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또 당선’ 우려가 현실 되나
“도널드 트럼프는 2024년 세계가 마주할 수 있는 가장 큰 위협이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23년 11월16일 발행한 표지 기사에서 이렇게 썼다. 이 매체는 “트럼프 집권 2기는 집권 1기 때보다 훨씬 신속하고 효율적일 것이고, 강성 지지세력으로 채워질 것”이라며, 미국은 물론 세계 정치와 경제에 파국적 상황을 부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선거를 불과 2주 남긴 시점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우위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코노미스트는 2024년 10월21일 각종 여론조사와 자체 분석자료를 토대로 한 선거 결과 예측 기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1주일 새 6%포인트 상승한 54%를 기록했다”며 이렇게 보도했다. 우려했던 ‘2024년 세계가 마주할 수 있는 가장 큰 위협’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어쩌다 당선 가능성 예측에서 앞서나가게 됐을까?
전국 조사에서 해리스의 추세적 하락
이코노미스트의 자료를 종합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10월14일 당선 가능성이 48%로 예측돼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52%)에 4%포인트 밀렸다. 10월17일 조사에선 두 후보 간 격차가 9%포인트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10월19일 조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51%)이 2%포인트 앞서기 시작했고, 10월21일 조사에선 54% 대 45%로 당선 가능성 격차를 9%포인트까지 벌리며 전세를 완벽하게 뒤집었다. 대체 뭐가 달라진 걸까?
첫째, 전국 단위 조사에서 해리스 부통령의 지지율이 정체기를 지나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전국 단위 조사에서 두 후보 간 평균 지지율 격차는 한때 3.7%포인트까지 벌어졌지만, 현재 1.6%포인트까지 좁혀진 상태다. 해리스 부통령의 지지율이 정체 또는 소폭 하락한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꾸준한 상승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여전히 박빙의 승부가 펼쳐지고 있지만, 선거운동이 막판으로 접어든 상태에서 하락세로 돌아선 추세를 뒤집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둘째, 7월21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 사퇴를 발표한 직후 그간 부동층과 제3후보 지지층으로 분류됐던 유권자들이 대거 해리스 부통령 지지로 돌아섰다. 이들 상당수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실망감을 느낀 민주당 성향 유권자였다. 문제는 민주당만 그런 건 아니라는 점이다. 선거 막판 공화당 성향 유권자층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미우나 고우나 내 당 후보’ 지지로 결집하고 있다는 얘기다.
‘승자독식’ 선거제도, 격전지에 쏠린 눈
셋째, 해리스 부통령은 전국 단위 투표(총득표율)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앞설 가능성이 74%로 여전히 높다. 그럼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진 이유가 있다. 각 주에서 1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해당 주에 할당된 선거인단을 모두 차지하는 이른바 ‘승자독식’이란 미국의 독특한 선거제도 때문이다. 실제 격전지(스윙스테이트)로 꼽히는 미시간·네바다·위스콘신·펜실베이니아·조지아·노스캐롤라이나·애리조나 등 7개 주의 여론 동향이 ‘트럼프 우세’ 쪽으로 기울고 있다.
펜실베이니아·노스캐롤라이나·미시간·네바다 등 4개 주에선 두 후보가 각각 48%로 동률을 이뤘다. 10월 초만 해도 해리스 부통령은 노스캐롤라이나를 제외한 나머지 3개 주에서 1~2%포인트 앞선 바 있다. 해리스 부통령은 위스콘신 1개 주에서만 우위를 유지했는데, 10월1일 2%포인트였던 지지율 격차가 1%포인트로 줄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조지아와 애리조나 2개 주에선 각각 1%포인트와 2%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대선 때 트럼프 전 대통령은 7대 격전지 가운데 네바다를 제외한 6개 주에서 승리했다. 2020년 대선 때는 바이든 대통령이 노스캐롤라이나를 제외한 6개 주에서 승리해 당선됐다. 해리스 부통령이 추세적으로 밀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넷째, 민주당 쪽에선 “공화당 성향 여론조사 기관이 선거 막판 각종 조사 결과를 쏟아내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 평균치를 끌어올린 것일 뿐”이란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민주당 성향 여론조사 기관의 조사 결과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세가 확인된다. 실제 일찌감치 해리스 부통령 지지를 선언한 뉴욕타임스의 여론조사 자료를 보면, 10월1일 전국 단위 지표에서 해리스 부통령(50%)은 트럼프 전 대통령(46%)을 오차범위 밖에서 앞섰지만 10월21일엔 지지율 격차가 단 1%로 좁혀졌다.
바이든과 차별화 않자 심판론이 번지다
해리스 부통령은 선거 막판 각종 방송에 적극 출연하며 부동층 표심 잡기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그는 60살 생일을 맞은 10월20일엔 엠에스엔비시(MSNBC) 방송과, 10월22일엔 엔비시(NBC), 미국 최대 스페인어 방송 텔레문도와 각각 인터뷰했다. 인터뷰 때마다 반복되는 질문이 있다. ‘바이든 대통령과 무엇이 다르냐’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갤럽이 10월1~12일 실시해 내놓은 국정 만족도 조사에서 응답자의 75%가 불만족스럽다고 답했다. 인기 없는 현직 대통령은 여당 후보의 발목을 잡는 법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출마 포기는 ‘정권 심판론’을 희석했다. 되레 전직 대통령에 대한 ‘심판론’이 들끓기도 했다. 하지만 후보 확정 이후에도 해리스 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과 차별화를 시도하지 않으면서, ‘현직 부통령에 대한 심판론’이 번졌다. 해리스 부통령이 자초한 일이다. 더글러스 하이 전 공화당전국위원회(RNC) 공보국장은 10월22일 시엔엔(CNN) 방송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부동층 유권자들은 말한다. ‘우리도 트럼프가 싫긴 하지만, 적어도 트럼프가 어떤 사람인지는 안다. 해리스 부통령, 당신은 누구이며 뭘 하고 싶은가?’ 해리스 선거캠프의 최대 약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른바 ‘당신이 아는 악마와 모르는 악마’ 중 하나를 택하라면, 사람들은 당연히 ‘아는 악마’를 택한다. 사람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잘 안다. 해리스 부통령도 자신이 누구인지 더 잘 알려야 한다. 째깍째깍 시간이 빠르게 가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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