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국은행 총재가 입시와 무슨 상관이냐” 묻는 이들에게
최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대학 입시를 바꿔야 집값 상승이 잡힌다”는 취지의 주장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다만 ‘시의성에 동의하지만, 대입정책이 한국은행 총재의 몫은 아니다’라는 일각의 시선에 대해, 나는 두 가지 이유로 이창용 총재의 발언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 한다.
우선 공교육 불신과 사교육 고도화로 인한 불평등은 ‘교육 문제’ 범위를 넘어, 집값과 지역 간 격차, 출생률 등 이 땅의 핵심적 사회문제로 지적되는 거시경제 지표까지 좌우하는 병목임을 짚고 싶다. 그간 교육부의 무수한 ‘사교육 대책’들의 내용을 기억하는 이는 없어도, 그 결과가 ‘역대 최대 사교육비’임은 모두가 안다. 그렇다면 교육 분야 전문가나 관료들의 손에만 맡겨둔 지금까지와 달리, 다양한 분야의 관점과 지혜를 모아 교육 및 대입 문제를 풀어갈 때가 된 게 아닐까.
다음으로, ‘지역균형 선발 확대’를 꺼내들어 ‘학생을 선점하려는 대학의 욕심’을 비판해 ‘지금 무엇이 필요하고,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호명했던 이창용 총재의 방식이, 교육을 바라보는 대다수 ‘외부 전문가’들과 달랐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지금까지 여러 개혁 시도들이 좌초한 이유는 간단하다. “사교육 쏠림과 불평등을 유발하는 한국의 경쟁교육이 문제”라는 막연한 진단으로 시작해, 반발이 두려우니 ‘대학의 선발 자율권 확대, 규제 완화’처럼 어떤 당사주체도 책임과 고통을 부담하지 않는 안전한 대안만을 골라왔기 때문이다.
‘선발 자율권 확대’는 대학의 교육철학 구현의 수단으로서 학생과 학부모, 고교 현장의 부담을 덜어줄 때에만 의도한 효과를 달성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의 대학들은 매년 전형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반영식을 예고 없이 바꾸며 경쟁 대학보다 배치표에서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자율권을 남용하는 형편이다. 대입전형이 전문가들도 헷갈려할 정도로 복잡해지고 있으니, 이를 해설해준다는 유명 학원의 설명회에 늘어선 학부모들의 줄은 매년 길어질 수밖에 없다.
원래 적절한 정보 제공을 통해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과 진로를 찾아갈 수 있도록 돕고자 도입된 고교의 ‘진로 교육’은, 평가 및 선발과 결부되며 대학이 신입생을 선점하고 고교생에게 대학 전공을 ‘선행학습’하도록 떠넘기는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많은 학생들이 선발권을 쥔 교수의 눈에 들려고 생활기록부(생기부)의 ‘진로희망사항’란에 ‘연구자’를 적어 넣지만, 실제 졸업 후 전공을 살려 전업 연구자나 교수가 되는 숫자는 매우 적다. 그런데도 학생들은 종사하지 않을 진로를 위해 이해되지 않는 전공 논문과 보고서 구절을 복사해 생기부 분량을 늘려가며, 미래의 삶을 풍요롭게 할 기초 소양을 쌓기에도 모자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창용 총재의 발언 중 “고3이 어떻게 전공을 선택하겠냐, 교수들이 미리 학생을 확보하기 위함이다”라는 지적에 특히 동감한다.
결국 지금의 교육을 둘러싼 현실을 극복하려면 단순한 ‘좋은 말’ 수준을 넘어, 학생과 학부모 당사자의 고통을 중심으로 보다 다양하고 구체적인 담론이 오가는 공론장이 필요하다. 주장에 다 동의하는 건 아니라도, 논의의 장을 연다는 의미에서 기존 담론과 차별화되는 이 총재의 접근 방식 자체에 의미를 두고자 한다.
문호진 <수능 해킹>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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