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칼럼] 수산분야 기후변화 대응 왜 늦어졌는가?
기후변화에 경직된 관료 조직은 상극이다. 유학을 마치고 2006년 귀국해 부산 기장에 있는 국립수산과학원(수과원) 연근해자원과 해양수산 연구사로 첫 직장 근무를 시작했다. 몇 달쯤 지나 그 동안 연구해온 것 세미나 발표를 한번 해보라고 해서 지난 40년 동안 측정한 우리나라 연근해 수온과 기상청에서 100년 동안 측정한 전국 기온과 강수량 자료를 정리하여 발표를 했는데 언론에도 보도됐다. (국제신문 2007년 2월 15일 자 ‘38년간 1.31도 올랐다’ 제하 기사)
발표를 마치고 몇몇 연구자는 수산학을 전공하면서 왜 기후변화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해양환경과로 근무부서를 옮기는 것이 낫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미 유럽과 북미에서는 1990년대부터 어업을 다루는 수산학에서 기후변화가 가장 뜨거운 주제인데 이 사람들은 우물안 개구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산학을 생물학의 한 분야로만 여기는 듯 했다.
사실 어업을 다루는 ‘수산’과 기후로 대표되는 ‘해양’ 사이에 대립은 20세기 초 수산학이라는 학문이 처음 생겨날 무렵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 생물학자 토마스 헉슬리는 ‘모든 위대한 어업은 무한하다’고 주장한 반면, 같은 시대 에드윈 레이 랭캐스터는 ‘물고기를 너무 많이 잡으면 자연 균형이 깨질 수 있다’고 보았다. 19세기 말부터 정어리나 넙치가 갑자기 잡히지 않게 되면서 북유럽 각 나라 과학자들은 국제해양탐사협의회(ICES)를 만들어 물고기 풍흉 원인을 연구했다. 어업을 강조하는 ‘남획’ 가설, 그리고 바다 환경 변화 때문에 물고기 새끼들이 제대로 살아남지 못해서 그렇다는 ‘기후’ 가설인데, 이 둘 대립은 지금도 남아 있다.
인공위성과 인터넷으로 전 세계에서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된 1990년대부터 비로소 기후변화를 제대로 연구하고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전에는 각 나라 해역에서 좁은 시각으로 물고기 생물학과 지역 어업 활동만을 다루는 ‘수산자원평가’는 지구 규모 환경 변화를 고려할 수 없었기에 지난 100년 넘게 풍흉 원인을 어업활동, 즉 ‘남획’ 탓으로 돌릴 수 밖에 없어 어업규제에만 치중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기후 위기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초미 관심사이다. 수산정책도 여기에 맞추어 ‘남획’에서 ‘기후변화’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는데 수과원은 노가리 남획 때문에 동해에서 명태가 사라졌다면서 수산업 분야 기후변화 대응을 짧게는 10년, 길게는 30년이나 지체시켰다.
그럼 왜 수과원과 해수부는 기후변화를 애써 무시하려고 했는가? 한마디로 요약하면 ‘부처 이기주의’ 때문이다. 연근해자원과에서는 기후변화를 강조하게 되면 주도권을 해양환경과에 뺏길 것이라고 보았다. 해수부에는 지난 수십년 동안 남획과 관련하여 수산자원조성, 감척, 총허용어획량(TAC)과 같은 연간 예산이 1000억 원 이상인 큰 사업을 기획재정부로부터 쉽게 받아올 수 있었는데, 막상 새롭게 등장한 기후변화 관련해서는 지식이나 아이디어가 거의 전무했기에 변화를 거부해왔다. 국회에서 지적을 몇 차례 받고 기후변화가 국민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자, 수과원은 마지못해 지난해 기후변화 대응 조직으로 개편했고 해수부는 수산 기후변화 대응 TF를 만든다고 올해 발표했다.
우리는 해수부라는 한 지붕 아래 해양과 수산이라는 두 가족이 따로 지내고 있지만, 중국과 일본은 수산과 해양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가 아예 다르다. 이 때문에 한·중·일은 수산과 해양이 서로 협력하지 못하고 대립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유럽이나 북미에서는 전통적으로 수산과 해양 분야 협력 체계가 잘 갖추어져 기후변화에 빨리 대응해 올 수 있었다. 유럽 국제해양탐사협의회(ICES)와 미국 국립해양대기국(NOAA)이 대표적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해수부와 수과원은 수산과 해양 사이 벽을 허물어 협력 체계를 마련해야 기후 위기에 빨리 대응할 수 있다. 부처 이기주의로 변화를 계속 거부할 수 밖에 없는 공무원 조직이라면 민영화를 검토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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