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홍의 스포트라이트]FIFA는 축구협회를 무조건 비호하지 말라
이 문제는 문화체육관광부의 대한축구협회 감사 및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과 홍명보 국가대표팀 감독의 국회 출석 등이 이루어진 상황에서 불거지고 있는 문제다.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이 29일 서울에서 열리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연간 시상식에 참석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어떤 식으로든 이 문제가 다시 한번 거론될 가능성이 커졌다.
FIFA는 이 조항을 위반한 국가들에 대해 징계를 내려 왔다. 이 조항은 축구계가 정치권력에 휘둘리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하지만 이의 기계적 적용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어 왔다.
이와 관련해 현재의 한국과 비슷한 상황을 겪은 나라는 프랑스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당시 프랑스 대표팀은 극도의 분란을 겪었다. 선수들이 분열돼 팀워크가 무너졌고 선수들과 감독 사이도 악화돼 선수가 감독에게 경기 중 대들다가 그 다음 날 대표팀에서 퇴출당했다. 그러자 이에 항의하는 선수들이 대회 도중 훈련을 거부하며 파업하는 등 막장 드라마로 치달았다. 직전 대회 준우승팀이자 전통의 강호였던 프랑스 대표팀은 결국 조별리그 최하위로 탈락하며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까지 나서 진상조사를 촉구했고 로즐린 바슐로나르캥 체육장관은 당시 프랑스축구협회장을 겨냥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사실상 사퇴를 요구했다. 프랑스 국회는 축구협회장과 대표팀 감독을 국회 청문회로 불렀다. 이에 FIFA는 프랑스에 대해 ‘제3자 개입 금지’ 조항을 위반할 경우 제재를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당시 프랑스 정부는 “국민들이 모두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밝혀내려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라고 맞섰다.
최근의 한국 상황과 비슷하게 흘러갔던 이 사태는 결국 프랑스 축구협회장과 대표팀 감독이 모두 물러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 과정에서 바슐로나르캥 체육장관은 자신이 협회장에게 책임을 요구한 것은 정부의 입장이 아니라 개인적 의견이었다고 주장하며 제3자 개입 논란의 여지를 주지 않고 FIFA의 체면을 살려주려 했다. FIFA 또한 축구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프랑스 내 국민들의 개혁 요구를 인정했기에 “프랑스 청문회에서 제3자 개입 위반 내용을 보지 못했다”고 물러났다.
하지만 FIFA가 2022년 짐바브웨에 대해 제재를 가했을 때처럼 논란이 이는 경우도 있었다. 짐바브웨 정부는 당시 축구협회 내부의 부정부패와 성추문 등을 이유로 축구협회를 제재했는데, FIFA는 이를 제3자 개입으로 보고 짐바브웨의 대회 출전을 금지시켰다.
이에 대해 짐바브웨 내부에서는 FIFA가 자국의 사법체계를 무시했다는 반발이 나왔다. 이 같은 사례는 FIFA의 제3자 개입 금지 조항 뒤에 숨어 축구계가 자신들만의 신성불가침한 왕국을 세우는 것을 두고 보아야만 하는가라는 논란을 일으켰다. 말하자면 FIFA의 제3자 개입 금지 조항을 기계적으로 적용할 경우 이는 축구계의 부정부패를 비호하는 독소조항이 될 수 있다. 또한 FIFA가 대규모 국제 대회 개최 등 각국 정부의 지원이 필요할 때는 정부의 개입을 묵인하면서도 자신들의 권한이 침범당할 때만 제재를 하며 해당 조항을 악용한다는 비판이 있어 왔다.
따라서 FIFA 또한 해당 사안에 대해 신중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명백한 비리나 협회 내부의 비민주적 행태 등은 축구계 발전을 위해서도 허용될 수 없다. FIFA가 축구계의 ‘마피아’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이러한 부분에 대한 정당한 개혁 요구마저 무시해서는 안 된다.
프랑스는 결국 관계자들을 모두 교체하고 개혁에 나서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지금 한국 축구에 대한 개혁 열망도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FIFA는 한국 축구 개혁에 대한 요구가 정치적 이해에 따른 것이 아닌 축구팬들과 국민들의 축구 발전 열망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축구단체인 FIFA가 축구팬들의 축구 발전 요구를 제재하려 한다면 어불성설이다.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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