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배움터 싹 자른 도의회 [서울 말고]

한겨레 2024. 10. 27.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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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서는 죽어가는 불을 살리겠다는데 다른 쪽에서는 불씨를 발로 밟고 물바가지를 끼얹는 격이다.

황온숙(무지개숲마을배움터 대표)씨는 "산청군 마을배움터는 4년 차로 이제 안정적으로 정착되는 시기인데 조례 폐지로 모든 게 불확실해졌다"며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다. 건강한 어린이, 건강한 청소년이 지역의 비전이다. 지역을 지킨다는 시민의식을 갖고 다음 세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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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의회가 지난 15일 조례정비 특위회의, 제418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를 각각 열어 ‘마을교육공동체 활성화 지원조례 폐지 조례안’을 심의하는 가운데 교육·시민단체가 도의회 앞에서 조례안 폐지 찬반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권영란 | ‘지역쓰담’ 대표

한쪽에서는 죽어가는 불을 살리겠다는데 다른 쪽에서는 불씨를 발로 밟고 물바가지를 끼얹는 격이다. 어떡하든 내가 살아가는 지역을 살리고 미래세대인 아이들과 지속가능한 삶을 찾으려는 동력을 꺾다니, 경남도의회가 자충수를 뒀다 싶다.

지난 15일 경남도의회는 ‘경남마을교육공동체 활성화 지원에 관한 조례’에 대한 폐지안을 가결했다. 재적 도의원 64명 중 찬성 46명, 반대 5명, 기권 11명. 조례로 운영되는 각 시군의 마을배움터와 마을교사 활동이 정치적으로 편향된데다 운영이 부실하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2021년 7월 제정해 3년 만에 없어진 셈이다. 경남도는 전국 최초로 이 조례를 폐지한 광역자치단체가 됐다.

마을교육공동체 활성화 지원 조례는 평생교육법과 청소년 기본법에 따라 학교·마을·교육청·지자체 등 지역사회가 연대·협력을 통해 교육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취지로 제정됐다. 경남만이 아니라 현재 전국 43곳 광역·기초자치단체가 조례를 두고 있으며 조례에 근거해 마을교육공동체 지원, 미래교육지구 지정, 행복마을학교 설치, 교육협동조합 지원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 경남에서는 2021년 조례 제정 후 ‘미래교육지구’라는 사업명으로 경남 18개 시군 곳곳에 마을배움터가 운영됐다.

마을배움터가 어떤 곳이냐고? 한마디로 아이와 어른이 마을 주민으로 함께 성장하는 배움터이다. 주민들이 나서서 지역과 학생들에 맞춤한 주제와 교육과정을 만들고 전문성과 자격을 갖춘 주민들이 해당 지역 교육청에 마을교사로 등록한 뒤 마을 아이들은 물론 지역 초중고 학생들과 다양한 교육연계 활동을 펼치는 배움터이다. 그 결과 경남 미래교육지구 마을배움터는 254곳, 마을교사는 어림잡아 2000명가량이다. 예산은 도교육청과 시군이 일대일로 분담해왔는데 각각의 마을배움터에는 최소한의 재료비, 참여 학생의 간식비, 강사비 정도가 지원됐다. 마을교사 강사비는 지난해 시간당 3만원에서 올해는 4만원이었다.

몇달 전 내가 이사 온 경남 산청군은 천왕봉미래교육지구로 마을배움터가 5곳, 마을교사가 30여명이다. 황온숙(무지개숲마을배움터 대표)씨는 “산청군 마을배움터는 4년 차로 이제 안정적으로 정착되는 시기인데 조례 폐지로 모든 게 불확실해졌다”며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다. 건강한 어린이, 건강한 청소년이 지역의 비전이다. 지역을 지킨다는 시민의식을 갖고 다음 세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겼다”고 말했다.

경남 진주시 마을배움터는 18곳. 배움터별로 토박이말 익히기, 숲놀이, 마을신문 만들기, 마을탐험 등 주제 활동이 다양하다. 초등 6학년 학부모 양미선(달샘그림책방)씨는 “마을교사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아이들의 ‘어른 친구’가 된다. 마을배움터는 학원과 편의점밖에 갈 일이 없는 아이들에게 ‘갈 데’가 되어줬고 아이들에게 마을과 지역 자원에 대한 이해를 넓혀 줬다”고 말했다.

마을배움터가 있어 아이와 어른이 한자리에 모이고 ‘사람 사는 마을’이 되고 있었다. 시골은 시골대로 도시는 도시대로 마을배움터가 절실했다. 틈틈이 지켜본 내 눈에는 민관 협치의 주민자치 활동으로 이만한 게 있을까 싶었다. 나아가 지역사회를 잇는 촘촘한 연결망이 되겠다 싶었다. 경남도의회가 조례안 폐지 결정 이전에 18개 시군 마을배움터 활동을 조금이라도 살펴보고 마을교사들을 직접 만났더라면 ‘정치적 편향성’이라는 전근대적인 이유를 들먹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도의회가 마을공동체와 주민자치의 싹을 잘랐다, 지역을 죽이고 있다는 원성을 듣지 않았을 것이다.

마을배움터가 지역소멸지수가 아닌 ‘지역희망지수’를 높이는 사람 사업이며 미래 사업으로 커나갈 수 있는 희망이, 꺾였다. 경남도의회는 각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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