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광역화 키워드는 ‘분권’…정부 의지 보일 때

성현철 전 언론인·국제학 박사 2024. 10. 27.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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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철 전 언론인·국제학 박사

프랑스에 ‘레지옹’이라는 행정구역이 있다. 우리의 도(道) 단위에 해당하는 ‘데파르트망’을 여러 개 합친 초광역 자치단체다. 인구 500만 명에 달한다. 지자체들 간 연합 혹은 통합 기구가 아닌 일반 행정기구다. 중앙집권국가인 영국은 ‘CA(Combined Authority, 광역연합)’라고 하는 초광역 기구를 구축했다.

프랑스와 영국 초광역 기구의 공통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정부가 주도했다는 점이다. 프랑스 레지옹은 1964년 자치단체들 간 협의회로 출발, 지방자치단체(1982년)에 이어 헌법적 지위(2003년 헌법에 명시)를 얻기까지 정부가 통합을 주도했다. 영국 역시 정부가 재정과 권한을 매개로 자치단체들 간 ‘합종연횡’을 견인했다.

두 번째 공통점이 ‘분권’이다. 프랑스는 1982년 법 개정을 통해 지방분권을 전면 실시했다. 정부의 지방정부 통제권이 사라졌다. 레지옹은 법 개정과 함께 초광역 지자체가 됐다. 영국도 2016년 정부가 분권법을 제정해 CA가 초광역기구로 자리 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초광역권 구상은 정부가 의지를 갖고 추진하되 반드시 분권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두 사례는 보여주고 있다. 광역화와 분권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들이 광역화를 추진하는 이유는 역량을 가진 지역이 ‘소국가’처럼 세계와 직접 교류하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세계화 시대의 모토가 곧 ‘광역화’와 ‘분권’인 셈이다.

지난주 대구 경북(TK)이 정부 중재로 행정통합에 합의했다. 정부는 합의안을 조율한 것은 물론 추후 행정적, 재정적 지원도 약속했다. ‘대구경북특별시’라는 이름으로 서울특별시에 준하는 위상을 설정한다는 문구도 들어있다. 2026년 7월 출범이 목표라고 합의서에 명기했다.

이번 합의가 놀라운 것은 정부가 권한이양 등을 약속하면서 적극 나섰다는 점이다. 물론 우리 정부도 지난 2022년 지방자치법 제199조를 개정, 광역지자체 간 연합 혹은 통합이 가능토록했다. 하지만 분권이 진척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적극성은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2022년 부산 울산 경남 등 동남권이 추진했던 ‘부울경광역연합’이 무산됐을 당시 정부는 나서지 않았다. 부산시민에게는 3개 시·도의회가 규약안을 통과시키는 등 출범 직전까지 갔다가 무산된 뼈아픈 기억이 남아있다. 정부가 강건너 불구경하듯 했던 사실도 함께….

이번 대구 경북 사례를 보면서 필자는 기대감과 의구심을 동시에 느꼈다. 정부가 적극 나선 점은 기대감을 갖게 했다. 하지만 정부를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까. 과거 정부가 분권 문제에 적극성을 보인 적이 있는가. 오죽하면 ‘지방식민지’ 혹은 ‘서울공화국’이란 말이 나왔을까. 그래서 이번 통합 움직임도 정치적 제스처는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다행히 부산 경남도 행정통합 작업을 본격화 하고 있다. 부울경 광역연합 무산의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섰다는 점에서 반갑다. 박형준 부산시장과 박완수 경남도지사는 내달 중 창원에서 만나 행정통합 기본구상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때 공론화위원회 출범을 예정하고 있다. 시민사회의 동참을 유도하겠다는 의지일 것이다. 부산시는 특히 ‘연방제에 준하는 과감한 권한 및 재정권 이양’을 강조하고 있다.

한 걸음 늦더라도 제대로 추진하는 게 중요하다. 이번에는 방향을 제대로 잡은 듯한 느낌이다. 울산은 추후 점진적으로 동참하면 될 터.

대구 경북 행정통합이 급물살을 타면서 부산 경남은 물론 충청권 호남권 등에서 초광역기구 통합 작업도 빨라질 가능성이 커졌다. 문제는 정부의 스탠스다.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의미는 반감될 것이다. 초광역권에 행정 재정 등 중앙 권한의 대폭 이양이 핵심이란 얘기다.


우리는 수천년 간 중앙집권 국가로 존재해 왔다. 수도권 중심적 사고가 굳어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세계사의 흐름은 지역을 키워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광역화의 키워드는 분권이다. 이젠 중앙정부가 진심으로 지역에 힘을 실어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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