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묻은 비밀, 소설이 돼 집에 왔다

김은형 기자 2024. 10. 26.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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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충전소 ㅣ 애플티브이플러스 드라마 '디스클레이머' 20년 전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와 불장난 같은 사랑을 했다.

낭만적인 영화 '비포 선라이즈'가 떠오를 수 있지만 드라마 '디스클레이머'는 로맨스가 아니라 어두운 스릴러다.

'디스클레이머'는 자신을 숨긴 스티븐이 서서히 캐서린의 목을 조여오며 복수를 하는 과정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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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충전소 ㅣ 애플티브이플러스 드라마 ‘디스클레이머’

20년 전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와 불장난 같은 사랑을 했다. 낭만적인 영화 ‘비포 선라이즈’가 떠오를 수 있지만 드라마 ‘디스클레이머’는 로맨스가 아니라 어두운 스릴러다. 여자는 갑자기 일이 생긴 남편을 먼저 보내고 5살 아들과 남았던 유부녀로 신의성실의무를 깼고 불붙었던 19살 청년은 바다에 떠내려간 여자의 아이를 구하다 죽었다. 본인만 입을 다물면 이 모든 것의 흔적을 지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참사 현장에서 아이와 빠져나간 여자에게 20년 뒤 책 한권이 도착한다. ‘완전한 타인’(The Perfect Stranger)이라는 제목의 소설에는 자신이 저질렀던 불장난의 기록이 낱낱이 폭로돼 있다. 넷플릭스 영화 ‘로마’로 베네치아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과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던 알폰소 쿠아론의 첫 시리즈 연출작이자 두차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케이트 블란쳇의 주연으로 화제가 됐던 ‘디스클레이머’가 공개됐다. 한국에서는 블란쳇, 케빈 클라인, 사샤 배런 코언 등 명배우들과 ‘오징어 게임’의 정호연이 나란히 이름을 올려 더 큰 관심을 모았다.

캐서린(케이트 블란쳇)은 품위의 가면을 쓴 고위층의 민낯을 폭로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큰 상을 받는 등 잘나가는 저널리스트다. 어느 날 갑자기 받은 책을 통해 성실한 아내이자 양심적인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그가 지난 20년간 써온 가면이 벗겨진다. 그의 가면을 벗겨낸 이는 생때같은 아들 조너선(루이 파트리지)을 잃은 부모다. 죽은 아들의 카메라 필름을 인화했다가 묘령의 여성이 찍은 외설적인 사진을 보며 엄마는 죽음의 배경을 추측해 소설을 썼고, 아내가 암으로 죽은 뒤 유품을 정리하던 조너선의 아빠 스티븐(케빈 클라인)이 이 글을 발견해 책으로 만든 것이다.

‘디스클레이머’는 자신을 숨긴 스티븐이 서서히 캐서린의 목을 조여오며 복수를 하는 과정을 그린다. 스티븐이 사무실로 보낸 사진을 본 캐서린의 남편 로버트(사샤 배런 코언)는 배신감과 수치심, 그리고 질투심과 묘한 성적 흥분을 느끼며 아내를 집에서 내쫓는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건 캐서린의 부도덕하고 부정직한 과거와 함께 “고상한 척하는 멍청이들”, 즉 상류층 엘리트들의 허약한 내면이다.

캐서린이 펴는 책 표지 다음 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실존 인물과 비슷한 점이 있다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실존 인물이나 사건이 모델이라는 걸 누구나 알 수 있는데도 “우연”이라고 주장하는 영화나 책의 시작과 정반대로 말하는 것이다. 이미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아닌 척 넘어가는 현실의 모순과 위선에 대한 통렬한 조롱이다.

영국 작가 러네이 나이트의 원작 소설을 화면으로 옮기면서 알폰소 쿠아론은 캐서린이 과거에 저질렀던 성적 일탈과 스티븐의 냉철한 복수, 현재의 캐서린이 붕괴해가는 과정을 속도감 있게 교차시킨다. 붕괴 직전의 불안과 스릴러의 긴장감을 가중시키는 건 역시나 히스테리와 뻔뻔함, 다급함과 우아함을 수시로 넘나들며 유려하게 펼쳐내는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다. ‘디스클레이머’(disclaimer)는 책임, 연루 등에 대한 부인을 뜻한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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