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공간 점령한 100만 집회 … 행인·관광객 "차라리 귀 막자"

차창희 기자(charming91@mk.co.kr), 지혜진 기자(ji.hyejin@mk.co.kr) 2024. 10. 27.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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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여의도 종교집회에
세종대로 6개 차선 통제
시내 간선도로 극심한 정체
나들이 시민들 불편 호소
규제 피해 고성·합창 반복
잇단 소음에 관광객 '눈살'
27일 서울 세종대로 일대에서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가 열리고 있다. 이날 집회는 여의도에서도 동시에 열렸다. 김호영 기자

관광 목적으로 한국을 찾았다는 베네수엘라 국적의 소르나 씨(24)는 27일 서울 광화문광장의 이순신 장군 동상을 구경하던 중 재빨리 이어폰을 착용해 귀를 막았다. 수십만 명의 인파가 몰린 광화문광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집회 소음에 귀가 아팠기 때문이다. 소르나 씨는 "처음엔 지역 축제인 줄 알았는데 경찰에게 물어보니 집회라고 했다"며 "소리가 너무 시끄럽고 제대로 걷기도 힘들어서 관광에 집중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광화문광장으로 주말 나들이를 나온 황지연 씨(46)는 주변에서 함성처럼 들려오는 '할렐루야' '아멘' 소리에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주말 시민의 광장을 종교단체에 뺏긴 것 같아 안타깝다"며 "종교가 없거나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에게는 불편한 모습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올해 처음으로 서울 도심에서 100만 인파의 대규모 집회가 열리면서 휴식이나 업무를 위해 시내를 찾은 시민들이 피로감을 호소했다. 특히 집회 개최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도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주말마다 열리는 대규모 집회에 도심 교통 체증과 소음 공해가 유발되면서 광장을 다시 시민에게 돌려주기 위한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부터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 조직위원회'가 주최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집회로 인해 광화문, 여의도 등 서울 주요 도심의 교통이 통제됐다. 이번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약 100만명이 모였다. 부산, 강원 등 전국 각지에서 모인 참가자들은 실시간 예배 모습을 대형 스크린에 띄워놓고 찬송가를 열창했다.

이날 집회는 오후 2시에 시작됐지만, 이른 새벽부터 무대를 설치하면서 주말 내내 광화문 일대의 교통이 통제됐다. 왕복 8차로인 세종대로는 경찰 통제하에 2개 차로만 통행이 허용됐다. 이 여파로 을지로, 서소문로, 사직로, 율곡로 등 주요 간선도로에서 극심한 차량 정체가 발생했다.

한 모씨(45)는 "교통 통제로 차들이 사거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서 난장판이 됐다"며 사고 발생 위험을 지적했다. 교통 통제를 담당하던 경찰은 "버스나 차량들이 혼잡 구역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집회가 시작된 이후로는 정상적으로 도보를 걸어 다니기 어려웠다. 집회 참석자들이 도로뿐만 아니라 광화문광장 자리도 선점해 이동하는 시민들이 불편함을 호소했다. 특히 사전에 집회 관련 정보를 인지하지 못한 외국인 관광객들은 경복궁과 덕수궁, 숭례문 등 주요 관광지의 이동 경로가 집회로 인해 가로막히자 불편함을 호소했다.

이날 집회는 국회가 위치한 여의도에서도 진행돼 나들이로 여의도공원을 찾은 시민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경기도 광명시에서 나들이를 온 이필우 씨(55)는 "평소에는 30분 만에 오는 길인데 오늘은 1시간 30분이 걸렸다"며 "2주 전에도 신천지 집회로 여의대로가 점거돼 불편했는데 자꾸 대규모 종교 집회가 열려 일반 시민들의 불편함이 너무 커지고 있다"고 불만을 내비쳤다.

이날 집회장 곳곳에서 경찰은 '집회 소음 측정 중'이라고 안내하며 집회 측에 과도한 소음을 자제할 것을 요구했다. 이번 집회 지역의 소음 기준은 10분간 발생한 소음의 평균값(등가 소음)이 70데시벨(㏈)을 넘으면 안 되고 측정 시간 내 발생한 가장 높은 소음(최고 소음)은 90㏈을 넘어서는 안 된다. 등가 소음은 한 번, 최고 소음은 1시간에 3회 이상 기준을 초과하면 소음 기준을 위반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집회 주최자들은 이런 경찰의 기준을 무력화하며 소음 집회를 이어갔다. 경찰이 소음을 측정하는 10분 중 5분만 큰소리를 내고 나머지 5분은 음량을 줄이는 식으로 규제를 피한 것이다. 하지만 시민들의 불편함은 피해 갈 수 없었다. 최고 소음 기준인 90㏈ 안팎을 유지하는 선에서 고성과 합창이 지속적으로 반복되자 스피커 인근을 지나가는 시민들은 소음이 불편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린 채 귀를 막는 모습을 종종 보였다.

시민들의 불편함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기온 강하에도 불구하고 서울 도심의 대규모 집회는 연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다음달 2일에 더불어민주당이 김건희 여사 규탄 장외 집회를 예고했고, 9일에는 양대 노총이 숭례문 인근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연다.

[차창희 기자 / 지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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