 준비 중이다. 협동전공은 여러 학과가 기존에 없던 ‘전공’을 만들어 함께 운영하는 것이다.

김영오 공대 학장은 “최근 의대로 이탈자가 늘어 교수들 걱정이 크고,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엔지니어를 키워내는 데 어려움이 컸다”며 “내년을 변화의 해로 삼고 입시, 교육, 졸업 이후 진로 계획 등 공대 전반의 정책을 다시 짜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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