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필수품목 협의제’ 무력화하는 가맹본부 계약서
법 시행 취지 무색…대폭 올려도 점주들은 ‘울며 겨자 먹기’ 불 보듯
가맹점의 필수품목 거래조건을 점주에게 불리하게 변경할 경우 가맹본부가 가맹점주와 협의 과정을 거치도록 하는 필수품목 협의제가 오는 12월 본격 시행된다. 이를 앞두고 일부 가맹본부가 배포한 계약서에 필수품목 공급가격을 크게 올릴 수 있는 조건이 포함돼 논란이 되고 있다. 일부 점주들은 계약서 내용에 동의하면 향후 협의 때 불리해질 수 있다며 서명을 거부하고 있다.
치킨 프랜차이즈 BHC치킨이 최근 점주들에게 보낸 가맹계약서 내용을 보면, 필수품목 공급가격을 변경할 경우 “인상폭은 기존 공급가격의 40%를 넘지 않도록 하는 수준에서 결정한다”고 돼 있다. 한 번에 최대 40%까지는 가격을 올릴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해 BHC치킨의 원부자재 공급가 인상률은 8.8%였다. 2021년 당시 필수품목 공급가 최대 인상률도 14.5%였다. 계약서에는 가격 책정 기준으로 직접제조가와 간접제조원가, 판관비, 가맹사업 운영에 필요한 기타 비용 등이 명시됐다. 또 “천재지변, 전쟁, 전염병의 창궐 등 ‘가맹본부’의 책임이 없는 사유로 인한 큰 폭의 가격 변동이 급작스럽게 발생할 시 기준을 따르지 않을 수 있다”는 단서조항도 달렸다.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버거킹도 지난 9월 새 계약서에서 총 89개 필수품목에 대해 직전 공급가격의 최대 15%를 넘지 않는 수준에서 인상폭을 정할 수 있도록 했다. 필수품목에는 패티·소스뿐 아니라 종이컵·커피홀더·쇼핑백 등도 포함됐다. 지난 6월 버거킹의 패티 등 주요 품목 공급가 인상률은 5% 수준이었다고 한다.
필수품목 협의제는 본부가 필수품목을 계약서에 명시하고, 거래조건을 불리하게 바꿀 때 점주들과 협의하도록 한다. 앞서 본부가 일방적으로 필수품목 가격을 올리는 등 갑질 피해가 반복된다는 지적이 나오자 정부는 필수품목 협의제를 반영한 가맹사업법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했다. 지난 5월 차관회의를 통과해 연말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본부가 내놓은 계약서에 공급가 인상 상한선이 지나치게 높게 설정돼 사실상 제도 취지가 무력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BHC치킨 점주 A씨는 “40%는 상한선으로는 의미가 없는 수치”라며 “법 취지는 과도한 필수품목 가격 인상을 막는 것인데, 계약서 내용은 본래 취지와 거리가 멀다”고 했다.
새 계약서에 동의하면 추후 협의 과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걱정도 나온다. A씨는 “계약서에 동의하면 40% 인상에 동의하는 것처럼 간주될 수 있다”며 “향후 협상을 대비한 꼼수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버거킹 점주 B씨는 “법에는 가격을 협의하라고 돼 있는데 본사에서 ‘당신들에게 계약서 내용으로 통보했고, 거기에 동의했으니 가격을 올리겠다’고 하면 할 말이 없지 않나”라고 했다.
BHC치킨 관계자는 “40%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 특수한 상황을 감안해 잡아놓은 수치”라면서 “실제로 그렇게 올리겠다는 뜻이 아니며, 통상 인상률은 한 자릿수 수준이었다”고 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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