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천 류달영 20주기 추모행사 “시대 초월한 호학위공 정신”

장재선 기자 2024. 10. 26.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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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천문화재단은 성천 류달영(1911~2004) 선생 20주기를 맞아 선생의 유지를 기리는 행사를 연다.

재단은 "유인걸 재단 이사장과 관계자 30여 명은 재단의 아카데미 회원과 함께 선생이 안장된 대전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을 오는 30일 참배한다"라고 26일 밝혔다.

성천 선생 기일인 27일이 휴일인 일요일이어서 참배 행사를 30일 갖기로 했다고 재단 관계자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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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종자 개량하고 가꾼 무궁화 앞에 선 노년의 류달영 선생. 성천문화재단 제공.
함석헌(가운데), 유영모(오른쪽) 선생과 함께 한 젊은 시절의 류달영 선생.

성천문화재단은 성천 류달영(1911~2004) 선생 20주기를 맞아 선생의 유지를 기리는 행사를 연다. 재단은 "유인걸 재단 이사장과 관계자 30여 명은 재단의 아카데미 회원과 함께 선생이 안장된 대전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을 오는 30일 참배한다"라고 26일 밝혔다. 성천 선생 기일인 27일이 휴일인 일요일이어서 참배 행사를 30일 갖기로 했다고 재단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참배를 통해 성천이 남긴 ‘호학위공(好學爲公)’ 정신을 되새길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전 생애의 시기마다 시대의 요구에 응답함으로써 대한민국 발전에 기여한 선생의 큰 업적을 기리며 이 시대에는 어떠한 시대적 응답이 필요한지 숙고한다"라고 전했다.

재단은 앞서 22일엔 20주기 추모 강연회를 열었다. 김건우 대전대 교수가 ‘류달영의 재건국민운동과 덴마크 모델’을 주제로 대한민국의 발전에 기여한 성천의 족적을 살폈다.

류달영 선생이 쓴 성천문화재단의 창립 정신인 ‘호학위공’(위 사진)과 ‘인간은 만남으로 자란다’.

1911년 5월 6일 경기 이천시에서 태어난 성천은 서울 양정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수원고등농림학교(서울대 농과대학 전신)를 졸업했다. 청소년기에 일제 치하의 조국을 위해서는 농촌운동에 뜻을 세웠다. 올바른 자녀를 길러내는 어머니가 될 여성 교육이 조국 독립의 첫걸음이라는 신념으로 여학교(개성 호수돈 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가 되었다. 그는 여성 교육에 힘쓰며 독립운동을 하다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 모교인 서울대 농과대학 교수로 취임하였고, 미국 미네소타대학교에서 화훼학을 공부했다. 6.25 전쟁의 폐허지에서 낙담한 우리 국민에게 책 ‘새 역사를 위하여’를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다시 일어설 구체적인 길을 제시했다. 국가 재건기에는 새마을 운동의 기초가 되는 재건국민운동 본부의 본부장으로서 전쟁 이후 황폐해진 국토와 나라를 재건하기 위해 애썼다. 그는 군사정부 시절 계엄 아래에서도 거침없이 군부의 탄압을 비판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이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에 농학자로서, 농촌 운동가로서, 사회운동가로서 다방면에 걸쳐 많은 업적을 남겼다. 수필, 평전, 학술서 등 다양한 분야의 저서를 펴내기도 했다. 그는 전국농업기술자협회 총재, 국민윤리연구회 창설 초대 회장, 한국원예학회 회장, 4-H연맹 명예 부총재, 전국재해대책협의회장, 한국유기농업협회 회장 등을 지내며 소임을 다했다.

서울 여의도 한강변에 자리한 구상 시인의 시 ‘강’ 시비는 류달영 선생의 글씨로 새겼다. 사진은 제막식 때 모습.
말년에 평화농장에서 함께 한 류달영선생과 부인 이창수 여사.

80세 되던 해에 필생의 사업으로 산업사회 도시민의 인간성 회복과 한국인의 정체성 회복을 위해 사재를 털어 성천문화재단을 설립하였다. 이 재단은 설립 33년이 되는 지금도 여전히 인문고전 교육을 통해 그의 유지를 이어가고 있다.

한편 선생의 20주기를 맞아 1958년에 잡지 ‘사상계’에 연재한 글을 모은 책 ‘인생 노우트’(빈빈책방)의 개정판도 나왔다. 1984년에 출간된 지 40년 만에 이뤄지는 개정판으로 오늘날 젊은이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현대적인 언어로 다듬었다. 그의 글 전반에는 위기에 처한 나라와 민족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했던 청년 류달영의 고뇌와 결의가 생생하게 담겨있다. 재단 측은 "나라와 민족, 나아가 생명의 존엄을 지키고자 분투했던 그의 인생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시대를 초월해 힘이 되어줄 것"이라고 했다.

장재선 전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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