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로제의 아파트

이명희 기자 2024. 10. 27.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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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핑크 멤버 로제가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 함께 부른 노래 ‘APT.’ 뮤직비디오. 두 사람이 손바닥을 올려가며 ‘아파트’ 게임을 하고 있다, 뮤직비디오 캡처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블랙핑크 멤버 로제가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 함께 부른 노래 ‘아파트’(APT.)가 전 세계를 흔들고 있다. 국내외 주요 음악 차트 상위권을 차지하더니, 뮤직비디오는 지난 18일 공개 5일 만에 유튜브 조회수 1억뷰를 기록했다.

로제는 이 노래를 한국에서 유행했던 술자리 게임 ‘아파트’에서 착안해 만들었다고 한다. 뮤직비디오에서도 로제와 마스는 이 게임을 재현한다. 마스가 양손에 태극기를 들고 우리말로 ‘건배’를 외치는 모습은 국내 팬들 사이 화제가 됐다.

노래 흥행으로 한국식 영어 표현인 ‘아파트’ 단어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소셜미디어에선 아파트가 ‘아파트먼트’(apartment)를 뜻하는 말인 줄 모르는 외국인들이 한국어 발음 ‘아파트(AP-A-TEU)’를 그대로 따라 하는 영상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덩달아 윤수일이 부른 ‘아파트’까지 인기다. 1982년 발표된 이 노래 음원에는 “아파트 42년 만에 재건축 축하합니다” 등 댓글이 달리고 있다.

한국 국민 절반이 사는 아파트는 고대 로마 대지주들이 서민에 임대하기 위해 지은 ‘인슐라’가 그 기원이다. 지금도 유럽·미국 등에서 아파트는 서민주택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했던가. 서구의 대단지 아파트 모델이 실패로 귀결된 반면, 한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아파트 사랑이 대단하다. 아파트가 ‘나’를 드러내는 수단이 되면서, “어디 사세요?”는 조심스러운 질문이 됐다. 그래서 현재를 담보로 너도나도 아파트를 산다. 아파트 건설로 삶의 터전을 잃은 도시빈민을 다룬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작가는 2008년 발간 30주년 인터뷰에서 “30년 뒤에도 읽힐 거라곤 상상 못했지”라고 했다.

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K콘텐츠는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상처를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 공감을 얻는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나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도 그 범주에 속한다. 로제의 SNS에는 아파트 주거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아파트먼트?”라는 외국 팬들의 질문이 올라온다고 한다. 로제의 노래가 세계인들이 한국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또 다른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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