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떠난 뒤 다시 갔다, 요나고 [양희은의 어떤 날]

한겨레 2024. 10. 27. 15:5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김예원

양희은 | 가수

작은 시골 항구인 요나고까지 직항이 다시 열렸다. 나는 거침없이 휴가를 신청해 그곳을 향했다.

요나고! 2015년 말 추운 겨울 엄마는 공항으로 가는 귀국길 택시 안에서 심부전증으로 그만 기함을 하셨고 느닷없이 119를 타고 돗토리대학부속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셨다. 그때 이미 공항에 도착한 희경이를 불러 둘이 함께 긴긴 하루를 견뎠다. 황망하고 황당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양력 1월1일을 큰 명절로, 기나긴 휴가로 보내는 일본에서 머물 방도 없었고, 심지어 내 짐을 막내가 다 싣고 가는 바람에 허리에 찬 가방 안에 카드, 여권, 휴대폰, 약간의 현찰이 전부였다. 더 중요한 건 어디에도 우리가 머물 방이 없다는 사실이었고, 긴박한 통화 끝에 여행사의 도움으로 2~3일 머물 방은 해결됐다.

돗토리대학부속병원이 심장내과로 유명하다고 문화방송(MBC) 일본통 피디로부터 듣고 안심을 했지만 그 밤 우리가 잠인들 잤겠는가? 이튿날 아침 식물인간이 된 엄마를 보게 되면 어쩌지? 우리를 알아보시기나 할까? 걱정이 태산이었다. 거의 밤새운 푸석한 얼굴로 사방이 통유리인 중환자실 앞에서 줄줄이 관을 연결한 엄마를 보니 환히 웃으며 우리에게 손을 흔드셨다. 여러 상황에도 불구하고 모든 게 고마웠다. 의사는 그간 복용한 약의 처방전을 부탁했고, 다시 한번 여행사의 긴밀한 협조로 처음 뵙는 여행객으로부터 큰 조카가 건네준 처방전을 공항에서 받았다. 더욱이 그날 희경이를 알아본, 우연히 만난 복미씨는 우리에게 천사였다. 갈아입을 옷도 사고 빨래를 하게끔 집으로 불러 그 댁 모친이 차려주신 밥상을 받았는데 평생 잊지 못할 최고의 음식이었다. 마음이 깃든 음식이 영혼을 어루만질 수 있다는 걸 처음 배웠다.

엄마의 회복과 더불어 복미씨 모녀 분을 서울서 만나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꽃이 피었는데 워낙 활기차셨고 웃음이 많으셨다. 어느 해 손자 둘까지 함께한 수산시장에서의 저녁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집으로도 모셔서 그해 겨울의 이야기를 했었다. 낯설고 아는 이 하나 없는, 의지가지없던 그때 죽어도 못 잊을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잊을 수가 없는 분들이다.

살다가 어떤 일이 닥칠지 누가 알겠는가? 마음 먹었을 때 찾아뵙기로 나선 길, 10월의 요나고행 휴가는 잘한 일이다. 이제는 누군가의 안부가 궁금하면 생각만 할 게 아니라 그냥 나서서 만나야겠다. 울릉도산 돌미역과 부지깽이 등 갖가지 말린 나물, 들기름, 참기름, 볶은 참깨 등을 그분을 위해 꾸렸다. 워낙 나물 채취도 철철이 하시는 분이라 우리 것을 제일 좋아하실 것 같았다. 80대 중반이시지만 말씀하시는 기운, 씩씩한 웃음, 화사함이 여전하셨다. 치아가 안 좋아 부드러운 것만 드시고 이젠 매운 것도 별로란다. 몇해 전 생신 때 모시고 갔는데 좋아하셨다는 식당을 예약해 복미씨 모녀와 나, 셋이서 맛난 정식을 먹었다. “내 눈에 선하게 집안이 보이니까 (가봤으니까) 어머님을 못 뵈었어도 마음으로 그려볼 수 있어요.” 그 댁 마당의 채소들, 미니 비닐하우스도 안녕해 보였다. “올여름 더위에 텃밭 채소들이 녹아버릴 정도였지만 그래도 잘 버텨서 웬만한 건 집마당에서 다 얻어먹었어요.”

하룻밤 자고 이튿날 아침 우리 엄마가 좋아하시던 시마네현 오다시의 군겐도(일본 산골마을 생활용품 기업)로 향했다. 바다, 산, 노랗게 물든 황금벌판, 파란 하늘에 숨이 트이면서 가슴이 시원해졌다. 오다시의 가을, 특히 군겐도 안에도 가을이 내려앉았다. 그곳의 생활소품에도 다 여름이 지나고 있었다. 창업자 마쓰바 도미 부부의 우직한 옛것 살리기 덕에 한 마을이 살아나고, 떠났던 이들이 마을로 돌아오면서 확실한 주관이 트렌드화 되었달까? 이미 비행기 안에서 ‘우리는 군겐도에 삽니다’ 책을 다 읽었고 이번이 세번째 방문이지만 몇년 사이에 마을에 활기가 가득 차 보였다. 음습하고 추운 겨울 엄마와 조카딸까지 3대에 걸친 다섯 여자의 겨울 여행을 추억하며, 엄마 대신 많은 것을 눈과 마음에 담고 돌아왔다. 떡을 엄청 좋아하시는 복미씨 모친께 겨울엔 상할 걱정 없으니, 떡 가득 해서 다시 찾아뵙겠단 약속을 했다. 그때는 희경이도 같이 와야지. 내 마음 속 아직도 떠나보내지 못한, 엄마가 좋아하셨던 것들이며 서른다섯에 혼자된 외로움을 안아드린 여행이기도 했다. 그 겨울 의사의 허락 하에 귀국이 결정되던 날, 엄마가 앉아 쉬던 복미씨네 부엌도 시절 따라 멋진 입식으로 바뀌었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