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린 듯 밀착하거나, 느슨하게 이어지거나

한겨레 2024. 10. 26.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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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우진영의 한국 근현대 미술 잇기
친구 이야기
구본웅, 초상화에 담은 벗 이상
영혼을 나눈 근대의 모더니스트
이우성, ‘해질녘 산에 올라서서’
낯선 보통사람들 틈에 섞이다
구본웅, ‘친구의 초상’, 1935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우정이란 지상에서나 천상에서나 모든 사물에 관한 선의와 호감을 곁들인 감정의 일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가 평생의 벗 앗티쿠스에게 헌정한 글의 한구절이다. 고대에도 지금도 친구란 존재는 이토록 찬란하다. 마음을 나눈 단 한명의 친구를 그려낸 근대의 구본웅과 여러 명의 인물들을 담아내는 현대의 이우성을 만나본다.

버겁다. 짓이기듯 갈라진 마티에르. 공격적이다. 치켜뜬 눈동자는. 3년 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전시에서 구본웅의 ‘친구의 초상’을 대면했다.

각오가 필요했다. 이 강렬함을 해석하려면. 견디리라. 쏘아보는 시선을. 담배 연기가 피어난다. 역하게. 어둡고 음습한 색채는 공격한다. 읽어내보라고. 멋스러운 미술사조를 알고 싶은가. 표현주의를 권한다. 구본웅의 그림에 담긴.

‘불우’라는 단어가 쫓아온다. 그의 생애를 말할 때면. 태어나 넉달 만에 어머니를 잃었다. 세살 때 사고로 척추를 다쳤다. 결핍은 선택하게 한다. 필히. 침잠하거나 뚫고 나아가거나. 구본웅은 후자였다. 고희동과 이종우에게 양화를, 김복진에게 조각을 배웠다. 장르를 넘는 재능이었다. “석탑과 나무 따위가 열대의 분위기를 풍기는 독특한 풍경화”. 1924년 고려미술회 회원전에 출품한 ‘폐허’에 대한 평이다. 예술가 안석주가 썼다.

강렬한 눈빛, 자유를 향한 욕망

일본대학 미술과, 태평양미술학교에서 공부했다. 당시 일본에는 최신 미술사조들이 몰려들었다. 맹렬하게. 부서지고 겹쳐지는 시점들. 입체주의의 대담함에 빠져들었다. 충돌하며 뛰노는 색들. 야수파다. 20대 젊은 화가의 예민함이 살아났다. 구본웅은 알아챘다.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고 싶다. 자유롭게.

“큐비즘과의 중간층과 포비즘과의 중간층과 내지 익스프레셔니즘 또는 임플레이셔니즘과의 중간층에 속하는 작품들도 병진(竝陳)되어 있었다.” 1932년 일간지에 실린 화가 김주경의 구본웅에 대한 평이다. 캔버스에 감정이 넘실댄다. 곱고 단아한 아카데미즘을 몰아냈다. 당혹스럽고 즐겁다. 색들이 솟는다. 진하고 뜨겁게. 구본웅의 등은 굽었으나 붓놀림은 질주했다. 통쾌하다.

서로를 선택했다. 몸이 약한 구본웅은 신명소학교 시절 더디게 학교를 다녔다. 네살 어린 이상과 만났다. 어떤 만남은 필연적이다. 화가가 되고 싶었던 이상은 구본웅이 좋았다. 작은 몸에 갇힌 구본웅은 키가 크고 분방한 자아를 가진 이상에게 마음을 뺏겼다. “곡마단이 나타났다!” 놀림거리였다. 그들이 거리를 걸어갈 때면. 구본웅과 이상은 떨어지지 않았다. 신비하다. 서로 마음이 통한다는 것은.

구본웅이 그린 형상들은 이지러졌다. ‘여인’(1930)의 벌거벗은 상체를 뒤로하고 포갠 팔이 끊길 듯하다. 등이 저려온다. ‘인형이 있는 정물’ 속 목각은 눈, 코, 입이 없다. 불안해진다. 날것의 색채는 들춰낸다. 속된 감정을. 닮았다. 구본웅의 그림과 이상의 문학은. “내 팔이 면도칼을 든 채로 끊어져 떨어졌다.” 1934년 이상이 쓴 오감도 시제 13호의 첫 문장이다. 비틀고 실험한다. 근대의 ‘모더니스트’라 불리는 두 예술가가 있다.

