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아의 조각보 세상]‘영부인’의 품격 보여줄 수 있는 길

기자 2024. 10. 27. 21:2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내조만 하겠다’는 약속 어기고
국정 삼킨 용산의 숨은 권력자
돌 맞아도 지키겠다는 대통령
마음속에 국민이 있기는 한가

2024년 10월 대한민국 국회의 의제는 단연코 ‘김건희 국감’인 듯하다. 국정감사, 한 해 동안 중앙정부의 살림살이를 꼼꼼히 살피고 위법이나 부정의 소지는 없었는지, 더 해야 하거나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은 무엇인지 국민의 편에서 매의 눈으로 찾고 따지는 시간, 대통령 배우자의 의혹이 모든 국정을 삼켜버렸다. 10월21일 낮 한남동 대통령 관저 부근에서 벌어진 법사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의 동행명령장 전달 요구와 이를 막아선 경찰의 바리케이드를 영상으로 지켜본 국민들의 마음은 참담했다.

한밤중 울리는 ‘북한 오물 풍선 경보’ 문자에 잠이 깨고, 아침 출근길엔 한반도 전쟁 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다는 미국발 기사를 읽는다. 저녁 퇴근길엔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 북한군을 공격해 대북 심리전으로 활용하자는 국회의원과 국가안보실장의 문자메시지와, 그것이 국민들을 얼마나 불안하게 만들지 걱정하기보다 비판하는 야당 의원들에게 코웃음을 쳤다는 뉴스를 듣는다. 회복될 것이라는 3분기 경제성장률은 0.1%로 그치고 11월 미국 대선이 끝나면 미·중 무역 갈등으로 한국 경제가 더 취약해질 수 있다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경고까지 나왔다. 끝이 안 보이는 의료대란 속에서 가족 중 누구라도 아플까봐 노심초사하고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작조차 추방되는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야 한다.

대통령의 마음속에 국민은 어디쯤 있는 것일까. 돌을 맞아도 부인만 지키겠다는 그의 고백은 출퇴근길에 들려오는 이런저런 소식보다 더 충격적이다. ‘영부인’이라는, 일반 국민에게는 감히 붙일 수도 없는 화려한 수사로 치장된 그의 배우자가 연루됐을 수 있다는 각종 의혹은 더욱 더 충격적이다. 그러므로 반국가세력의 공작, 야당의 정치공세, 어처구니없는 의혹이라는 용산의 반박도 별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지난 25일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20%로 떨어졌고, 제1의 원인으로 지목된 것이 ‘김 여사 문제’(15%)였다니 말이다.

한번쯤 생각해볼 것이 있다. 대체 대통령의 배우자는 어떤 권한과 책임을 갖는가? 이철호 교수의 논문 ‘대통령 배우자의 법적 지위’에 따르면, 한국에서 대통령의 배우자는 헌법을 비롯해 법률에 명시된 권한이나 책임, 임무나 역할이 없는 존재다. 다만 관행적으로 대통령이 참석하는 국내외 공식 행사에 동행하며 대통령의 직무를 직간접적으로 돕고, 개인적 관심에 따라 교육·복지·의료·문화 등의 분야에서 활동한다. 대통령의 배우자는 선거에 의한 선출직도 아니고 법률에 의한 행동규약도 없으며, 대통령과 결혼한 사실에 의해 지위를 얻을 뿐 급여도 없다.

그러나 이런 정의는 서류상의 것일 뿐 실질적으로는 숨은 권력자(hidden power)라는 게 현실적 판단이다. 지근거리 정책결정자(PPM, proximate policy maker)로서 대통령의 의사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은 연방법에 배우자의 공식 역할에 대한 규정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대통령 등 경호에 관한 법률’에서 단순 경호 대상으로만 포함돼 있을 뿐이다. 이런 현행법이 대통령 배우자의 현실적 영향력을 간과하거나 그 지위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이에 대해선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대통령실의 주장을 따져보면, 김건희 여사도 배우자로서 일정한 활동의 권한을 가진다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김 여사의 경우 그 논리는 틀렸다. 첫째, 정당성의 결여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이나 명품백 수수 사건은 대통령의 배우자로서 갖춰야 할 도덕성에 대한 의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시사한다. 무엇보다도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였던 시절, 김 여사는 허위 경력과 표절 시비 등으로 스스로 ‘내조만 하겠다’고 전 국민 앞에서 약속한 바 있다.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둘째, 김건희 여사는 공적 인물(public figure)로 활동해 본 경험이나 의식이 전혀 없는 인물이다. 명확한 공사 구분, 엄격한 준법의식, 자신보다 국민의 안위를 먼저 걱정해야 하는 책임이 대통령에게 있고, 그의 배우자 역시 적어도 임기 중에는 이를 위반해서는 안 된다. 지금 김 여사는 곳곳에서 사적 이해관계를 추구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셋째, 최근 제기된 의혹은 대통령의 권한 침해다. 김건희 V0설, 용산 김건희 라인설 등이 하루가 멀다하고 뉴스가 되고 있다. 법적 권한도, 공적 인물로서 갖춰야 할 경험이나 의식도, 사적 개인으로서 도덕적 정당성도 결여된 대통령 배우자가 국정을 좌우하는 일은 중단되어야 한다.

이 모든 의혹에서 자유로워지려면 특별검사제를 수용해야 한다. 그것만이 대통령 배우자로서 국민에게 ‘영부인’다운 품격을 보여줄 수 있는 길이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