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억 횡령 막는데 포상금 고작 3억’…은행, 내부고발제도 유명무실

김나경 2024. 10. 27.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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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고발 최고 포상 3~10억…사고 막기엔 '새발의 피'
내부고발 의무 규정 없고, 제보자 보호장치도 '역부족'
"불이익 감수하고 옆자리 동료 고발하나" 제도 형해화

[이데일리 김나경 기자] 은행권 내부통제 핵심인 ‘내부고발’ 제도가 유명무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백억원 횡령사고를 막는다 해도 최고 포상금액이 3억~10억원인 데다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호 장치 또한 미흡하기 때문이다. 암묵적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내부고발을 하기는 쉽지 않은 셈이다. 금융사고 예방을 위해 내부고발 인센티브를 늘리고 제보자를 체계적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銀 내부고발 인센티브, 금융사고 막기엔 ‘새발의 피’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 직원이 내부고발을 통해 금융사고를 예방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최대 포상금액은 3억~10억원 수준이다. 농협은행의 최대 포상금액이 3억원으로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 농협) 중 가장 적었다. 국민·하나·우리은행의 포상금 상한선은 10억원이다. 신한은행은 현재 5억원인데 앞으로 포상금 상한선을 20억원까지 상향할 계획이다.

각 은행은 최대 포상금액을 포함해 내부고발에 대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신한지킴이’, 국민은행과 농협은행은 각각 ‘올바른제보제도’ ‘레드 휘슬’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하나은행은 ‘내부직원 고발 및 고발자 보호에 관한 규정’을 마련해 시행 중이고, 우리은행 또한 내부자 신고와 관련해 은행 내규에 지침을 반영하고 있다.

외형을 갖추고 있지만 디테일은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으로 내부고발 포상금액은 얼핏 보면 ‘억소리’ 나는 인센티브지만 수령하기까지는 첩첩산중이다. 내부고발로 금융사고를 예방한 인과관계를 입증해야하고 금액 산정까지도 절차가 복잡하다.

통상 은행은 금융사고 발생에 따른 손실 규모를 고려해 포상금액을 산정한다. 하지만 내부고발이 금융사고 예방에 얼마나 이바지했는지 산정하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 은행 내규 또한 포상금액 상한선을 정하고 있을 뿐 인센티브 제공을 의무화한 것은 아니다.

실제 금융사고에 따른 피해 규모와 비교해봐도 포상금액은 미미한 수준이다. 지난해 적발한 BNK경남은행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관련 횡령사고는 규모가 총 3089억에 달했다. 우리은행은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 친인척 관련 대출 중 350억원이 부당대출인 것으로 나타났고 농협은행에서는 부동산담보 부풀리기와 임직원 횡령으로 대출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 최근 5년간 은행권에서 내부횡령 등으로 발생한 손실만 2334억원으로 집계됐다. 은행 직원이 내부고발로 사고를 막을 때는 최대 수억원을 받을 수 있어 ‘새발의 피’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시내의 주요 은행 ATM 기기 모습. (사진=연합뉴스 )
불이익 감수하고 ‘동료’ 제보 어려워…보호장치도 미흡

더 큰 문제는 직원들이 동료의 이상행동을 포착해 신고해도 보호받지 못하는 점이다. 우선 직원이 동료의 일탈을 감지해 금융사고 징조를 읽었다고 해도 언제 어떻게 제보를 해야 하는지 의무화하는 규정은 없다. 일부 은행만 “임직원은 금융사고 사항을 발견하거나 직·간접적으로 제의를 받는 경우 그 사실을 즉시 고발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은행 홈페이지, 모바일 웹 등 내부고발을 할 수 있는 통로 또한 제한적이다.

내부고발자에 대해서는 “인사상 불이익을 줘서는 안된다”는 선언적 조항만 있어 회사 내 암묵적 불이익을 피하기 어렵다. 하나은행 정도만 “내부고발 담당 부서 직원 등은 고발 내용을 타인에게 제공하거나 누설해서는 안 된다. 이를 어겼을 때 내규에 따라 징계할 수 있다”는 비밀유지 조항을 마련하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내부고발 제도가 임직원 개인 일탈에 따른 금융사고를 예방하는 데 상당히 효과적인 수단이다. 은행원의 이상징후를 가장 잘 읽을 수 있는 게 매일 같이 일하는 옆자리 동료다”며 “다만 제보자에 대한 인센티브나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이상 ‘내 동료’를 제보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런 조직문화나 분위기도 아직 정착되지 못했다”고 했다.

금융당국에서도 내부통제 강화를 위해 ‘조직문화 개선’을 강조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7월 은행권 내부통제 워크숍에서 “내부통제 절차나 사고예방 장치를 마련했어도 건전한 조직문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내부통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며 조직문화 관리·점검을 위한 감독수단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이 영업점 점포와 직원을 줄이는 과정에서 이전과 같은 상호견제 분위기가 약해질 수 있다”며 “임직원 간 건전한 견제감시를 통해서 조직 내 금융사고 예방 시스템이 작동돼야 한다. 그것이 내부통제가 잘 되는 조직문화의 핵심이다”고 말했다.

김나경 (givean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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