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김수미, 생전 남긴 글엔 “평생 조연으로 살아… 그래도 포기 마라”

이혜진 기자 2024. 10. 26.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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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배우 김수미 빈소. 빨간 벙어리 장갑을 끼고 흰 머플러를 두른 채 활짝 웃고 있는 김수미의 영정사진이 전광판에 떠 있다. /장윤 기자

“나도 평생 조연으로 살았던 배우로서 말해주고 싶다. 지금 힘들고 슬럼프가 있더라도 이 바닥은 버티면 언젠가 되니 중간에 절대 포기하지 말라.” 배우 고(故) 김수미가 생전 손으로 쓴 글에서 아직 꽃 피우지 못한 후배들을 향해 남긴 메시지다.

상주인 고인의 아들 정명호 나팔꽃F&B 이사와 배우 서효림 부부는 연합뉴스에 “고인이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며 “집에 가서 보니 손으로 써둔 원고들이 많았다”고 했다. 고인이 미리 정해둔 책 제목은 ‘안녕히 계세요’였다. 은퇴 후 음식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내용도 있었다고 한다.

대중적인 이미지와 달리 고인은 많이 여린 사람이었다고 한다. 팬들이 고인을 만나 ‘욕 한 번 해주세요’ 할 때마다 사실 속으로는 굉장히 싫었다고 할 만큼 여린 마음의 소유자였다. 평생 ‘일용 엄니’로 불리다 자신의 손맛을 내건 예능 ‘수미네 반찬’으로 인기를 얻자 “늘 ‘욕쟁이 할머니’로만 불리던 내가 요새 ‘선생님’ 소리를 들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몰라”라며 활짝 웃었다고 한다.

음식과 요리는 김수미 인생의 일부나 다름 없었다. 정 이사 부부의 딸인 손녀 조이가 태어났을 때도 가장 먼저 이유식 책을 발간했다. 고인이 아들에게 해준 마지막 요리는 풀치조림이었다. 고인이 가장 잘하는 요리이기도 했다. 정 이사는 “최근에 생각나서 해달라고 졸랐더니 ‘힘들어서 못 해’라고 하시고는 다음 날 바로 만들어서 집에 보내주셨다”며 “저는 풀치조림을 가장 잘 먹었는데 효림이는 뭐든 잘 먹고 많이 먹어서 엄마가 예뻐하셨다”고 했다. 조문객들도 입을 모아 “선생님이 때마다 챙겨주신 음식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김수미가 2021년 2월 11일 tvN 예능 '수미네 반찬'에 며느리인 배우 서효림과 함께 출연한 모습. /올리브 유튜브 영상 캡처

정 이사뿐 아니라 며느리 서효림도 고인을 ‘엄마’로 불렀다. 서효림은 “주변에서 ‘시어머니 무섭지 않으냐’고 많이 물어봤다. ’우리 엄마가 나 더 무서워해’라고 응수하곤 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에 엄마가 회사 일 등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고 힘들어하셨던 건 사실”이라며 “제가 그랬다. ‘엄마, 우리 여배우끼리 얘기해보자. 이대로 무너지면 안 되지. 우리가 쓰러져도 무대에서 쓰러져야지’. 그랬더니 엄마가 ‘마음은 나도 너무 같은데 몸이 안 따라준다’고 하셨다”고 했다.

서효림은 “조문 와주신 분들 모두 ‘황망하다’, ‘어제도 통화했는데’, ‘사흘 후에 보기로 했는데’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하셨다”며 “늘 동료와 후배, 그중에서도 잘 풀리지 않는 사람들을 먼저 챙기셨다. 음식 한 번 안 받아본 분들이 없더라”고 말했다.

빈소에는 고인이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포스터 속 사진이 영정 사진으로 놓였다. 이들 부부는 “생전에 늘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영정 사진으로 써달라고 말씀하셨다”며 “지금도 집에 가면 드라마 재방송 보면서 그대로 계실 것만 같다. 더 잘하지 못해서 후회되고, 그래도 엄마와 만나서 정말 행복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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