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P '해리스 지지' 킬한 베이조스…美대선판 낀 갑부들 역풍

권수현 2024. 10. 27.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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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유력지 워싱턴포스트 안팎서 거센 반발…편집인 사퇴 선언
머스크엔 '알고보니 불법이민자 출신' 폭로…1990년대 체류자격 없이 창업
머스크, 트럼프 피격 현장유세에 첫 찬조 연설…방방 뛰며 열기 달궈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세계 최고 부자로 손꼽히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아마존 창업자이자 제프 베이조스가 내달 5일 미국 대선을 앞두고 영향력을 행사하다 거센 역풍을 맞았다.

베이조스는 자신이 소유한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에 입김을 행사해 그간 이어지던 전통을 깨고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지지 사설을 '킬'(kill·삭제)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앞서 WP의 편집인이자 CEO인 윌리엄 루이스는 25일(현지시간) 독자들에게 쓴 글을 통해 이번 대선부터 특정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1976년 이후 1988년 대선을 제외하고는 모든 대선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WP는 같은 날 별도 기사를 통해 기자 두 명이 해리스 후보 지지를 선언하는 사설 초안을 작성했으나 이를 게시하지 않았다면서 "그 결정은 사주인 아마존 창업자 베이조스가 내렸다"고 밝혔다.

루이스 CEO는 이에 성명을 내고 "WP 소유주와 대통령 지지 선언을 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둘러싼 보도는 부정확했다. 그(베이조스)는 초안을 받지도, 읽지도, 의견을 제시하지도 않았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WP 안팎에서 베이조스의 결정을 비판하는 반응이 쇄도했다.

이 신문의 노조는 성명에서 "매우 중요한 선거를 불과 11일 앞두고 이런 결정을 한 데에 깊이 우려한다"며 이번 결정으로 "충성도 높은 독자들의 구독 취소가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WP의 오피니언 필진 17명도 성명을 통해 이번 결정이 "끔찍한 실수"이며 "이 신문의 근본적인 편집 신념을 포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WP의 전 편집장인 마티 배런은 소셜미디어에 "민주주의를 희생양으로 삼은 비겁한 행동"이라고 성토했다. 그는 다만 CNN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베이조스 사업을 두고 "지속해서 위협해왔다"고 말했다.

퓰리처상 수상자인 데이비드 마라니스는 "47년간 일해온 신문사가 어둠 속에서 죽어가고 있다"고 개탄했다. 정치학자이자 이 신문의 편집인(editor-at-large) 로버트 케이건은 편집인 자리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이 신문에서 '워터게이트 특종'을 한 전설적인 언론인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도 성명을 내고 이번 결정이 "도널드 트럼프가 민주주의에 가하는 위협에 대해 워싱턴포스트가 전해온 압도적인 보도 증거를 무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공화당 내 대표적인 트럼프 비판자인 리즈 체니는 "베이조스가 해리스 지지를 철회한 것은 불명예스러운 일"이라며 신문 구독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이밖에 민주당 소속인 테드 리우 미국 연방하원의원, 수전 라이스 전 국가안보보좌관 등도 이번 결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와 별도로 대선판에 발벗고 뛰어들었던 머스크도 과거 행보를 둘러싸고 구설에 휘말렸다.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전폭 지원하며 '불법 이민 반대' 선봉에 나섰던 머스크가 1990년대에 체류자격 없이 불법으로 일했던 경력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WP는 26일 머스크가 1990년대에 학생 신분으로 미국에 입국해 스타트업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불법 노동을 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머스크가 과거에 설립했던 스타트업의 대주주 등 사업 관계자와 법원 기록, 회사 문서, 등을 인용해 남아프리카공화국 태생인 머스크가 1995년 스탠퍼드대 대학원 과정을 밟기 위해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로 왔지만 학교에 등록한 적이 없다고 전했다.

그는 대신 같은 해 스타트업인 Zip2를 창업해 4년 뒤인 1999년 약 3억 달러에 이 회사를 매각했다.

WP는 머스크가 학생 신분을 잃었음에도 미국에 남아 회사를 설립하고 불법으로 일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학생의 경우 제한적으로 파트타임 일자리를 얻을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하려면 학위과정에 등록해 학생 신분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데 머스크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민법 전문가들도 학생 신분으로 미국에 입국한 외국인이 학교를 그만둘 경우 미국에 체류할 법적 근거가 없으므로 출국해야하며, 급여를 받지 않더라도 창업을 위해 학교를 중퇴할 수는 없다고 WP에 말했다.

WP는 머스크가 1997년께 캐나다 시민권자 자격으로 취업 허가를 받았다면서 "학생비자 초과 체류는 비교적 흔한 일이고 당국자들이 눈감아주기도 하지만 여전히 불법"이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머스크가 동생인 킴벌 머스크를 회사에 합류시킨 것 역시 위법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Zip2 공동 창업자인 킴벌은 과거 인터뷰에서 당시 "스타트업을 할 수 있는 비자가 없어 불법으로 체류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 매체는 머스크가 불법 체류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던 정황도 보도했다. 머스크의 전 동료들에 따르면 머스크는 학생 신분으로 미국에 머무르고 있어 법적 체류 자격이 없다고 동료들에게 언급한 적이 있다. 또 Zip2의 주주들은 투자 과정에서 창업자인 머스크의 체류자격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1992년 펜실베이니아대 편입생으로 미국으로 건너와 2002년 미국 시민권을 얻은 머스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반이민 수사를 앞장서서 전파하고 있다. 그는 해리스 부통령 등 민주당 측이 '불법 이민을 부추겨 유권자를 수입하고 있다'는 주장을 폈고 지난달에는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 계정에 "불법 이민은 중단돼야 한다"고 올리기도 했다.

아마존 창업자이자 워싱턴 포스트 사주인 베이조스(CG) [연합뉴스TV 제공]

inishmor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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