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42] 감을 따 내리며
감을 따 내리며
저렇게 푸른 하늘이 어디에다 가마 걸고
이렇게 붉은 열매를 주저리로 구워 내렸나
아흔 해 이 땅에 살아도 가마터를 나는 몰라.
-정완영(1919-2016)
가을 하늘이 푸르다고 이른 까닭은 그만큼 날씨가 맑고 밝기 때문일 테다. 시인은 다른 시에서는 “하루 한 길씩을 높아가는 가을하늘”이라고도 썼다. 감나무에 매달린 감을 따 내리면서 시인은 감의 잘 익은 빛깔에 감탄하며 마치 숯이나 도자기처럼 가마에 넣어 구워 낸 것만 같다고 노래한다. 불을 땔 때의 붉은 빛과 열기가 잘 익은 감의 빛깔과 서로 어울려 멋스러운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세상의 모든 열매를 구워 내는 어마어마한 가마터가 정말이지 어딘가에 있는 것일까. 나이가 들어서도 가마터를 모른다고 한 것은 우주생명의 살아 움직이는, 신묘한 힘과 변화에 대한 경외의 마음을 드러낸 것이면서 한편으로는 겸사(謙辭)라고 하겠다.
이 시를 읽으니 고향집에서 감을 따던 일이 생각난다. 장대 끝을 벌려 그 틈에 감나무 가지를 끼운 후에 살짝 돌려 꺾어서 땄었다. 감나무 꼭대기의 감은 까치밥으로 남겨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완영 시인은 고향을 소재로 여러 시편을 남겼다. 가령 “고향을 찾아가니 고향은 거기 없고//고향에서 돌아오니 고향은 거기 있고//흑염소 울음소리만 내가 몰고 왔네요”라고 썼다. 선량함과 기지에서 태어난 가편(佳篇)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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