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전문의 서정열씨, 직장암 딛고 생애 첫 마라톤 풀코스 완주 성공
한림대학교 춘천성심병원 응급센터에서 근무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서정열(49)씨는 지난 2021년 직장암 판정을 받았다. 그 전에 이미 배에 압박감을 느끼고 혈변이 가끔 나오는 등 직장암 의심 증세가 있었지만, 바쁜 응급실 생활에 ‘아직 젊은데 치질이겠거니’ 안일하게 생각했다. “이미 암이 많이 자라서 직장을 뚫고 나왔더라고요. 중이 제 머리 못 깎은 거죠.” 위급 환자를 구하던 응급실 의사는 하루아침에 위급 환자가 됐다.
그리고 3여 년이 지난 27일 2024 춘천 마라톤에서 서씨는 생애 첫 마라톤 풀코스 완주에 도전했다. 출발선에 선 서씨는 “풀코스 도전은 처음이라 조금 긴장되고 설렌다”며 “이번 첫 풀코스 도전을 앞두고 28km까지는 연습을 했는데 30km 이후 구간은 어떤지 전혀 모르는 상태”라며 웃었다.
직장암은 운동과 담을 쌓고 살던 그의 인생을 덮쳤다. 1년간 항암과 수술을 반복하면서 고통스러운 치료 과정을 견뎌야 했다. 다행히 어느 정도 호전되먼서 1년 만인 지난 2022년 응급실 의사로 복귀했지만 전 같은 일상생활은 쉽지 않았다. 서씨는 “계속된 암 치료로 체력은 바닥났고 배변의 불편함과 항암 후유증 탓에 우울해졌다”고 전했다. “105kg였던 체중이 75kg까지 빠졌어요. 살은 물론 근육까지 쫙 빠져나갔죠. 항암제 탓에 손발 감각이 무뎌져서 땅에 뾰족한 걸 밟아도 느끼지 못했어요. 처음엔 (배변 조절이 쉽지 않아) 기저귀 차고 간신히 걸었죠.”
그러다 암 환자들이 모여있는 온라인 카페에서 힘을 얻었다. “직장암 환자 대부분이 고통과 우울함을 호소하는데, 그래도 열심히 이겨내며 사시는 분들 사연을 보니 힘이 좀 나더라고요.”
암 투병으로 엉망이 된 몸을 되살리기 위해 서씨는 무작정 체육관을 찾아갔다. 처음엔 운동기구 사이를 오가는 것조차 헉헉댔지만 조금씩 몸이 정상을 찾아갔다. 작년 봄 체육관 관장님이 날씨가 좋다며 “야외 수업을 가자”고 했다. 그러고는 “이제 뛰어도 되겠어요. 뛰어보시죠”라고 권했다. 두렵고 설레는 마음을 억누르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4km 정도를 뛰었다. “정말 힘들었지만 이렇게 뛸 수 있구나” 성취감이 몰려왔다. 그렇게 거리를 늘려가다 5km 마라톤을 거쳐 작년 춘천 마라톤에서 10km를 완주했다.
달리는 동안은 암에 대한 두려움도 잊을 수 있었다. 자신감이 붙자 35도 폭염에도, 영하 18도 추위에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서씨는 “최근 전공의들이 응급실을 비우면서 전문의들만 응급실을 지키다 보니 근무가 좀 더 힘들다”며 “그래도 일주일에 2~3번은 10km 정도 꼭 달린다”고 말했다. 계속 달리면서 음식 조절을 병행하니 이제는 기저귀 없이도 달릴 수 있게 됐다. 서씨는 “그래도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다. 예전에는 손발에 깁스를 한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붕대를 감고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체육관 동료 5명과 함께 이날 첫 풀코스 완주에 도전한 서씨는 4시간33분45초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30km까지는 잘 달렸는데, 그 이후부터 정말 힘들더라”며 “걷다가 뛰다가 하다 보니 결승선에 도착했다. 동료 중 1명은 먼저 결승선에 왔고 나머지 4명은 아직 들어오지 않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서씨는 “직장암 환자들은 사회생활이 힘들고 우울감에 집안에만 지내는 경우가 많은데, 저처럼 꾸준히 운동하면 일반인과 꼭 같진 않더라도 일상을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조심스럽게 말씀드리고 싶다”고 했다. “장인어른이 생전 직장암을 앓으신 후 배변 불편감 등으로 우울해 하시다 세상을 떠나셨어요. 마음이 아팠죠. 이렇게 달리기로 암과 싸우는 게 뭔가 환자들에게 작은 희망과 용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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