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원자력에만 집중된 R&D 예산… 고용 부문 줄줄이 감액

이희경 2024. 10. 26.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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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예산안에서 과학기술 분야 예산이 가장 크게 늘었지만 증가된 연구개발(R&D) 예산 대부분은 우주·원자력과 같은 새로운 부문에 주로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올해 대폭 삭감됐던 다른 부문의 과학기술 R&D 예산의 경우 2023년 수준으로 회복하는 데 그치거나 오히려 2023년 수준보다 낮은 경우도 있었다. 올해와 비교해 내년도 총지출은 20조8000억원 늘어나는 데 이 중 약 59%(12조2000억원)는 국민연금운영(5조원) 등 고령인구 증가·물가상승에 연동된 증가분인 것으로 분석됐다. 잇단 감세조치로 내년 국세수입 규모(382조원)가 2022년 국세수입(396조원)보다 낮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건전재정 기조가 강조되면서 내년에도 정부 재정의 역할이 위축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우리 군의 군사정찰위성 2호기가 지난 4월 8일(한국시간) 오전 8시 17분 미국 플로리다주 케네디 스페이스센터에서 거대한 불꽃을 내뿜으며 하늘로 치솟아 올라가고 있다. 스페이스X 제공
26일 나라살림연구소 이상민 수석연구위원이 최근 펴낸 ‘2025년 예산안 감액 및 증액 사업’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내년도 정부예산안 총지출 규모는 677조4000억원으로 올해 예산(656조6000억원) 대비 20조8000억원(3.2%) 늘었다. 예산서에 존재하는 세부사업별로 보면 올해 대비 3635개 사업에서 37조1000억원이 감액됐고, 4383개 사업에서 57조8000억원이 증액됐다.

이 연구위원은 기획재정부가 올해 8월 예산안 발표 때 제시한 12대 분야별 예산이 아닌 16대 분야를 기준으로 내년도 예산안을 분석했다. 12대 분류 체계에서는 예비비 지출 등이 누락된 데다 합산 규모가 총지출(677조4000억원)을 넘는 684조5000억원으로 계산되는 등 오류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 연구위원은 특히 프로그램 예산 제도를 기초로 예산액 증감 현황을 분석했다. 프로그램 예산제도란 같은 정책목표를 지향하는 사업들을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설정하는 제도로 2007년부터 도입됐다. 이 연구위원은 세부사업 예산을 통한 분석은 너무 협소하고, 프로그램 보다 상위인 분야별 예산 분석은 너무 추상적이라면서 프로그램을 기준으로 예산을 분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프로그램 총액의 감소는 해당 프로그램이 구현하고자 하는 국가의 정책 의지 또는 정책 능력의 삭감을 의미한다”고 전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과학기술 분야가 올해 9조2880억원에서 내년도 10조8960억원으로 17.3% 늘었다. 16대 분야 중 가장 큰 증가율을 나타냈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올해 R&D 예산을 대폭 삭감한 데 따른 기저효과가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새로운 R&D 예산이 늘어나면서 오히려 2023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 사업도 눈에 띄었다. 실제 우주관련 사업이 3600억원 증가하고, 원자력 관련 예산이 2200억원 늘었다. 이에 따라 올해 예산이 크게 줄었는데도 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2023년 수준에 그치거나, 오히려 미치지 못한 R&D 사업도 많았다. 대표적으로 공공연구성과활성화는 2023년 3081억8100만원에서 올해 2096억8200만원으로 깎였다가 내년도 2658억1700만원으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또 2024년 감액된 지역경제 및 지역 중소기업 R&D는 그대로 삭감된 상태라고 이 연구위원은 분석했다. 올해 R&D 예산이 대폭 삭감된 충격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사진=기획재정부 제공
국회 심의를 받지 않는 예비비의 증가폭도 컸다. 예비비는 올해 4조2000억원에서 내년 4조8000억원으로 14.3% 증액됐다.

사회복지와 보건 분야의 경우 올해 예산 대비 내년에 각각 9조9030억원, 947억원 증가했다. 두 분야를 아우르는 복지 분야 증가 규모는 10조9000억원데 이 중 공적연금 부문이 7조5000억원, 노인 부문은 1조8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전체 복지 분야 증가액의 85% 정도가 고령인구 및 물가상승에 따른 결과인 셈이다. 복지 분야 중 정부의 정책 의지에 따라 늘어난 예산은 육아휴직급여 확충이 포함된 고용 부문(1조3000억원), 기준중위소득 인상에 따른 기초생활보장 부문(1조원) 등이었다.

복지 분야 중 줄어든 사업도 상당했다. 고용 부문의 경우 육아휴직이 1조5000억원 증가한 만큼 다른 사업들의 감액이 줄을 이었다. 가령 내일배움카드(-1310억원), 국민취업제도(-968억원), 사업주직업훈련지원금(-512억원) 등에서 감액됐다. 기초생활보장 부문에서도 기준중위소득에 연동되지 않은 긴급복지 예산이 올해 3584억9400만원에서 내년 3501억900만원으로 약 84억원 깎였다.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 밀집 지역. 뉴스1
복지 분야에서 가장 많이 감소된 건 주택 부문으로 나타났다. 주택 부문은 올해 37조4000억원에서 내년 35조6000억원으로 1조8000억원 줄었다. 3조5000억원 증액되고 5조4000억원 감액됐다. 특히 다가구매입임대출자 사업이 올해 2조4300억원에서 내년 2700억원으로 88.8% 급감했다. 교통및물류 분야에서는 철도 부문에서 1조1000억원 줄었고, 일반지방행정분야에서는 지방채 인수 금액이 2조6000억원 감소하고,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지원(지방재정경제 프로그램) 사업이 3000억원 전액 삭감됐다. 이 밖에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분야에서는 조선업, 자동차산업, 로봇산업 R&D 지출액이 1500억원 늘었지만 에너지바우처 세부사업이 1800억원 감액됐다.

이 연구위원은 내년도 재량지출(정부 정책의지에 따라 규모 등을 통제할 수 있는 예산)이 0.8%만 증가하는데도 관리재정수지가 77조7000억원 적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되는 배경엔 큰 규모의 ‘감세정책’이 있다면서 정부가 감세와 건전재정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위원은 “재량지출 0.8% 증가로 분야별 분석에 따른 국가의 전략적 목표는 R&D 2023년 원상복구와 국회 예산심의가 필요 없는 예비비 증액 두 개에 그친다”면서 “프로그램으로 분석해 봐도 노인인구 증가와 물가상승에 따른 자연증가가 2025년 지출 증대의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저출생·고령화, 복지수요 증대, 신기술 등 R&D 투자수요 증대, 지방시대 선언, 안보위기 등 국가의 재정 역할 확대가 요구되고 있고, 국가가 재정역할을 확대하면서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지켜야 할 재정적 의무가 있다”면서 “그러나 감세 등을 통해 스스로 재정여력을 축소해 불과 재량지출 0.8% 증대만으로는 재정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세종=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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