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m 구멍’으로 산양 떼죽음 막을 수 있나요
환경단체 “폭설 땐 구멍 안 보일 가능성 커…구간 개방해야”
환경부가 지난겨울 발생한 산양 떼죽음 재발을 막기 위해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울타리를 추가로 개방하기로 했다. 사후 약방문식의 뒤늦은 대책인 데다 개방되는 울타리가 극히 일부여서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환경부는 설악산국립공원 인근 미시령·한계령을 중심으로 ASF 차단울타리를 추가로 개방하고, 감시망도 확대한다고 27일 밝혔다.
환경부는 산양의 행동권을 고려해 총 23개 지점을 추가로 개방한다고 설명했다. 미시령 5곳, 한계령 5곳, 기타 11곳 등 기존 21개였던 개방 지점을 미시령 10곳, 한계령 23곳, 기타 11곳 등 44개 지점으로 늘리는 것이다. 환경부는 지난 5월부터 ASF 소강 지역인 인제, 양구 등 강원 북부지역 울타리 중 21개 지점을 개방해 생태계 영향을 조사 중이다. 각 지점마다 4m 길이의 철망을 제거하고, 2~3대의 무인동작카메라를 설치했다.
올 초부터 강원 민통선 지역에서 발생한 산양 떼죽음과 관련해 비판이 제기되자 뒤늦게 울타리를 추가 개방하는 것이지만 여전히 전체 울타리 길이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5월까지 폭설과 ASF 울타리 등의 영향으로 폐사하면서 국가유산청에 멸실 신고된 산양의 수는 1022개체나 된다.
환경단체들은 미시령 구간 약 880m당, 한계령 구간 약 950m당 1개 지점씩 4m 길이를 개방하는 것만으로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대체로 산양들은 겨울철 먹이가 부족해져 탈진에 가까운 상태에서 울타리에 접근하게 되는데, 눈이 많이 쌓인 상태에서 4m밖에 안 되는 구멍을 찾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파편화된 산양 서식지가 울타리 설치 이전처럼 서식지 기능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지난해와 같은 폭설이 또 내릴 경우 다시 떼죽음이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셈이다.
정인철 국립공원을지키는모임 사무국장은 “폭설이 오면 4m 길이의 구멍은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지친 산양들이 이 구멍을 찾아내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면서 “지점마다 4m씩을 개방한다는 현재 대책은 현장을 모르고 세운 탁상공론”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실질적인 개방 효과를 거두려면 현재와 같은 지점 단위가 아닌 구간 개방을 해야 한다”며 “서식지 파편화와 그로 인한 산양 등 야생 동물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대책은 여전히 전무한 상태”라고 말했다.
환경부가 산양 구조를 위해 순찰 횟수와 인력을 늘리고, 민관 협력을 통한 구호체계를 마련한 것은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겨울처럼 살릴 수 있던 산양도 죽도록 방치하는 사례는 다소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폭설이 내릴 경우 산양의 고립 및 동사를 방지하기 위한 쉼터를 새롭게 마련하고, 산양을 구조한 후 회복률 향상을 위해 집중치료실 9곳을 더 늘릴 계획이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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