이상에게 죽음이 찾아오는 중이다. 자주 각혈했다. 1935년 작인 ‘친구의 초상’은 그때의 작품이다. 구본웅의 마음은 어땠을까. 짙은 명암이 덮쳐온다. 숨어 있던 통증이 살아난다. 얼굴 근육이 저려온다. 초상 속 인물은 시대를 야유한다. 자조적으로. 오만한 자아를 드러낸다. 짙게 드리운 병색을 덮듯이. ‘친구의 초상’에는 두 사람이 있다. 창백한 뺨을 쓰다듬고 싶다. 지기(知己)라는 단어를 읊조려본다. 한명은 붓을, 한명은 펜을 들고 있다. 친구 사이다. 상상해본다. 꼿꼿하게 허리를 편 구본웅을. 이상과 나란히 서 있는. 다시 만난 영원의 세계에서.

무겁지 않게, 끊어지지 않게

이우성, ‘해 질 녘, 산에 올라서서’, 2024년. 이우성 제공

“신나게 놀고 싶어지는 그림을 봤어.” 휴일에 만난 친구의 말이다. 사진을 보여준다. 이우성의 작품이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리는 세마(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전시를 찾았다. 이우성의 ‘해 질 녘, 산에 올라서서’를 보고 싶었다.

가로 3m에 달하는 대형 작이다. 사람들이 붙어 있다. 빼곡하게.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 있다. 제일 앞줄의 여성이다. 몸짓에 집중이 배어 있다. 왼쪽의 무표정의 남자가 보인다. 입술을 다물었다. 함께 예민해진다. 고개를 든다. 재빠르게. 우울해지고 싶지 않기에. 호랑이 가면을 쓴 아이가 보인다. 장난기를 머금었다. 문득 깨달았다. 이들이 타인임을. 서로를 알지 못하는.

‘세상의 모든 계절’이란 영화가 있다. 평이한 줄거리다. 극적인 사건도 없다. 밀착한 인간관계가 어떻게 멀어지는지를 보여줄 뿐. 적나라하고 처절하게. 알았다. 이 영화의 장르는 극사실주의임을. 뜨거웠던 우정은 허망함을 남긴다.

‘해 질 녘, 산에 올라서서’에 모인 인물들의 속내가 보이지 않는다. 손하트를 하는 중앙의 남자는 달가워할까. 호랑이 흉내를 내는 뒷줄의 어린이를. 마음이 식는다. 겉과 속이 다른 현대인들의 모습이 떠올라서. 시선을 멀리해본다. 서로의 손을 맞잡은 사람들이 있다. 순간 소리가 들린다. 속삭이듯 분명하게. ‘너의 마음을 나는 이해해’라고. 그러하다. 홀로 남겨두지 않는다. 이우성은 안쪽으로 들어오라고 말한다. 울컥한다.

“서로 다른 사람들의 고유함을 모두 담고 싶었다.” 이우성의 말이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밝힌 작업에 대한 설명이다. 무관심이 아니었다. 손을 뻗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한쪽 구석에서. 반갑다. 기도하는 이가 있다. 사람들 틈새에서. 토라질 뻔했던 마음이 풀렸다. 이우성은 믿는다. 나와 타인들의 연대를. 느슨하되 끊어지지 않는. 현대인의 관계 맺기다.

‘유쾌한 민중미술’. 그의 작업을 설명하는 키워드다. 걸개그림이 돌아온 듯하다. 무겁지 않고 경쾌하게. 손을 흔들고 서로를 껴안는다. 그 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제각각이다. 외롭지 않다. 옆에 누군가가 있음을 알고 있어서일까. 깊은 관계가 촌스러운 시대이다. 남에게 상처 주기도 쉽다. 에스엔에스(SNS)의 메시지를 읽어도 답하지 않는다. 슬쩍 외면하고 모른 체한다. 속이 아프다.

지쳐 있었나 보다. 머물고 싶었다. ‘해 질 녘, 산에 올라서서’ 앞에서. 커다란 캔버스 속 모두에게 말을 걸고 싶다.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관람객이 모여든다. 밝은 표정이다. 낯선 이들에게 인사하고 싶다. 몸짓으로. 이우성의 그림 속 넷째 줄 사람처럼 동그라미를 그리며.

스쳐가는 타인들과 나의 친구에게

공기가 차가워졌다.(찬 기운이 돈다) 옷깃을 여미며 걷는 낯선 이들의 하루를 응원하고프다. 이우성의 그림처럼. 오랜 친구에게 전화를 걸고 싶다. 만나고 싶다고. 구본웅이 이상을 스케치하는 마음처럼.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정을 가지고 함께해 주신 필자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우진영 미술 칼럼니스트

예술가가 되고 싶었지만 소심하고 예민한 기질만 있고 재능이 없단 걸 깨달았다. 모네와 피카소보다 김환기와 구본웅이 좋았기에 주저 없이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전공했다. 시대의 사연을 품고 있는 근대미술에 애정이 깊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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