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세상]섬집 아기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파도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한때 국민 자장가였던 ‘섬집 아기’는 가슴 저릿한 동요다. 1946년 발간된 한인현의 동시집 <민들레>에 수록된 동시로, 이흥렬이 곡을 붙였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읜 한인현이 고향 원산의 명사십리해수욕장을 떠올리면서 쓴 동시다. 가만가만 부르다 보면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남은 아기와 그 아기가 걱정되어 굴 바구니를 채우지 못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는 엄마의 애틋함이 가슴을 헤집는다. ‘모닥불’ ‘목마와 숙녀’ ‘방랑자’의 가수 박인희도 이 노래를 리메이크하여 불렀으며 이선희, 체리필터 등도 리메이크하면서 국민 자장가의 면모를 이어왔다.
함경남도 원산시에서 태어난 한인현(1921~1969)은 어린 시절부터 체육, 음악, 작문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함흥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가 됐다. 일제강점기, 하숙방에서 아이들에게 우리말과 동요를 가르쳤다. 일본 순사에게 발각되어 교직에서 쫓겨날 뻔했으나 일본인 교장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나기도 했다.
해방 이후 윤석중이 주도한 ‘노래 동무회’에 나가 어린이들에게 창작동요를 가르쳤다. 말년엔 교장 선생님으로 일하면서 전국초등학교빙상경기연맹 회장, 한국글짓기지도회 회장으로 활동했다. ‘민, 민들레는/ 꽃 중에도 장사 꽃/ 큰 바위에 눌려서도/ 봄바람만 불어오면/ 그 밑에서 피고 지는/ 꽃 중에도 장사 꽃’이라는 노랫말이 인상적인 ‘민들레’도 그의 작품이다.
더 이상 아기를 집에 혼자 두는 일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뜸한 시절이다.
오광수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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