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오소리감투가 둘인 조직은 망한다
우리나라에는 야생동물이 의외로 많이 산다. 눈에 잘 띄지 않을 뿐이지, 저마다 서식지에서 치열하게 살아간다. 오소리도 그중 하나다. 오소리의 이름은 다양하다. 한자말로는 토저(土猪)나 토웅(土熊)으로 불린다. 민간에선 ‘작은 곰’이란 의미에서 소웅(小熊)으로도 쓰지만, 이 말은 국어사전에 올라 있지는 않다.
오소리는 얼굴이 원뿔 모양이고, 다리가 짧고 굵은 것이 특징이다. 외형에서 강인함이 풍긴다. 이런 오소리의 고기와 기름은 오래전부터 식용이나 약용으로 쓰여 왔다. 그 효능이 <동의보감>에 실려 있기도 하다. 그런 탓에 오소리를 함부로 잡는 일이 많아 지금은 멸종위기종으로 보호하고 있다. 다만 정부의 허가를 받으면 가축으로 키울 수 있다.
예전엔 오소리의 털가죽으로 ‘벙거지’를 만들었다. ‘모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 널리 쓰이는 벙거지는 본래 조선시대 때 무관이 쓰던 모자의 일종이다. 당연히 품격 있고 귀한 모자다. 이를 가리키는 말이 ‘오소리감투’다.
순대 먹을 때 함께 나오거나 순댓국에 들어가기도 하는 오소리감투가 이 벙거지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돼지를 도축하면 나오는 부산물 중 위(胃)는 식감이 좋고 맛도 뛰어나다. 그래서 돼지를 잡을 때면 ‘누가 돼지 위를 먹느냐’를 두고 다툼이 벌어지기 일쑤였고, 그 모양새가 오소리 털가죽으로 만든 벙거지를 차지하려 싸우는 듯하다고 해 오소리감투로 불리게 됐다는 것이다. 마을에서 돼지 잡을 때 사람들이 슬쩍 빼돌리는 일이 많아 귀한 오소리감투만큼 보기 힘들다는 뜻에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다. 다만 민간에선 돼지의 위를 오소리감투로 부르는 일이 흔하지만, 그런 의미의 말로 국어사전에 올라 있진 않다.
한편 ‘오소리감투가 둘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어떤 일을 할 때 주관하는 이가 둘이어서 서로 다툼이 생기거나 일이 틀어지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생사가 오가는 전장에서 지휘관 둘이 각자 목소리를 높이면 병사들은 사지로 내몰리게 된다. 어느 조직이든 최고 감투를 쓴 사람이 둘이면 그 조직의 미래는 암담해진다.
엄민용 <당신은 우리말을 모른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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