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신부와 뛴 턱시도 신사, 10번째 완주한 82세
가을 춘천을 배경으로 다채로운 사연과 삶의 모습이 어우러진 건강한 축제. 27일 강원도 춘천에서 열린 2024 춘천마라톤 풍경이다. 결혼을 앞둔 예비 부부에서 82세 최고령 완주자까지 2만여 명 참가자들은 저마다 사연을 지니고 주로를 누볐다.
유승환(38)·이승미(32)씨는 12월 결혼식을 앞두고 결혼 전 특별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 각각 턱시도와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이날 모습을 드러냈다. 예복과 드레스에 편안한 운동화를 신고 나타나 출발선에서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단풍과 어우러진 주로를 달리는 동안 시민들과 다른 러너들에게 “결혼 축하해요!” “행복하게 잘 살아라!” 같은 응원을 받으며 힘을 얻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4시간 19분 55초 기록으로 나란히 풀코스 결승점을 통과했다. 예비 결혼식 같았다. 유씨는 “달리던 중 어떤 분이 ‘마라톤처럼 인생은 힘들지만 긴 행복’이라고 말씀해 주셨을 때 깊은 울림을 느꼈다”며 “예비 신부와 마라톤을 함께 완주해낸 것처럼 앞으로 인생도 함께 나아가며 행복을 쌓아가겠다고 다시 다짐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도 “오늘 대회가 42.195km의 긴 결혼식 행진 같다고 생각했다”며 “춘천에서 많은 사람들 축하를 받은 만큼 앞으로도 그 마음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운동을 좋아했던 두 사람은 7년 전 처음 만나 함께 자전거도 타고 마라톤도 하고 등산도 하면서 결혼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강원도 원주에서 온 좌혜지(34)씨는 아들 이서주(5)군을 유모차에 태우고 10km 코스를 달렸다. 모자(母子)는 알록달록한 공룡 옷을 입고 1시간 17초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좌씨는 “춘천마라톤에서 아이에게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을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했다. 회사원 조충훈(38)씨도 딸 조가윤(5)양을 유모차에 태우고 10km를 49분 34초 만에 주파했다. 조씨는 가윤양과 함께 이날까지 10km를 17번, 하프 마라톤을 1번 완주했다. 가윤양은 “오늘은 단풍이 정말 예뻤어요”라고 했고, 조씨도 “언덕이 많아 힘들었지만 풍경이 멋져서 가윤이가 지루해하지 않아 좋았다”고 했다. 유모차를 밀며 달리는 부모들과 아이들 모임인 ‘캥거루 크루’ 다른 회원들도 10km 코스에 참가했다.
서울에서 온 최고령 완주자 서평일(82)씨는 풀코스를 4시간53분56초 만에 완주했다. 자신의 10번째 춘천마라톤이다. 응원차 함께 온 아내와 딸 부부는 결승선에서 손뼉을 치며 그를 반겼다. 서씨는 이번 완주로 명예의 전당(풀코스 10회 이상 완주) 입성 자격을 얻었다. 서씨는 “춘천의 가을을 만끽하며 달린 오늘의 시간이 최고의 선물”이라며 “명예의 전당에 올라가 더 기쁘다”고 했다.
대한육상연맹 육현표 회장은 10km 부문에 참가해 51분 36초 만에 완주했다. 그는 “춘천마라톤을 뛰면서 노란 은행잎을 본 순간 진정한 가을이 시작됐다는 걸 느꼈다”며 “몸과 마음을 힐링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했다. 1시간 39초 기록으로 10km를 완주한 문성준 LS네트웍스 대표는 “달리기의 즐거움을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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